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의 열정을 되살린 야구대표팀이 마침내 준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김경문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2일 일본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녹아웃 스테이지 2라운드 경기에서 이스라엘에 11-1, 7회 콜드게임 승리를 거두고 준결승에 올랐다.

준결승에서는 숙명의 한일전이 기다리고 있다. 일본은 미국과 10회 승부치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미국에 7-6 역전승을 거두고 준결승에 합류했다. 한국과 일본은 4일 오후 7시에 요코하마에서 한판 승부를 벌인다.

한국은 4년 전 베이징올림픽에서도 준결승에서 일본을 만나 승리하며 결승에 올라 금메달까지 목에 건 바 있다. 다만 가장 최근에 열린 두 차례 맞대결에선 모두 패했다. 2019년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 12 슈퍼라운드에서 8-10, 결승전에서 3-5로 무릎을 꿇었다. 한국이 프로 정예 멤버로 대표팀을 꾸리기 시작한 1998년 이후로 일본과의 상대 전적은 19승17패로 근소한 우위다.

한일전에서 승자는 결승에 진출하여 최소한 은메달을 확보하게 된다. 설사 패하더라도 패자부활전에서 한번의 기회가 더 남아있고, 2연패를 하게 되면 3·4위 결정전으로 밀려난다. 앞으로 2연승을 하게되면 금메달, 3연패만 하지 않으면 최소한 동메달을 확보할 수 있다.

팬들의 기대감을 되살리다
 
 2일 일본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야구 녹아웃스테이지 2라운드 한국과 이스라엘의 경기. 7회말 11대1로 콜드게임으로 경기를 이긴 한국 김경문 감독이 더그아웃으로 향하고 있다.

2일 일본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야구 녹아웃스테이지 2라운드 한국과 이스라엘의 경기. 7회말 11대1로 콜드게임으로 경기를 이긴 한국 김경문 감독이 더그아웃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아직 대회가 진행중이기는 하지만 김경문호의 선전이 보여준 가장 큰 의미는 한국야구를 바라보는 팬들의 기대감을 되살렸다는 데 있다. 야구 대표팀이 도쿄올림픽에서 준결승까지 올라오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올림픽 휴식기를 코앞에 두고 KBO리그 내에서 방역수칙 위반 선수가 줄줄이 나오면서 리그가 조기 중단되었고, 야구계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여론의 질타가 쏟아졌다.

대표팀 역시 당초 최종엔트리에 선발되었던 박민우(NC), 한현희(키움)가 논란에 휘말려 하차하게 되면서 전력에 타격을 입었다. 가뜩이나 선수선발의 공정성 논란에 휩싸여있던 김경문 감독을 보는 시선도 곱지 않았다. 결국 대표팀은 이래저래 싸늘한 여론앞에서 무거운 분위기를 안고 도쿄행에 올라야 했다.

빠듯하고 복잡한 일정, 만만치 않은 상대국들의 전력도 부담이었다. 이번 올림픽 야구는 참가국이 6개국 밖에 없다보니 패자부활전이 도입된 '더블 엘리미네이션' 이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전체적으로 개최국인 일본에 유리하게 짜였다는 지적이 많았다. 김경문호는 7월 29일 이스라엘과 B조 조별예선 첫 경기를 치를때까지만 해도 경기장인 요코하마스타디움을 밟지 못하며 현지 적응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또한 현역 메이저리거는 없지만 빅리그 출신 선수들이 다수 포진한 이스라엘, 미국, 도미니카 등의 전력은 하나같이 만만치 않았다.

김경문호는 개막전부터 이스라엘에 연장까지 가는 고전 끝에 6-5로 간신히 승부치기승을 거뒀다. 미국과의 2차전에서는 답답하 경기 끝에 2-4로 완패하며 조 1위를 놓쳤다. 저조한 경기 내용과 결과에 팬들의 실망감이 커졌다. 심지어 도미니카와 녹아웃 스테이지 맞대결에서는 8회까지도 1-3으로 무기력하게 끌려가며 패색이 짙었다. 

하지만 '야구는 9회부터'라는 격언처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도미니카전 9회말의 대반전이 모든 운명을 바꿨다. 한국은 첫 타자인 최주환의 안타를 시작으로 대주자 김혜성의 도루, 박해민-이정후의 연속 적시타에 이어 2사 3루에서 주장 김현수의 극적인 끝내기 안타가 터지며 거짓말처럼 4-3으로 대역전승을 거뒀다. 기세를 탄 한국은 2일 다시 만난 이스라엘을 상대로 타선이 대폭발하며 11-1 콜드게임승을 거두고 준결승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대표팀을 바라보는 분위기도 달라졌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부정적인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면, 도미니카전 이후 대표팀의 선전에 대한 찬사와 격려 위주로 여론이 극적인 반전을 맞이했다. 무엇보다 한동안 KBO리그에서 실력보다 과도한 대우와 인기에 도취되어 교만해졌다는 비판을 받았던 것과 달리, 대표팀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투혼과 저력을 보여주며, 국민들이 모처럼 한국야구에 기대했던 '감동'을 되찾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각종 우려와 비판 속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밀어붙인 김경문 감독의 뚝심도 돋보인다.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병역 꼼수 논란에 휘말렸던 오지환과 박해민을 대표팀에 복귀시킨 데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두 선수는 대표팀에서 고비마다 좋은 활약을 선보이며 김경문 감독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특히 오지환은 이스라엘전에서만 2연속 홈런을 뽑아내며 승리의 주역이 됐다. 대체선수로 뒤늦게 합류한 오승환도 도박논란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이겨내고 대표팀 부동의 마무리로 활약 중이다.

여기에 이의리-김민우-이정후-강백호 등은 투타에 대표팀 세대교체의 주역이 된 젊은 선수들이 첫 올림픽의 부담을 덜고 선전한 것도 고무적이다. 마운드는 강력한 이닝이터는 없지만, 적재적소의 불펜 운용으로 대량실점을 최소화하며 견고한 짠물야구를 펼치고 있다. 김경문 감독은 화려한 경력에도 프로무대에서는 우승경력이 없지만, 유독 대표팀 지휘봉만 잡으면 마치 신들린 듯 시도하는 용병술과 작전이 척척 맞아떨어지며 승부사다운 본능을 발휘한다. 

물론 대표팀의 성적이 그동안 KBO리그에서 벌어진 각종 사건사고나 야구계의 도덕적 해이까지 자칫 미화하는 수단이 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야구의 국제 경쟁력이나 대표선수들이 태극마크의 가치를 바라보는 진정성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만회할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한국야구가 2000년대 후반 폭발적인 인기를 이끌며 제2의 중흥기를 맞게된 것도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시작으로 한 대표팀의 국제대회 호성적이 중요한 전환점이 된 바 있다.

김경문호가 끝까지 그 책임감의 무게를 잊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면, 결과를 떠나 그동안 한국야구에 실망했던 팬들도 마음을 돌려 따뜻한 박수를 보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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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대표팀 한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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