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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를 좋아하세요?"

내 대답은 간단히 예스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쭉 좋아했고 아무리 못해도 일주일에 한 번, 많을 때는 사나흘을 연달아 먹을 때도 있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배가 고파도, 배가 불러도, 떡볶이라면 사양하지 않고 젓가락을 꺼내 든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영 입에 맞지 않을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 그건 비교적 간단하게 이해가 되지만 혼란스러운 건 이런 대답이 아닐까 싶다. 

"맛있는 떡볶이는 좋아하죠."

너무 당연한 말이라 묘하게 맥락을 복잡하게 만든다.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러니까 그 말은, 어쩌다 운 좋게 내 입에 기막히게 딱 맞는 떡볶이가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상 그 음식에 대한 선호도는 딱히 없다는 대답으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나 역시 '맛있는' 음식을 좋아한다. 떡볶이라면 고민 없이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누군가 설탕 대신 소금을 들이붓고 떡 대신 고무를 넣었다면 손사래를 치며 도망갈 것이다. 다행히 그 정도로 엉망인 건 보지 못했으니 간혹 입에 맞지 않는 것이 있었다 한들, 나는 여전히 떡볶이를 좋아한다.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박병석 국회의장을 예방하기 위해 의장실에 들어서고 있다.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박병석 국회의장을 예방하기 위해 의장실에 들어서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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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많이 돌아왔다. 최근 윤석열 대선 예비후보(전 검찰총장)이 말한 '건강한 페미니즘'에 대한 말을 들으며 이런 비유를 떠올렸다(관련기사 : 윤석열 "페미니즘, 정치적으로 악용... 남녀 간 건전 교제 막아" http://omn.kr/1uoly). 무언가를 말할 때 구구한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그 진의를 의심하게 만든다. 페미니즘을 음식에 빗대는 것은 오류가 많겠으나, 그의 말을 나는 이런 맥락으로 받아들였다. 

'페미니즘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내 세계관과 딱딱 맞아떨어지는 유니콘 같은 존재가 나타난다면 그때는 한 번 생각해 볼 수도 있겠네요.'

간단히 말해, 선 긋기이자 밀어내기로 이해했다.

나는 페미니즘을 배운 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한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그것이 남녀가 인간으로서 동등하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동등하게' 살아가고자 생겨난 학문이자 운동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 취지에 공감한다면 바깥에서 재단하고, 물어뜯을 것이 아니라 우선은 그 안쪽으로 들어와 현실을 함께 들여다보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하지만 아무래도 그런 일은 요원해 보인다. 그는 페미니즘으로 인해 남녀 간의 '건전한' 교제가 막힌다는 둥의 언급도 했으니 이건 또 무슨 해괴망측한 이야기인가. 

말실수라고 믿고 싶다. 한쪽의 위력이 행사되는 관계는 교제가 아닌 폭력이다. 페미니즘을 잘 몰라도 이것만은 선명하다. 더구나 이 언급이 저출생 문제를 말하는 맥락에서 나왔다고 하니 더욱 눈앞이 캄캄해진다.

여성의 경력 단절을 해결하는 것이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 대목에서 잠시 안도할 뻔했으나 그것이 곧 국가 전체에 도움이 되는 것이고, 그 또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이뤄져야 한다는 말에 다시금 숨이 턱 막혔다. 여성은 단지 국가의 이익에 따라 가정 안팎을 오가야 하는 것인가.

여성의 취업이 행여 예상한 것만큼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경력을 뺏을 것인가. 대한민국 여성의 존재는 그렇게 소비되어야 마땅한가. 그는 페미니즘이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것을 우려했지만 정작 그것을 이용하려는 것이 누구인가 의심스럽다. 

'건강한' 페미니즘이네, 래디컬이네 운운하며 굴레를 씌우지 말고 간단명료하게 성 평등이라는 원칙에 동의한다고 말하는, 나아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정치적 지도자를 바란다. 실천 과정에 있어서 잘못된 것이 있다면 함께 고쳐나가면 될 일이니까. 민주주의도 그렇게 번성해 온 것이 아닌가. 

정 싫으면 싫다고 말할 배짱이라도 보여 주는 것은 어떨지. 지금의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다고, 기울어진 운동장이 달콤하다고 말이다. 물론, 그 배짱 있는 정치인을 지지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음을 덧붙인다.

태그:#윤석열,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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