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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 열기를 타고 전국적으로 '자주적 농민운동조직'이 속속 건설되었고, 이를 토대로 1990년 4월 24일 전국농민회총연맹(이하 전농)이 탄생하였다. 전농은 '창립선언문'에서 "농민은 사회 발전의 주체로서 부지런히 식량을 생산하고 있음에도 근로대중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항상 멸시와 천대를 받아왔다"고 비판하고 "농민해방과 민중승리의 그날까지 힘차게 싸워나가자!"고 천명하였다.

지난 30년 동안 전농은 "농민들의 풍요롭고 인간다운 삶과 이 나라의 민주화와 평등한 사회 건설을 위해" 헌신적이고 영웅적인 투쟁을 전개해왔다.

2002년 11월 13일 여의도에서 열린 '30만 농민대항쟁', 2004년 한-칠레 FTA(자유무역협정) 저지 투쟁, 삼보일배와 해상시위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2005년 12월 15일 제6차 WTO(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 저지 '홍콩 투쟁', 2016년 11월 15일 전남 해남(서군)과 16일 경남 진주(동군)를 출발하여 서울의 여의도까지 진격한 트랙터 '전봉준 투쟁단'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역사에 길이 남을 투쟁을 전개해왔다.

그러나 전농의 헌신적·영웅적 투쟁에도 "농민의 풍요롭고 인간다운 삶"은 아직도 요원하다.
 
30일 오후 전국농민회총연맹 회원 20명이 청와대 입구 청운동사무소앞에서 한미 쇠고기 재협상을 촉구하며 기습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됐다. 2008.5.30
 30일 오후 전국농민회총연맹 회원 20명이 청와대 입구 청운동사무소앞에서 한미 쇠고기 재협상을 촉구하며 기습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됐다. 2008.5.30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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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의 풍요롭고 인간다운 삶"은 아직도 요원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 우리나라 농정 당국은 농산물 시장 개방은 피할 수 없는 추세라 보고, 농업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농업 구조 조정에 투·융자를 집중하였다. 이에 대해 전농은 농산물 시장 개방 반대 투쟁에 온 힘을 다했다.

농산물 시장 개방을 둘러싸고 정부와 전농이 세게 붙었지만 공통점이 있다. 농산물 시장 개방을 우리나라 농업・농촌의 발전을 위협하는 가장 커다란 요인으로 파악한 점이다. 우루과이 라운드와 WTO 체제를 빌미로 정부는 농산물 시장을 급속히 개방했다. 더욱이 개방에 대응하여 '국제 경쟁력만이 살 길'이라며 추진한 생산주의 농정은 우리 농업과 농촌을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전농의 농산물 시장 개방 반대 투쟁은 농민단체로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농산물 시장 개방 반대만으로는 우리 농업과 농촌을 지킬 수 없다. 우루과이 라운드 이전부터 이미 우리 농업과 농촌은 급격히 붕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농은 농산물 시장 개방 반대에 성공하지 못했다. 물론 이는 전농의 책임이 아니다. 시장 개방을 추진한 신자유주의 세력이 정·재계는 물론 언론과 학계를 장악하였기 때문이다. 시장 개방 반대와 더불어 우리 농업과 농촌의 미래를 위한 대안적 담론의 형성과 실천이 필요하였다.

나는 생산성 향상을 위한 농업 구조 조정이 아니라 농업・농촌의 본래 역할, 즉 다원적 기능(경제적·사회문화적·환경적 기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농정을 전환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역농업(생산·가공·유통·소비)의 조직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했다.

2010년 9월 전농은 창립 20주년을 맞이하여 농민선언문을 선포하였다. 선언문에서 전농은 '새로운 20년, 희망의 농민운동'을 개척하기 위해 "농업의 다원적 기능 확대"와 "생활과 생산과 투쟁의 공동체가 실현되는 농민대중조직으로 거듭날 것"을 선언하였다. 또 "지역을 중심으로 한 생활과 생산 그리고 투쟁의 공동체를 만들고 지역농업과 지역정치의 주인에서 한국사회의 주인으로 당당히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나는 이 농민선언문을 안토니오 그람시의 '진지전'의 관점에서 매우 소중하게 받아들였다. 그람시는 진지전을 '시민사회 내에서 장기적인 지적・도덕적・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투쟁전략'이라 하였다. 나는 전농이 농촌사회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기를 기대하였다.

창립 20주년 농민선언문에 담긴 '다원적 기능 확대', '지역농업과 지역정치의 주인'이라는 소중한 가치의 실현을 위해 전농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즉 지역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지역을 바꾸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였고 그 성과와 한계가 무엇인지가 궁금하다. 전농의 전국 100개 시군 농민회 가운데 모범적 활동으로 평가받는 '부여군 농민회'를 찾은 이유다.
 
1989년 4월 부여군 농민회 창립을 알리는 전단
 1989년 4월 부여군 농민회 창립을 알리는 전단
ⓒ 부여군 농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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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농보다 1년 앞서 생긴 부여군 농민회

부여군 농민회는 전농보다 1년 앞선 1989년 4월 30일에 창립되었다. 안타깝게도 창립 당시의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권혁주 부여군 농민회 사무국장의 전언에 따르면(그는 2000년 귀농하였기 때문에 창립 시에는 부여에 없었다), 창립 당시 민주화 분위기를 반영해서 400-500명이 회원으로 가입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다만, 당시에는 농민회가 무엇인지 잘 몰라 주민과 공무원도 가입하였기 때문에 농민회로서의 정체성은 분명하지 않았다. 30여 년 전의 부여농업은 지금과는 달리 전통적인 미작(米作) 농업지대에 밤농사를 조금 하였고 규모도 크지 않았다. 아직 상업적 영농이 본격화되기 이전이라 시간적 여유도 있고, 젊은 사람들도 많아 지금과 비교하면 농민운동을 하기에 좋은 여건이었다.

부여군 농민회의 지난 30년간의 활동의 성과와 한계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를 생각하기 위해 부여군 농민회 권혁주 사무국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 지난 30년의 주요 활동을 정리해서 소개한다면?
"2019년 4월 30일 창립 30주년 기념행사를 했다. 따로 문건을 만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부여군 농민회는 전국농민회총연맹의 가맹조직으로서 전농의 조직적 결정을 무조건 집행한다는 원칙에 따라 전농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였다. 쌀 개방 반대와 한·칠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등 농산물시장개방 반대 투쟁에 참여하고, 학교급식조례 제정 운동, 2010년 충남도 쌀경영안정 직불금 조례제정 운동 및 식량주권 사업 등 농민의 권익보호에 앞장 서왔다.

또한 농·축산물 가격안정기금 조례제정 운동, 농민수당 도입 운동 등을 꾸준히 해왔으며 그 결과 충남도에서는 2019년 농산물 가격안정제 사업이 시행되었고, 부여군에서 2019년에 충청권 최초로 농민수당을 도입하였다. 2020년에는 충청남도가 농민수당을 도입하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하였다."
 
"부여군 농민회는 농민수당 도입 운동 등을 꾸준히 해왔다. 그 결과 부여군에서 2019년에 충청권 최초로 농민수당을 도입하였다. 2020년에는 충청남도가 농민수당을 도입하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하였다."
 "부여군 농민회는 농민수당 도입 운동 등을 꾸준히 해왔다. 그 결과 부여군에서 2019년에 충청권 최초로 농민수당을 도입하였다. 2020년에는 충청남도가 농민수당을 도입하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하였다."
ⓒ 부여군 농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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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여군농민회는 전농(연맹) 소속이지만 독자적 지역조직이다. 지역조직으로서의 부여군 농민회가 지역정치, 지방자치, 지역의 민주화에 기여한 독자적 활동을 소개한다면?
"부여군 민주단체협의회 창립을 주도하였고 통일쌀 모내기·벼베기를 17년째 진행하고, 학교급식 조례 제정운동, 전교조·축협노조·공무원 노조·인삼창노조 등 노동조합과 연대 활동을 하고, 통일문화제를 개최하는 등 각종 지역 현안에 대응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2019년) 부여군 열병합발전소 반대 비상대책위 활동을 하였고 이것이 부여환경연대로 발전하였다. 2020년 11월 대전지방법원은 '개발행위불허가처분 취소소송'에서 부여군의 손을 들어주어 발전소 설립에 제동이 걸렸다. 2020년에는 부여 평화의 소녀상 건립에 적극 기여하였다."

- 지역농업의 주체로서는 어떤 역할을 하였나?
"부여군 농업인단체협의회의 중심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렇지만 농민회는 한 번도 회장을 맡은 적이 없다. 농민회 조직의 관료화를 막기 위해 집회를 하는 경우에도 부여군 농민회 이름으로 하지 않고 다른 농민단체와 같이 하려고 노력한다. 보수적 성향이 강한 지역이기에 집회나 활동을 조직화 할 경우 농민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음을 설명하고 설득해서 함께한다.

부여군 농업회의소 설립에 깊이 간여하였는데, 타 지역에서 견학을 많이 온다. 솔직히 별로 대단히 내세울 게 없는데도 견학을 온다는 것은 그만큼 전국에 40여 개나 되는 농업회의소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농업회의소는 각 마을분회 소속 농민의 정책요구안을 모아서 행정과 협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부여군과의 협조가 잘 되는 것도 있고 안 되는 것도 있지만, 농민들로서는 자기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곳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부여군 농업회의소는 CMS 회원 1200여 명이 월 1만 원씩 회비를 내고 있고 농협 등 단체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단체 회원보다는 농민이 주도권을 잡고 있다. 농민단체장이 헛기침을 하고 다닐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 부여군 농민회와 한살림의 관계가 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서로 협력하는가?
"2004년경 부여군 농민회 서부여지회 회원 4-5명이 농협의 판매유통 체계에 불만을 갖고 '풋고추 작목반'을 만들었다. 2-3년 유지하였으나 재배기술의 한계와 시장의 가격변동, 수급조절 실패 등으로 작목반의 활동이 흐지부지해졌다. 한살림은 2000년대 말 급격히 성장하면서 더 많은 친환경생산자를 필요로 하였다. 부여군의 대표적인 친환경농업 생산조직인 한살림 소부리 공동체의 제안을 받아 2010년 5-6명의 서부여지회원들이 한살림에 딸기 생산자로 가입하였다.

2012년 한살림 소부리 공동체가 부여생산자연합회로 개편되면서, 5-6명의 회원이 추가로 가입해 '참벗 공동체'를 결성했다. 참벗 공동체는 한살림 부여생산자 연합회의 7개 기초생산공동체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참벗 공동체의 구성원은 약 30명으로 농민회에 의무 가입해야 한다. 참벗 공동체는 친환경 약정 생산과 한살림 출하, 농기구(트랙터·관리기·수확기 등) 공동이용과 농자재(퇴비·상토·친환경농약·비닐 등) 공동구매와 공동제조(액비·황토유황) 경험을 바탕으로 2015년 '참벗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였다.
 
참벗공동체 물류센터
 참벗공동체 물류센터
ⓒ 지역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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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에서는 농민회의 젊은 진보그룹들이 친환경농업생산과 한살림의 생명(생태) 농업, 지역공동체 활동 등 한살림 운동에 새로운 역할을 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 농민회는 한살림을 사회적 약자를 보듬어 주는 안식처로 기대했다. 상생(win-win) 관계이다. 한살림의 기존 생산자와 농민회원 사이에 지향점 및 목적에서 갈등이 없지 않았으나 서로의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갈등을 해소하며 공존하고 있다."

"지역 보조금 특혜, 심각한 문제"

- 부여군 농민회의 과제와 앞으로의 활동 계획에 대해서 말해 달라. 과연 지금과 같은 방식의 농민운동이 지속가능하겠는가.
"전농 창립 당시 666만 명에 비해 지금(2019년)은 농민 수가 224만 5천 명으로 삼분의 일로 줄어들고 고령화가 매우 심각하다(65세 이상이 11.5%에서 47.0%). 활동가도 줄고, 소수의 활동가들도 과거에 비해 영농규모가 커서 운동에 어려움이 있다. 전업적 노동조합운동과 달리 농민운동은 본인의 헌신과 희생에 기초하고 있다.

전농의 활동도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예전보다 활동이 못하다. 농업소득만으로는 생계유지가 어려우니 여성들이 직장(요식업·돌봄·사회복지 등)을 구해 농사를 떠나 이른바 '홀아비 농사꾼'이 즐비하다. 경제적 이유로 과도한 농업노동에 시달리니 활동할 시간이 제약된다. 지속가능한 농민운동을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제일 큰 고민이다.

부여군은 농업 여건이 좋아 과채류를 중심으로 전국적 주산지를 형성하고 있다. 부여군은 굿드레 10품(밤·수박·토마토·딸기·멜론 등)을 집중 육성중이다. 반면 급식이나 반찬으로 가장 많이 먹는 무·배추·양파·감자·당근·마늘 등 기초 채소류를 자급하지 못하고 외부에서 구입하게 되었다.
 
산골 유기농하우스
 산골 유기농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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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화작물 중심의 생산은 장기적으로 부여농업과 농민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다양한 작물이 생산·공급될 수 있는 시스템을 고민하고 있다. 이를 위해 '공공급식출하생산자회'에 1000여 농가를 조직하려 하고 있다. 농민 권리, 소비자 권리, 건강한 먹을거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친환경학교급식을 넘어 공공급식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지금 농협을 중심으로 한 학교급식 시스템으로는 한계가 있다.

부여군이 최근 180억 원 규모의 유기농복합지원센터를 유치하였는데, 자칫 건물만 짓고 끝날 가능성이 크다. 농민이 생산한 농산물이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공급·유통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 정부의 농정에서 꼭 바꾸어야 할 것이 있다면?
"작년 농업회의소가 농민정책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는데 제일 많이 나온 것이 농촌인력 부족이었고, 그 다음이 보조금 특혜 문제였고, 그 다음 높은 것이 농민수당 인상이었다.

농업인력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외국인 7만 원, 아주머니 6만~6만 5천 원 했는데, 올해는 코로나19의 영향 등으로 10만 원~11만 원으로 상승하였다. 최근 경남·전남에서 양파 수확 시 하루에 13만 원-15만 원을 지불하였다고 하는데 부여군도 곧 그렇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부여군은 9월부터 밤 수확으로 가장 바쁜데 1 농가당 버스 한 대의 인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이에 대해 효과적인 대책을 수립하지 못하고, 농가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부여군 농민회 권혁주 사무국장(왼쪽), 부인 김지숙(여성농민회)과 인터뷰 하는 필자(오른쪽)
 부여군 농민회 권혁주 사무국장(왼쪽), 부인 김지숙(여성농민회)과 인터뷰 하는 필자(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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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보조금 중심의 예산 편성과 집행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본다. 지역 유지를 비롯해 특정인이 농업보조금(시설보조금 등)을 많이 받고, 이들이 보조금 행정과 엮여 지역의 변화를 거부한다.

연말이나 1월 초 군청과 농업기술센터에서 각종 사업안내서를 배포하면 농민들은 그것을 보고 사업목록 중에 무엇을 할지 고른다. 사업 중에 필요한 사업이 없으면 받지 않으면 되는데, 억지로 무리해서 보조사업을 해서 규모를 키운다. 이것은 독약이다. 농민들이 사업에 맞춰 줄을 서게 되고, 본인이 원하는 농사나 사회가 필요한 농사를 짓고 작목을 선택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다.

예산 편성권을 지자체에 일부라도 권한을 넘겨주었다면 지금보다는 나아졌지 않을까 생각한다. 보조사업은 긍정적인 요소가 하나도 없다. 보조사업 대신 농민수당을 올려주는 게 낫다.

농촌정책도 하드웨어에 획일적으로 돈을 쏟아 붓는데 아무 도움이 안 된다. 박진도 교수님이 최근 농촌개발정책에 사용되는 재정을 대폭 삭감하여 농어촌주민에게 직접 수당으로 주자고 하시는데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정부가 그런 정책을 할 의지가 있는지가 문제다".

부여군 농민회에는 현재 100여 명의 회원이 속해 있다. 그 가운데 회비를 내는 활동적인 회원은 50여 명인데 50-60대가 가장 많아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은 편이다. 부여군 농민회를 주도하는 그룹은 대학 졸업 후 농업(농촌)에 투신한 사람들이다. 농민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권혁주(48)는 서울에서 나고 자라 대학을 졸업했지만, 농민운동가의 꿈을 안고 대학 선·후배의 권유로 2000년 농촌에 투신했다. 그리고 그의 아내도 대학 때(2001년) 농활을 온 인연으로 고향(서울)이 아닌 부여에 2006년 3월에 귀농하여 그 해 12월에 결혼하였다.

부여군 농민회원들은 진보적이고 합리적이고 헌신적이어서 지역사회의 신망이 높은 편이다. 반면에 선명하고 강한 이념과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정치적 성향 때문에 일반 농민과 군민들이 꺼리기도 한다. 부여군 농민회는 주요한 활동을 부여군 여성농민회(회원 약 50명)와 함께 한다. 남편은 농민회원, 부인은 여성회원인 부부가 많다. 그만큼 농민회의 결속력이 강하다.

전농은 전국적 정치투쟁에 비해 국민 공감대 활동과 지역 실천이 상대적으로 미흡하다는 평가를 듣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평가가 반드시 온당한 것은 아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지역농업 조직화와 로컬푸드 실천, 지역문제 해결 등 시군농민회 차원의 다양한 시도가 진행되었고, 지역농업의 변화를 추구하는 활동도 진행되었다. 부여군 농민회의 지역 활동도 하나의 좋은 예다.
 
부여군 농민회 깃발
 부여군 농민회 깃발
ⓒ 부여군 농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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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인터뷰를 마치며, 부여군 농민회의 경우에도 전농의 정치투쟁에 복무한 것에 비하면 '지역농업과 지역정치'의 주인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갖기 위한 노력은 미흡했다고 느꼈다.

기후위기, 먹을거리 위기, 농업위기, 농촌소멸 위기 등 복합위기 시대를 맞이하여 농정 틀 전환을 위한 전농과 시군 농민회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농업·농촌·농민 문제를 농민만의 이슈가 아닌 농촌 주민들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고, 나아가서 국민적 시야로 확장해야 한다. 대항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다른 계급・계층을 최대한 내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설득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국민들은 기후위기와 먹을거리 위기뿐만 아니라 불평등 문제, 청년 문제, 부동산 문제, 경제침체 등 사회경제적 문제의 충격을 완화하는 완충 역할로써 농업·농촌을 이해한다.

농민이 행복해야 국민이 행복하다. 창립 20주년에서 선언했듯이 '농업의 다원적 기능 확대'와 '생활과 생산과 투쟁의 공동체가 실현되는 농민대중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한 구체적인 활동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부여군 농민회가 부여군 농업과 지역사회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할 때, 전국농민회총연맹이 염원하는 '농민들의 풍요롭고 인간다운 삶'도 앞당겨질 것으로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박진도 기자는 충남대 명예교수로 지역재단 상임고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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