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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동학농민혁명(1894. 3)은 봉건질서에 대한 저항이었다. 전주성을 함락한 동학농민군은 관군과 전주화약(1894. 5)을 맺었다. 그리고 전라도 일대에 집강소를 설치해 폐정개혁안을 실천했다. 집강소는 1차 동학농민혁명의 소중한 결실로 농민들 스스로 치안과 행정을 담당했다. 노비폐지와 과부 재혼, 그리고 토지균분 등 봉건질서를 혁파하는 민정기구였다.

반면에 2차 동학농민혁명(1894. 9)은 그해 7월 경복궁을 점령한 일본군에 대한 항거였다. 경복궁 점령사건을 갑오왜란이라 하는데 그에 항거한 무장투쟁이 우금치 전투로 상징되는 2차 동학농민혁명이다. 조선의 정궁을 제국주의 외세가 침략한 것에 분노해 농민군이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서 거병한 것이다. 일본군에 붙잡혀 나주 초토영에서 문초를 당할 때 심문 내용을 읽어봐도 단박에 알 수 있다.

미나미 고시로 소좌 : 너희들이 거병한 대목적을 숨기지 말고 말해 보라!
전봉준 장군 : 7월 일본군이 경성에 들어가 왕궁을 포위했다는 것을 듣고 크게 놀라 동지를 모아서 이를 쳐서 없애려고 다시 군대를 일으켰다!
 

미나미 고시로 소좌는 동학군을 현지에서 학살한 일본군 책임자였다. 당시 일본군은 조선 관군에 대해 지휘권을 행사했다. 따라서 일본군은 농민군을 잔혹하게 학살했다. 교수형은 기본이고 총살형, 화형, 그리고 동학군의 목을 잘라 죽인 작두형까지 서슴지 않았다. - 박용규(2021). <전봉준, 최시형 독립유공 서훈의 정당성>. 인간과 자연사. 99-130쪽 참고

교과서에도 있는 '항일구국투쟁' 2차 동학혁명 농민군은 제외 
 
2021년 1월 올해 민족문제연구소 박용규 박사가 펴낸 책으로 2차 동학농민혁명(1894. 9)이 항일무장투쟁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 책 < 전봉준 최시형 독립유공 서훈의 정당성>  2021년 1월 올해 민족문제연구소 박용규 박사가 펴낸 책으로 2차 동학농민혁명(1894. 9)이 항일무장투쟁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 인간과자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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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박용규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동학도 신경일(申敬日)은 전북 장수군에서 농민군으로 활약하다 피검돼 정터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우금치 전투에서 일본군과 교전한 이승원(李承遠) 역시 일본군에 체포돼 공주 시내에서 화형당했다. 그런가 하면 동학농민군 강운재(姜云在)는 해미전투와 홍주성 전투에 참전했다가 일본군에 체포돼 작두형으로 참혹하게 죽임을 당했다.

요컨대 제2차 동학농민혁명은 경복궁을 점령한 일본 제국주의 침략(갑오왜란)에 무력으로 항거한 항일무장투쟁이다. 그럼에도 127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2차 동학농민혁명에 참전한 농민군 가운데 전봉준을 비롯해 단 한 명도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지 못했다.

왜 그럴까? 이미 2차 동학농민혁명은 '항일구국투쟁'으로 판단하는 게 역사학계 정설이다. 나아가 갑오왜란에 분노한 갑오의병(1894. 8)과 2차 동학농민혁명(1894. 9)을 항일독립운동의 기점으로 인정한 것 또한 오래 전 일이다. 이는 역사학계 정설이고 보편적인 사실이기 때문에 8종 <한국사> 검정교과서에서도 2차 동학농민혁명을 '항일구국투쟁' 으로 기술하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고등학생들이 보는 교과서에도  제2차 동학농민혁명을 '항일구국투쟁'으로 기술하고 있다.
▲ 고등학교 미래앤 출판사 <한국사> 196쪽 내용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고등학생들이 보는 교과서에도 제2차 동학농민혁명을 "항일구국투쟁"으로 기술하고 있다.
ⓒ 하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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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에 무력으로 항거한 2차 동학농민혁명 농민군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실제 2차 동학농민혁명(1894. 9)보다 앞선 갑오의병(1894. 8)에 참전한 항일의병들에 대해선 국가보훈처가 독립유공자 서훈을 추서했다. 그럼에도 갑오의병과 을미의병(1895) 사이에 존재하는 2차 동학농민혁명(1894. 9)에 대해선 외면하고 있다.

경복궁을 점령한 사건에 항거해 똑같이 무장투쟁을 전개한 사건에 대해 갑오의병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하고 2차 동학농민혁명을 배제시키는 것은 행정의 일관성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모순된 행위이다.
  
국가보훈처의 보훈 행정이 이래서야 되겠는가! 갑오의병이나 을미의병에 참전한 항일의병들에 대해선 독립유공자로 서훈했다. 특히 을미의병에 참전한 양반 120명은 모두 독립유공자로 추서되었다. 반면에 2차 동학농민혁명에 참전한 평민들은 명백한 항일무장투쟁이었음에도 독립유공자 서훈에서 배제시켰다. 21세기 대한민국이 아직도 '양반의 나라'로 생각하는 것인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2차 동학농민혁명, 항일투쟁 아니다?... 보훈처 "학계 의견 달라" 
 
2021년 7월 5일 서울지방 보훈처 앞에서 피켓 시위 중 기념 촬영한 박용규 박사(맨 왼쪽), 최인경 단장(오른쪽에서 두 번째). 박용규 박사는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인 전봉준, 최시형을 비롯해 농민군들이 독립유공자로 서훈되어야 한다고 연구 발굴한 실천적 지식인이다. 최인경 단장은 최시형 선생의 직계 고손이다.
 2021년 7월 5일 서울지방 보훈처 앞에서 피켓 시위 중 기념 촬영한 박용규 박사(맨 왼쪽), 최인경 단장(오른쪽에서 두 번째). 박용규 박사는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인 전봉준, 최시형을 비롯해 농민군들이 독립유공자로 서훈되어야 한다고 연구 발굴한 실천적 지식인이다. 최인경 단장은 최시형 선생의 직계 고손이다.
ⓒ 박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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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의 연구 결과물을 애써 모르쇠로 외면하는 것은 둘째 치고라도 역사학계 정설인 2차 동학농민혁명을 왜 굳이 항일투쟁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국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항일투사들을 발굴하고 서훈을 추서하는 게 마땅하다. 그것이야말로 보훈 행정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배웠던 노래가 생각난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파랑새는 일본군을, 녹두꽃은 전봉준 장군을, 청포장수는 조선의 백성을 가리키는 노래라고 배웠다.

 녹두장군 전봉준! 전 국민이 알고 있고 역사교사들조차 당연히 독립유공자로 알고 있는 전봉준 장군이 왜 아직도 독립유공자로 서훈되지 못하고 있는지 국가보훈처는 자기 성찰과 함께 적극적인 보훈행정을 펼치는 기관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한편 정봉준 장군 서훈과 관련 국가보훈처는 <오마이뉴스>에 보낸 답변을 통해 "동학농민운동 2차 봉기를 독립운동의 범주로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학계의 의견이 달라 포상하지 않았다"면서 "이와 관련 학계 전문가 자문 및 학술회의 등을 통해 논의하고 '독립유공자 서훈 공적심사위원회' 심의-의결을 통해 그 인정 여부가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그 이후에는 독립유공자 심사 진행이 가능하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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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동기는 일제강점기 시절 가족의 안위를 뒤로한 채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던 항일투사들이 이념의 굴레에 갇혀 망각되거나 왜곡돼 제대로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점이 적지 않아 근현대 인물연구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복원해 내고 이를 공유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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