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최근 JTBC 예능프로그램 <1호가 될 순 없어>에 출연한 개그맨 김경아씨가 시부모님과 함께 출연한 영상을 보았다. 김경아씨는 자신이 '이혼하지 않는 이유가 시부모님'이라고 스스럼 없이 말했다. 그와 시부모님의 관계는 잠깐의 영상만으로도 우리가 생각하는 고부관계에 대한 사회적 통념과 틀을 과감히 허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아보자면, 전날의 과음으로 인한 숙취로 힘들어하는 며느리 김경아씨가 자신의 방 침대에서 겨우 일어나서 시어머니께서 타주신 꿀물을 맛있게 마시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그는 한잔을 거뜬히 마신 후, '한잔 더!'를 당당히 외치고 있었다.

그의 남편인 권재관씨도 자신의 아내가 며느리로서 과연 저렇게 할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하여 개인적으로 촬영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며느리지만 단순하게 '시' 자를 빼고 그들을 나의 엄마, 아빠로 생각하면서 살면 충분히 가능한 행동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매우 드문 사례이다. 

나의 시월드
 
결혼
 결혼
ⓒ pixabay

관련사진보기

 
나는 내 또래에서는 다소 빠르다고 생각하는 28세에 남편과 결혼을 하였다. 결혼 전, 사람들은 나에게 '시월드'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직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공포감과 두려움을 조장하였다. 당시 '시'자가 들어가는 '시금치'도 안 먹게 되는 날이 언제쯤 나에게 올까 궁금해한 적도 있었다.

나는 결혼을 다소 빨리 했지만, 남들이 놀랄만한 일도 서슴없이 행하는 독특한(?) 새댁이었다. 나는 결혼 전 많은 사람들이 당연시 하는 '분가'를 택하지 않고, 시부모님께서 사시는 집에 같이 살기로 결정한 것이다. 사람들은 나의 선택을 듣자마자 한사람도 빠짐없이 이런 식의 말들을 한 것으로 기억된다.

"어떻게 그런 결심을 할 수 있지..."
"그건 아닌데... 다시 생각해봐..."


나는 그들의 말이 틀리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나만의 예상와 달리, 불과 3개월 만에 시댁을 나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결정은 오로지 나의 결정이었고 시부모님께 진지한 논의를 드리지 않았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그렇게 남편을 설득하여 분가를 하게 되었다.

내가 결혼할 당시 나의 시어머니께서는 내가 분가하기를 원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들어오겠다는 며느리를 막지는 못하신 것이다. 이후 시어머니께서는 사용하지 않았던 방을 싹 정리하시고 아들과 며느리를 위한 신혼방을 타고난 예술감각으로 정성 들여 꾸며주시기까지 하셨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정말 며느리로서 죄송할 일이고 시어머니께서 버럭 화를 내셔도 나는 할말이 없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시어머니께서는 일체 나에게 화를 내진 않으셨고 속상함을 비치지도 않으셨다. 남편을 통해서 듣기로는 성급한 내 결정과 행동에 화가 많이 나셨지만 내색하지 않으신 것이다. 그리고 시어머니께서는 급한대로 내가 쓸 살림살이를 장만해 주시기까지 하셨다. 지금도 당시 사주신 냄비와 그릇 등을 아직도 잘 쓰고 있다.

시어머니는 가끔 나에게 웃으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너를 보면서 꼭 나를 보는 것도 같거든... 그래서 내가 너를 더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아... 나도 좀 철이 없는 편이었거든..."

최근에는 고부갈등 혹은 시댁과의 갈등으로 인한 이혼도 상당히 증가하는 추세이다. 포털을 검색해보면 다양한 고부갈등 사례부터 구체적인 갈등 극복 방법, 심지어 고부갈등으로 인한 이혼 진행까지 자세히 나와 있다. '참고 사는 것이 미덕'이라고 말하거나, 인내심으로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나만의 고부갈등 해소법

나 또한 지금까지 시어머니와 늘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시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시대적으로 혹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솔직하게 나의 주장을 펼쳤다. 남편은 가끔 나에게 그냥 '네'라고 하는 게 그렇게 어렵냐고 했지만, 난 어려워서가 아니었다. 나의 철학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나는 속으로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맞다고 하여 그냥 넘기다 보면 이후 더 큰 갈등이 초래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참다가 잠재적인 화와 분노를 잘못된 방향으로 표출 시켜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잠시 고부간에 냉전의 기류가 흐르고 서로 불편할지언정 갈등을 수면으로 드러내어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갈등을 해소해나가는 것이 맞다고 확신했다.

나의 이런 철학과 더불어 시어머니의 인품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었다고 해아할까. 시어머니께서는 이렇게 나와의 갈등이 발생하면 일단 그 자리에서 어떤 결론을 짓진 않으셨지만 나름 오랜 시간 고심해보신 후 나에게 당신의 의견을 메시지로 정리해서 보내주셨다. 사람은 누구나 좋지 않은 일을 겪은 후에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정리되는 면이 있는 듯하다. 나 역시 시어머니의 말씀에 차분히 나의 생각을 정리하여 답장을 드렸다.
 
메시지로 서로의 갈등을 해소해나가는 과정
 메시지로 서로의 갈등을 해소해나가는 과정
ⓒ pixabay

관련사진보기

 
그렇게 나와 시어머니는 몇가지 갈등을 풀어나갔던 것 같다. 현재 나는 우리 시어머니의 14년차 솔직담백한 며느리로 살아가는 중이다. 인간관계가 백퍼센트 서로 맞을 수 없지만 서로 맞춰가면 노력해야하는 것이 순리이기에, 시어머니가 해주시는 조언도 잘 새겨보려고 노력한다.

"나는 네가 솔직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 좋은데, 조금만 더 네 생각을 갈등이 없도록 잘 말했으면 좋겠다..."

시어머니의 반찬에 담긴 마음

최근 시어머니께서는 오랫만에 우리 집에 오셔서 아이들을 돌봐주셨다. 텅 빈 냉장고를 보시고 마음이 아프셨나 보다. 나는 원래 먹는 반찬 위주로만 만들고 버리는 반찬을 최소화하자는 주의라서 반찬을 이것저것 많이 해놓지 않는다. 그래도 시어머니께서는 그게 영 마음이 아프셨나 보다.

그 이후, 시어머니께서는 나에게 전화하셔서 무슨 반찬을 해주는 게 좋겠냐고 자주 물어보셨다. 그리고 우리 집에 오신 날, 멸치볶음 반찬 한가지만 해 놓고 가신 게 계속 불편하셨는지 미안하다고도 하셨다. 

나는 진심으로 시어머니께서 아이들을 기쁘게 돌봐주시면서 우리 부부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배려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다. 그래서 소정의 아주 작은 마음을 표시했는데 어머니는 이것조차 불편해하셨다.

"거래하는 관계도 아닌데 무슨 돈을 송금했니..."
 
시어머니께서 해주신 밑반찬
 시어머니께서 해주신 밑반찬
ⓒ 김주희

관련사진보기

   
시어머니께서는 계속 반찬 이야기를 하시더니 결국 남편의 퇴근 길에 몇가지 반찬을 손에 들려서 보내주셨다.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맞춤형으로 만들어주셨다. 둘째가 좋아하는 마른오징어볶음과 달콤한 우엉조림, 아이들이 모두 잘 먹는 계란장조림, 그리고 시어머니의 최애 여름철 추천 음식! 부추와 함께 버무린 매콤새콤한 오이무침을 보내주셨다.

오늘 아침 시어머니께서 보내주신 밑반찬 4종 세트를 활용하여 아이들에게 아침을 차려주었다. 특히 나에게는 부추를 곁들인, 빨갛고 새콤하게 무친 오이무침은 완전 밥도둑이었다. 며칠 전 집에 오셨던 시어머니께서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얘 여름엔 다른 반찬 필요없더라. 새콤하게 무친 오이, 그게 그렇게 시원하고 맛있더라."

덧붙이는 글 |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릴 수 있습니다.


태그:#고부갈등, #시어머니, #며느리, #시월드, #분가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일상 속 크고 작은 이야기를 전하는 행복예찬론자

이 기자의 최신기사40대의 방황이 주는 의미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