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지난 7월 초, 성북구 인근 카페에서 인터뷰 하고 있는 정주원.
 지난 7월 초, 성북구 인근 카페에서 인터뷰 하고 있는 정주원.
ⓒ 문세경

관련사진보기

 
"제가 대학에 다닐 때 IMF가 터졌어요. 집에서 등록금을 내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어서 아르바이트를 여러 개 했어요."

1978년생 정주원은 어렸을 때부터 영화와 드라마 보는 것을 좋아했다. 드라마를 만들어 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신문방송학과에 들어갔다. 그러나 영화를 만들기보다 배우가 되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연극영화과로 과를 바꿔 다시 대학에 들어갔다.

재학 중에 배우 생활을 시작했으나 학교를 졸업하지 않고 배우 생활을 이어가기에는 경제적 부담이 컸다. 집안 사정마저 안 좋아지자 배우 생활을 그만두고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2005년도에 이랜드라는 회사에 계약직으로 입사를 한다. 

"2년 계약직을 끝내고 정규직이 되기 위해 정규직 시험을 두 번 봤어요. 첫 번째에서 떨어지고 두 번째에 붙었어요. 그리고 열심히 일했어요. 동기 중에서도 승진을 빨리한 편이었어요. 임원이 되고 싶었어요. 임원들 눈에 띄었고, 사업 계획서를 만들어서 브리핑도 했어요. 그런데 할 말은 하는 성격이라 지점장과 경영자에게 회사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했어요. 그래서 승진을 못 했나 봐요. 

노동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계기는 2015년도에 이랜드에서 킴스클럽을 매각한다는 발표를 한 후부터예요. 2007년에 이랜드 노동조합은 거의 붕괴 직전이었어요. 조합원이 2000명에서 35명으로 줄었으니까요.

당시에 홈에버가 홈플러스에 매각되어 홈에버 소속 이랜드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대거 홈플러스 소속이 되었거든요. 이랜드노동조합 원년 조합원들은 몇 명 안 됐고요. 조합원 2000명의 조직에서 35명으로 완전 축소되었죠. 킴스클럽을 매각한다는 시점에서 제가 직원들을 찾아다니거나 전화로 조합 가입을 권유하고 고용 안전을 지켜야 한다고 했어요. 현재 간부들과 그렇게 이랜드 노동조합을 성장시켰고, 현재는 조합원이 700명으로 늘어났어요. 조합원이 늘어나자 회사는 당황했어요."


정규직이 돼도 현실은 그대로... 우울증도 오게 돼
 
 2020년, 8월 홈플러스 직장갑질 규탄 연대 기자회견에 참가하고 있는 정주원.
 2020년, 8월 홈플러스 직장갑질 규탄 연대 기자회견에 참가하고 있는 정주원.
ⓒ 정주원

관련사진보기

 
정규직이 된 정주원은 임원이 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회사가 계열사를 매각하겠다는 발표를 하자, '우리는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2017년에 노동조합 전임자가 되었다.  노동조합 활동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저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조합원들은 성에 차지 않는 거예요. 조합원들이 일하고 있는 열악한 현장은 쉽게 바뀌지 않으니까요. 바쁘게 돌아가는 현장에서 사람이 부족해서 인원 충원을 요구했는데 회사에서는 받아주지 않고, 현장의 부자재가 고장 나고 사무용품 등이 부족해도 자기 돈 주고 사와야 하고요. 이런 현실을 왜 노동조합이 바꾸지 못하느냐는 불만이 많았어요.

그 와중에서도 가장 큰 성과가 있었어요. 회사의 구조조정을 막아냈거든요. 회사가 법인 분리를 하고 위장 계열사를 만들어 저강도 구조조정을 하려고 했는데 노동조합이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을 했어요. 공정위 앞에서 1인 시위를 했어요. (1인 시위 덕분에) 1년 정도 걸리는 수사 기간이 3개월 만에 끝나서 법인 분리를 막았어요. 제가 듣기로는 대한민국 역사상 구조조정 싸움에서 이렇게 빠르게 이긴 사례는 유래가 없다고 해요. 노조 전임자 하면서 굉장히 뿌듯한 경험이었어요(웃음)."


회사의 구조조정을 막아낸 정주원은 십여 년 노동운동을 하면서 가장 보람 있고 뿌듯한 경험을 했다면서 자존감이 한층 올라가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성과를 내기까지에는 마음고생이 많았다.   

"노동조합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다 보니 속내를 드러내기가 힘들었어요. 아마 모든 노동조합의 사무국장들은 비슷할 거예요. 마음속에 병이 있어요. 쉽게 털어놓을 수 없으니까 쌓이는 거죠. 저도 올해 3월부터 갑자기 우울증이 왔어요. 잠을 너무 못 자서 병원에 갔더니 우울증이라고 하더라고요. 수면제를 안 먹으면 잠을 못 자요. 심리상담을 받아야 하는데 많이 기다려야 한대요. 

유통업에서 일하는 노동자, 백화점에서 일하는 사람들, 판매 노동자들은 다 감정노동자잖아요. 감정노동자들은 마음의 병이 심해요. 그래서 제가 민주노총 경기본부와 경기도청에 감정노동자 무료심리상담소를 만들자고 제안했어요. 노동자들에게 생긴 마음의 병은 산업재해거든요. 국가에서 보험이 되는 치료를 해주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무료 심리상담소도 늘려야 하고요."


정주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쩌면 우울증은 활동가에게 오는 '산업재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번뜩 스쳤다. 활동가 인터뷰를 하면서 발견한 놀라운 사실은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두 명도 아니고 7~80% 이상이 같은 증상을 보인다는 건 주목할 만 한 일이다. 

"저는 '맛있는 사과'가 되고 싶었어요"
 
 2020년 5월. 코로나19 로 인한 해고금지 집회때 시민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다.
 2020년 5월. 코로나19 로 인한 해고금지 집회때 시민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다.
ⓒ 정주원

관련사진보기

 
정주원은 어릴 때 엉뚱한 구석이 많은 아이였다. 

"어렸을 때 꿈은 '맛있는 사과가 되고 싶다'였어요. 장래희망을 그리라고 해서 사과를 그렸는데 선생님께 꾸중을 들었어요. 저는 사과나 케이크가 되어서 사람들에게 달콤함을 선물하고 싶었거든요.

한번은 반공 포스터를 그리라고 해서 김일성하고 전두환하고 악수하는 평화통일 사진을 그렸어요. 싸우는 건 안 좋은 거라고 해서 전두환하고 김일성하고 악수하고 평화통일했으면 하는 장면을 그렸더니 또 선생님한테 혼났어요. 반공이 뭔지 몰랐나 봐요(웃음)."


아무리 분단국가라 해도 90년대까지 학교에서 반공교육을 하다니 놀랍다. 어렸을 때는 하지 말라고 하면 하고 싶은 게 더 많을 때다. 정주원은 이유 없이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들을 보고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하마터면 비행청소년이 될 뻔한 시절도 있었다면서 쑥스럽게 웃었다. 

"2016년 11월에 촛불 집회에 갔다가 길을 잃어버렸어요. 촛불 집회에서 예전에 알던 운동권 친구를 만나러 갔는데 길을 잃은 거예요. 연맹 대열에서 이탈해서 사람들을 찾다가 못 찾고 있었는데 그곳에 정의당의 노란색 깃발이 보였어요. 하필 성북구위원회 깃발이었어요(웃음). 정의당이 저와 정치적인 색깔이 맞는 것 같아서 입당했어요. 노회찬 대표를 존경했어요. 그다음부터 촛불집회에 갈 때는 민주노총이 아닌 정의당 깃발을 들고 나갔어요. 촛불집회가 끝나고 나서 대선이 있었어요. 대선을 치를 때 당원들과 함께 선거송도 만들고 그랬어요."

촛불집회에서 우연히 만난 노란색 깃발은 노동조합 활동 다음으로 정주원의 인생을 바꾸었다. 사회를 바꾸는 일을 재미있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당 활동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가볍게 생각했던 지역위원회 활동도 쉬 여기지 말아야 할 것이 많았다. 정주원의 열성적인 활동을 지켜본 당원들은 그를 지역위원장으로 추천했다. 2017년에 지역위원장으로 당선되었고 연임을 해서 4년 동안 활동한다. 

"당은 선거를 치러야 하고 지역 활동가가 있어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성북시민사회연석회의에 결합했고 연대 활동을 시작했어요. 동구마케팅고등학교에서 해고된 교사의 복직 투쟁을 도왔고, 정치개혁공동행동이라는 조직을 만들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고 했고, 노동인권을 증진하는 조례를 만들자는 제안도 했고요. 

당원들과 장난도 많이 치고 친근한 위원장이 되고 싶었는데 품격 떨어진다는 소리를 듣고부터는 조심하게 되었어요. 저는 개그맨 소질이 있어서 당원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었어요. 제가 성대모사를 잘해요. 그래서  보여주고 싶었는데 친한 사람들한테만 보여주고 당원들한테는 못 보여줬어요. 그리고 우리 지역위만의 전통이라면서 송년회때 위원장이 고기를 구워야 한대요. 제가 비건도 아니고, 저도 고기 먹고 싶었는데(웃음)."


비록 지역구위원장이었지만 할 일은 많았고, 보람도 많았다. 여러 사람이 함께 추진한 일이 성과를 보이고 변화된 지역의 모습을 보면서 뿌듯했다. 하지만 왠지 모를 허탈감이 종종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지역위원장을 하면 다 겪는 거예요. 김준수 위원장님도 그렇겠지만 겉으로 꺼내지 못하는 말이 있어요. 위원장이라는 직책이 주는 압박감이 생각보다 커요. 힘들어도 힘들다는 티를 못 내고 속으로 삭이는 경우가 많아요. 가족한테도 말 못 하는 게 있어요."

두 번의 위원장 임기를 무사히 마친 정주원은 위원장을 하면서 경험했던 에피소드를 위와 같이 털어놓았다. 장난기 가득한 그가 당의 지역위원장 역할을 하느라 쏟아낸 땀방울을 생각하니 내 가슴도 뜨거워졌다.

"노동운동은 어렵지 않아요"
 
 2021년 5월. 이랜드 가산지점 앞에서 집회 중, 피켓을 들고 있는 정주원.
 2021년 5월. 이랜드 가산지점 앞에서 집회 중, 피켓을 들고 있는 정주원.
ⓒ 정주원

관련사진보기

 
당의 나아갈 길을 물으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노동을 기본으로 하는 정당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사회가 처한 가장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 '썰'을 풀었다. 

"현재 우리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노동문제죠. 사람들이 죽어가니까요. 지금까지 살아왔던 사회를 보면 나도 언제 차별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어요. 특히, 여성 노동자나 성소수자, 가난한 사람들이 그렇죠. 이분들이 대표적이에요. 이러한 구조가 쉽게 변하지 않을 거라고 봐요.

저는 남성으로 태어나서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 동네에 친척 누나 두 명이 살고 있었어요. 할아버지는 수시로 저에게 "여자에게 지면 안 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열심히 공부해서 누나들보다 성적이 올라가니까 누나들이 저보고 그래요. '우리는 공부라도 잘해서 그나마 주목을 받았는데 너는 그거까지 빼앗아 갔다'고요. 할아버지는 용돈을 주실 때도 누나들은 1000원을 주는데 저에게는 1만 원을 주셨어요. 낚시를 갈 때도 저를 데려가시고요. 저는 이런 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아니었어요. 남자라서 특혜를 받고 자란 거예요.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성희롱이 심심찮게 생기고 있어요. 여성노동자들은 말도 못 하고 그냥 좋게 끝냈으면 좋겠다고 해요. 그러면 사회는 당사자들이 용기를 못 내는 거라고 해요. 남성들이 여성의 허벅지 만지는 것은 예삿일로 여기기 일쑤예요."


노동운동을 하면서 사회의 모순에 눈을 뜬 정주원은 직장 내에서 일어나는 남녀차별이나 성희롱 문제에도 민감하게 대응했다. 어려움을 호소하는 여성노동자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었다. 그 때문에 조합원들에게 인기가 많다. 

"노동운동이 딱딱하다고만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조합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해요. 요즘에 유행하는 짤이나 웹툰을 인용해서 재미있는 사례를 만들고 제 얘기를 곁들이면 공감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마지막에 노동자들이 어떻게 착취를 당했고 어떤 부당 노동을 당하고 있는지도 보여주는 거죠.

예를 들면, 저희 노동조합에 여성 조합원이 있어요. 주부사원으로 입사해서 11년 차 된 노동자에요. 그런데 연봉이 3000만 원밖에 안 돼요. 실수령액은 220만 원이죠. 그러면서 회사는 '당신은 어떠한 관리직보다 역량이 뛰어납니다'고 해요. 역량이 뛰어나고 근무 기간이 길면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임금을 줘야죠.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그분이 '주부사원'으로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말이 안 되는 거죠. 이렇게 본인이 착취당하고 있고, 부당 노동 행위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노동조합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게 하는 동기부여가 돼요."


쉽지 않은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지쳐갔지만 포기할 줄 모르는 근성을 정주원에게서 보았다. 나중에 은퇴하면 노동운동을 전파하는 강사가 되고 싶다며 포부를 밝혔다. 

"지역의 풀뿌리 운동과 노동운동을 결합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노동과 마을을 연결시키는 사례를 만들면 지역의 주민들이 노동조합과 연대하려는 마음이 생길 거예요. 이런 게 노동운동을 바꿀 수 있는 전환점인 것 같아요. 제가 가진 개그맨 소질을 활용해서 주민들과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에게 재미있게 강의하면 졸지 않고 잘 들을 것 같아요. 이렇게 마을과 노동이 연대하고 응원하면 우리나라의 모든 기업이 바뀌지 않을까요?"

덧붙이는 글 | 정의당 성북구위원회 기관지 <성북도모>에도 실립니다. 에이유디사회적협동조합의 문자통역 서비스를 이용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