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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 <우리말샘>에서 '는쟁이'를 찾으면 네 가지 뜻이 나온다.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에서 "는쟁이"를 찾으면 네 가지 뜻이 나온다.
ⓒ 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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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밭에 는쟁이가 을매나 나는지 아주 넌덜머리가 난다와."

다른 말은 얼추 알아듣겠는데 '는쟁이'는 낯설다. 이 말도 사라지는 지역 말 가운데 하나인데, 이제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 입에만 남았다. "앞밭에 는쟁이가 어찌나 (돋아) 나는지 아주 넌더리가 납니다"하고 바꿔 말할 수 있겠는데, 말맛은 싱겁기 그지없다. '는쟁이'를 찾으면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나오지 않고 <우리말샘>에 다음과 같이 두 가지 뜻이 나온다. 
 
「방언」 '송사리'의 방언(전북).
「방언」 '명아주'의 방언(강원).

같은 말이지만 강원도에서는 '명아주'이고 전라도에서 '송사리'다. 먼저 송사리를 가리키는 말부터 톺아본다.

송사리는 우리에게 친숙한 만큼 지역마다 송사리를 이르는 말도 가지가지다. 논고기, 눈발떼기, 눈재이, 눈쟁이, 는쟁이, 눈젱이, 눈치, 눈타리, 솔채이, 피리, 갈피리, 곤쟁이, 꽁자리, 꽁사리, 쌀고기... 얼핏 봐도 '눈-'이 붙은 말이 꽤 많은데, 송사리 몸에 견줘 유난히 눈이 큰 까닭이겠다. 전라도 말로 송사리를 '는쟁이'라고 하는 모양인데 '눈쟁이'에서 소리가 달라진 말이 아닐까 싶다. 동해 삼척에서는 '송사리'라는 말도 쓰지만 '논고기'라고도 했다.

'명아주'를 가리키는 말

짐작했겠지만 '는쟁이'는 '명아주'를 가리키는 동해·삼척 지역 말이다. 말이란 게 어느 날 뚝딱 하고 생겨나는 것은 아닐 테니 우리 조상들은 명아주를 뭐라고 했는지 옛 문헌을 한번 들춰 본다.

<신증유합>(1576)과 <유합>(1664)에서는 '명회'라고 했고, <역어유해>(1690)에서는 '명화ᄌᆡ'로 나온다. 그리곤 19세기에 이르러 '명아ᄌᆡ, 명아ᄌᆞ, 명아지, 명아쥬, 명회' 따위로 썼다. '도ᄐᆞ랏'이라고도 했는데, 이 말은 최세진이 쓴 <훈몽자회>에 나온다. 한자 '려(藜)'를 '명아주 려'로 새겼고, '례(藜)'는 '도ᄐᆞ랏 례'로 적었다. 도ᄐᆞ랏은 말 그대로 돝(돼지)이 좋아하는 풀이라는 뜻이다. 소리로만 보면 '명아주'든 '도토랏'이든 '는쟁이'하고는 사뭇 거리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는쟁이'가 들어간 말이 있는지 찾아보면 '는쟁이냉이' 하나가 나온다. 
 
십자화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는 50cm 정도이며, 근생엽은 뭉쳐나고 경엽은 어긋나는데 원형 또는 달걀 모양의 원형이다. 여름에 흰 꽃이 총상(總狀) 화서로 줄기나 가지 끝에 피고 열매는 둘로 갈라지는 장각과(長角果)로 익으며 어린잎은 식용한다. 산지(山地)의 물가에서 자라는데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각지에 분포한다. 

어렵다. 불친절하기 그지 없다. '근생엽, 경엽, 총상화서, 장각과'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사전을 펼쳐보는 사람은 식물학자가 아니라 나 같은 어리보기 아니겠나. 뜻을 몰라 쩔쩔매는 사람을 더욱 궁지로 모는 뜻풀이다.

처음부터 뿌리에서 곧바로 나온 잎(근생엽), 줄기잎(경엽), 어긋나면서 꽃 나기(총상화서), 장각과(긴뿔열매)로 적어 주었더라면 좋았겠다. '냉이'가 붙은 것으로 봐선 냉이 한 종류인 줄은 알겠는데, 앞에 붙은 '는쟁이'는 도대체 무엇인가. 국립수목원 국가생물종지식정보(nature.go.kr)에서 '명아주'를 찾으면 비추천어로 '는쟁이'를 들어놨다.

<우리말샘>에 '는쟁이떡'이 나온다. '나깨떡'을 가리키는 제주말이라고 한다. 나깨떡은 나깨로 만든 떡. 다시 '나깨'를 찾으면, 메밀을 갈아 가루를 체에 쳐내고 남은 '속껍질'이란다. 처음부터 메밀 속껍질로 만든 떡이라고 풀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는쟁이냉이'나 '는쟁이떡' 같은 말은 있는데, '는쟁이'가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말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다만 강원도 말에만 명아주를 가리키는 말로 흔적이 남은 셈이다.  

는쟁이 "이파리가 마름모꼴인 풀"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생각해본다. '는쟁이'를 '는+쟁이' 꼴로 쪼개본다. 이때 '-쟁이'는 소루쟁이, 소금쟁이, 쑥부쟁이, 담쟁이 같은 말에서 보듯 어떤 성질이나 버릇, 특징이 있다는 뜻을 보태는 뒷가지다. 소루쟁이는 소리가 나는 풀이고 담쟁이는 담을 타는 풀이다. 그러니 는쟁이는 '는(?)'의 성질이나 버릇, 특징이 있는 풀로 짐작해 볼 만하다. 다만 지역 말은 누가 받아 적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표기가 다를 수 있다. 그러니 는쟁이, 는장이, 능쟁이처럼 적을 수 있겠다. 
 
마름(앞)과 명아주(뒤)
 마름(앞)과 명아주(뒤)
ⓒ 국립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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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하면 '는쟁이'는 '능쟁이'에서 온 말이 아닐까. '마름 잎을 닮은 풀'로 보면 얼추 아귀가 맞는다. '마름'을 한자로는 '능(菱)'이라고 한다. 실제로 명아주 이파리와 마름 이파리가 엇비슷해 보인다. 제법 나이 든 어른들은 '마름모'를 '능형'(菱形)이라고 배우지 않았나.

'는쟁이'는 이파리가 마름모꼴(능형)인 풀(쟁이)이라는 뜻으로 쓴 '능쟁이'에서 온 말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물론 처음부터 '는쟁이'라고 했을 수도 있다. 다만 어떤 이름이고 아무 까닭 없이 생겨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참고로, '는쟁이'는 없지만 '능쟁이'는 사전 올림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으면 "게의 한 종류. 서리가 내린 후에 나타난다"고 풀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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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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