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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주부에게는 집안일 하나하나가 쉽지 않은 도전 과제다. 일과 병행하기는 했으나 결혼한 지 16년이 되어가니 가사 일로 손에 물 묻힌 세월도 적지 않다. 하지만 나의 주부로서의 살림 점수는 낙제점에 가깝다.

반면에 내 여동생은 병원에서 삼교대까지 하며 아이를 키우기가 버거워 간호사 일을 그만두고 10년 가까이 전업 주부로 살았다. 그 세월 동안 가정 주부로 산 여동생의 집안일 솜씨는 혀를 내두른다.

단순히 설거지하는 것만 보아도 속도와 일처리 효율성에선 난 따라가기 어렵다. 나는 설거지는 식기세척기에 의존한 지 오래인 데다, 그마저도 남편의 일이 되다보니 설거지라는 노동을 처리하는 나의 능력은 동생에 비하면 형편없는 수준이다. 다른 가사 일도 말해 봐야 입 아프다.

노동의 가치를 깎고 싶지 않은 마음
 
한 땀, 한 땀, 흘린?땀의 대가에 추가 보상은 못할망정, 깎기는 싫었다.
 한 땀, 한 땀, 흘린?땀의 대가에 추가 보상은 못할망정, 깎기는 싫었다.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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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동생도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니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가사와 일의 균형점을 찾느라 고심하는 것 같았다. 전업 주부였을 땐 거의 모든 집안일을 혼자 처리해 왔던지라 집안일을 놓자니 집이 엉망인 것 같고, 집안일까지 하자니 몸이 죽어나가는 모양이다. 동생이 일과 가사의 밸런스를 맞추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직장에서의 일은 통장에 '급여'라는 보상이라도 주어지지만, 안 했을 때만 티가 많이 나는 집안일은 언제나 '성취 욕구 제로'인 과제였다. 퇴근하고 저녁 식사 후 집안일을 처리해야 하는 나로서는 집안일은 되도록 적은 횟수와 양으로 빠르게 처리해야 할 일이다. 내게 집안 일은 힘은 들고 보상은 적으니 보람이 없는 일인 것이다. 그러니 더 안 하게 되고 더 실력이 줄 수밖에.

이런 나여서인지 몸으로 하는 노동엔 특별한 가치가 있다. 나는 오랫동안 K세탁소에만 우리집 세탁물을 맡겨 왔다. 그 세탁소가 세탁물 수거와 세탁 후 배달까지 해주었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한 내게는 안성맞춤이었다. 일하는 주부에겐 세탁물을 세탁소에 맡기러 가야 하는 시간, 찾아와야 하는 시간이 모두 '일'이니 그 부분을 조금이라도 단축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거래처는 없다. 

몇 년 전에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수거와 배달이 되는 세탁소를 찾는 일이 급선무였다. 이사 온 곳이 이전 집과 멀지 않은 곳이어서 K세탁소에 부탁하여 계속 거래를 이어 갈 수 있어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그때 세탁소들도 거래 주거 단지가 따로 정해져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이 세탁소의 최대 단점이라면 카드 결제가 안 된다는 점이다. 세탁소 사장님이 영세점이라는 이유로 처음에 카드 단말기가 없다고 하셨을 때, '뭐 이런 곳이 있나' 싶었지만 몇 번 거래해보니 세탁물 수거와 배달 시간이 빠르고 정확했으며, 무엇보다 사장님의 성실함이 믿을 만했다. 거래한 지 몇 년이 지나고 상호 신뢰가 쌓이자 주고받는 세탁물 가격 영수증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언젠가 봄이 되자 온 가족의 겨울 옷 드라이클리닝 비용이 꽤 나왔다. 지갑에 그만한 현금이 없어서 추후 계좌 이체하기로 한 날, 세탁 비용이 많이 나왔다고 내가 남편에게 조금 불평했던 모양이다. 그 말을 듣고 남편은 현금 거래하는데 세탁소 사장님께 좀 깎아달라고 하라는 것이었다. 그때 난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남편에게 말했다.

"몸을 움직여 일한 사람에게 지불할 돈은 깎고 싶지 않아."

실제로 그랬다. 야만적인 극자본주의 사회에서 몸을 움직여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만큼 거짓 없는 일이 어디 있을까. 내가 몸을 움직여 하는 일에 서툴어서인지, 자본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는 행태에 질린 탓인지, 몸을 움직여 하는 노동은 내게 다른 가치로 다가온다. 한 땀, 한 땀, 흘린 땀의 대가에 추가 보상은 못할망정, 깎기는 싫었다.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연봉 1억이 넘는 택배 기사들이 뭐 어떤가
 
아들이 현관문 앞에 걸어 놓은 택배 기사님에 대한 감사 문고리. 저도 감사합니다~^^
 아들이 현관문 앞에 걸어 놓은 택배 기사님에 대한 감사 문고리. 저도 감사합니다~^^
ⓒ 정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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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코로나 상황이 오래 지속되다 보니, 우리 집도 장보기를 택배로 이용하는 날이 늘었다. 택배 물량이 급증하다 보니 연봉이 1억이 넘는다는 택배 기사에 대한 뉴스 기사도 보았다. 

실제로 택배 기사에게 1억이 넘는 연봉이란, 건당 700원가량으로 책정된 택배물을 월간 1만 박스(월 근무일수 25일로 가정했을 때, 하루 배송물량 약 400여 개, 분류 작업 6시간+배송, 집하 작업 8시간, 하루 총 노동시간 14시간, 시간당 50여 개 배송 분량) 정도 배송해야 가능한 액수라고 한다.

'연봉 1억 넘는 택배 기사' 류의 제목으로 각종 포털에 실린 이 기사들이 '노동에 대한 아무 대가 없는' 분류 작업 시간에 대해 개선을 요구하는 택배 기사들의 목소리가 나올 즈음이었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도 '연봉 1억 받는 택배 기사'라는 제목에는 왠지 택배 기사는 1억을 받으면 안 된다는 무언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 것 같아 불편했다. 말도 안 되는 노동 시간과 노동량에 대한 정당한 대가 요구를 폄하하려는 목소리는 누구의 목소리인가.

우리나라는 유독 '몸으로 일하는 노동'에 박해왔다. 세계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30-50 클럽' 국가(1인당 국민소득 3만 불 이상, 인구 5천만 명 이상인 나라)인 우리나라의 산업재해 사망률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은 불명예다.

그런 점에서 최근 MZ세대들 사이에서 택배 일에 대해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은 반갑게 들린다. 일한 만큼 수익을 창출한다는 직업적 특성 때문이다. 허례허식에 얽매이지 않는 젊은 세대들이 노동의 가치를 정상화시키는데 일조해 주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다른 나라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단순히 그 나라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우리 자신을 좀 더 깊이 알기 위해서입니다. 운전할 때 백미러를 보는 게 뒤로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잘 가기 위해서인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우리가 '밖'의 세상을 보는 건 사실 우리 '안'을 좀 더 잘 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민낯을 그대로 비춰주고, 우리의 일그러진 모습을 낯설게 보여주는, 그런 '불편한 거울'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 김누리 지음,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본문 내용 중

보수를 받지 않는다고 해서 주부들의 가사 노동이 평가절하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카드 결제가 안 되는 점은 아쉽지만, 성실히 우리집 세탁물을 관리해 주시는 K세탁소 사장님의 소중한 노동 값을 앞으로도 깎고 싶지 않다. 연봉 1억이 넘는 택배 기사들이 더 이상 뉴스 거리가 되지 않는 대한민국이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 함께 기재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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