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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비법’이 있어서가 아니다. 특별한 ‘한 방’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만이 무조건 맞는다는 것도 아니다. 내가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엄마의 레시피는 나에게 오로지 하나뿐인 레시피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일흔 살 밥상을 차려드린다는 마음으로 엄마의 음식과 음식 이야기를 기록한다.[기자말]
해마다 여름이면 백숙을 즐겨 만들어주시던 엄마가 올해는 복날을 며칠 앞두고, 내게 이렇게 묻는다.

"백숙 같은 건 배달해주는 곳 없니?"

순간 나는 잠깐 의아했다. 설마, 복날에 백숙을 배달해서 드시려는 건가? 잠시 생각했다. 엄마가 낯설었다. 그리고 약 20초 후, 난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안 된다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내가 먹고 싶은 치킨, 피자, 햄버거, 초밥... 하다못해 버블티 한 잔까지 배달해서 먹으면서, 왜 백숙만큼은 당연히 엄마가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다른 것도 아닌 복날 백숙은 꼭 엄마가 만들어줘야 한다는 고집스러운 생각.

"아이~~ 있겠지. 당연히 있겠지. 왜 없겠어. 요즘 뭐든 다 배달되는 세상인데. 엄마. 내가 한번 찾아볼게."

나는 그렇게 얘기하고 스마트폰을 꺼내서 동네 이름과 삼계탕 배달이라는 키워드를 넣고 검색했다. 백숙은 배달이 안 될 것 같아, 삼계탕으로 고쳐 검색했더니 엄마와 내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식당 이름과 메뉴, 가격이 주르륵 떴다.

"엄마, 여기에 삼계탕 주문하면 되겠다."
"복날 돌아오는데... 날은 덥고, 아이구. 귀찮아서 삼계탕이라도 어디서 배달해서 먹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마치 내게 변명하듯 이유를 댔다.

"그러엄~ 당연히 덥지. 요즘 같은 날씨에 닭까지 삶으려면 얼마나 덥겠어. 그냥 배달해서 먹어도 되지 뭐. 요즘은 배달음식도 워낙 잘 나오니까."
"네 아빠가 입맛에 맞다고 하실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그게 걱정이었다.

먹기도 전에 지치게 만드는 '백숙'
 
 엄마의 닭백숙
 엄마의 닭백숙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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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대부분 가정에서 백숙을 만들어 먹는다. 백숙은 여름철이면 꼭 먹어줘야 하는 국민 음식이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나는 찜통더위에 그야말로 찜통 같은 솥을 앞에 두고 땀을 흘려본 사람은 알 것이다. 먹기도 전에 지쳐버리는 그 기분을.

우리 집도 여름이면 백숙을 자주 먹었다. 백숙이 그다지 별식이라고 느끼지 않았던 이유도 자주 밥상에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입맛이 없거나, 기운이 없거나, 반찬이 마땅찮다 싶을 때 엄마는 시장에서 닭을 사 와서 인삼, 대추, 마늘을 넣고 푹 삶아주셨다.

푹푹 잘 삶은 닭 한 마리를 엄마는 젓가락과 집게를 이용해서 요령껏 꺼내어 큰 유리 쟁반에 내놓았다. 엄마는 '어서 먹자' '따뜻할 때 어서 먹어라'라며 우리를 채근했다. 내가 젓가락으로 닭 살집을 꼬집으면 엄마는 '손으로 잡고 뜯어먹어야지, 젓가락으로 먹으면 맛이 없다'고 했다. 나는 김이 펄펄 나는 그 큰 닭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럴 때 엄마는 약간은 결의에 찬 표정으로 찬물이 담긴 접시를 가지고 왔다. 물에 손을 잠시 적신 뒤, 닭 다리를 잡았다. 그리고 뜨거워진 손을 다시 찬물에 넣어 식혔다. 그리고 이번엔 닭 날개를 뜯었다. 다시 찬물에 넣고 식히고... 그러기를 반복하면서 엄마는 닭 한 마리를 먹기 좋게 분해했다. 엄마가 닭을 분해하는 동안, 우리는 엄마의 그런 모습을 마치 무슨 묘기라도 보는 듯 '즐감'했다. 

결혼하고 내가 직접 백숙을 만들어보니, 이게 보통, 사람의 진을 빼는 일이 아님을 알게 됐다. 마치 백숙의 노란 육수가 내 몸에서 빠져나온 땀인 것 같았다. 백숙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나면 나는 너덜너덜해진 기분이었다. 누군가는, 땀 흘리며 내 가족 입에 들어갈 음식 해 먹이는 게 사는 재미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분명한 건 한 사람만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밥상은 분명 언젠가는 기울어진다는 거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나도, 엄마가 삼계탕 배달을 물어봤을 땐 잠시 멍했고, 보양식은 엄마가 만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내 몸속에 배어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내 자신이 징그러웠다. 정말 징그러웠다.

언제까지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 앞에 서야할까 
 
 따뜻한 녹두가 찹쌀의 차가운 성질을 보완해준다.음식은 조화와 보완이다.
 따뜻한 녹두가 찹쌀의 차가운 성질을 보완해준다.음식은 조화와 보완이다.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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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복 날, 저녁때 잠깐 들르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친정에 들렀다. 삼계탕을 주문할 식당 번호와 메뉴까지 확보해서 갔는데 웬걸... 집에 들어서니 부엌이 후끈하다. 백숙이 식탁에 떡하니 있다.
 
"엄마, 백숙 만들었어? 배달 시켜 먹는다며?"
"그냥 어설퍼서... 후딱 시장 가서 한 마리 사 와서 끓였다."


백숙을 만들기 전에 일단 육수를 만든다. 물, 양파 껍질을 넣고 약 30분가량 끓인다. 끓기 시작하면 양파 껍질은 건져 낸다. 그 후에 닭을 넣고 끓는 물에 통후추, 황기, 인삼, 미리 2시간 정도 불려둔 녹두와 찹쌀, 통마늘, 대추, 생강을 넣고 약 20분 정도 강불로 끓인다. 고기를 맛있게 먹으려면 육수가 팔팔 끓을 때 넣어야 육질이 쫄깃쫄깃해진다.

마른 홍고추를 찢어서 넣으면 국물이 칼칼하다. 칼칼한 맛이 싫으면 고추를 안 넣어도 된다. 육수가 팔팔 끓으면 불을 줄인 뒤 소금과 국간장, 액젓을 넣고 15분 정도 중약불로 끓인다. 닭고기 육질에 간이 배어든다.

"식기 전에 어서 먹어라."
"두 분이 드시지, 뭐 하러 나까지..."
"요즘엔 아빠랑 닭 한 마리를 다 못 먹는다."


내가 어렸을 때는 백숙의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나도록 싹싹 발라 먹었는데 이제는 음식이 남는다고 했다. 예전에는 백숙을 먹을 때 퍽퍽한 닭가슴살을 부러 남겨두었다가 다음날 닭미역국을 끓이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일부러 남길 필요가 없는 거다. 이날도 백숙이 많이 남았다.

"내일 닭 미역국도 끓일 테니 시간 되면 와서 먹고 가."

엄마는 언제까지 엄마라는 이름으로 뜨거운 불 앞에서 땀을 흘려야 할까. 엄마가 해주는 여름 음식은 엄마의 뜨거운 육수, 엄마의 땀이다. 과년한 딸은 아직도 엄마의 땀을 후루룩 마시며 좀 더 건강해지고 늙은 엄마는 쇠락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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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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