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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옆에 사람이 없어가~!!"

편의점에서 일하는 중, 이모뻘 되는 손님 두 분이 들어오시더니 날 보고 대뜸 살았다는 듯이 얼굴이 밝아지셨다. 편의점 옆에 생긴 무인 '아할', 그러니까 24시간 무인으로 운영되는 '아이스크림 할인점'에 갔다 오신 거다.

"거기 원래 그런 거 아니에요? 무인!"
"모올라, 우리는!!"


웃으면서 묻는데 손님이 냅다 손사래를 치신다. 더위에 목이 타셨는지 메로나를 찾으셨다. 어쩐지 가격을 알려드리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AI만큼 친절하고 정확하게 안내하고 말았다. 두 분은 계산을 마치자 아이스크림 비닐을 찢었고, 나는 자연스레 비닐을 받아서 버렸다. 영수증을 달라시기에 "아, 영수증 드릴까요?" 하고 내밀었다.

"여기 아가씨 있으니까 조옿네!!"
"사람이 없어서 답답하시죠."


다시 눈코입을 일그러뜨리며 "아후~" 하며 손사래를 치더니 헤헤 웃으며 이러신다.

"뜯어서 묵었음 큰일날 뻔했네."

연세 있는 손님들은 계산을 마치기 전에 아이스크림을 뜯기도 하는데, 아까는 기계로 직접 계산해야 하는 것을 몰랐으니 상품을 먼저 뜯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뜻이다. 대형마트와 생활용품점에 셀프계산대가 생긴 후 직접 바코드를 스캔하고 결제하는 일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누구나 그런 것은 아닌 거다.

이런 게 '장벽'이구나. 73세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가 맥도날드에서 셀프 주문에 애를 먹는 영상을 봤을 때도 생각했지만, 연신 손사래 치며 학을 떼는 격한 반응을 몸소 체험하니 더 실감이 났다. 공급자의 입장에서 더 편리한 것을 도입했을 때, 잘못한 것도 없이 '낙오자'라는 오명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갑질, 나는 안 해 본 줄 알았다
 
이제 무인편의점을 찾아들어온 사람들의 모습은 무척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무인 자동화 기술이 또다른 차별을 낳는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노년층은 지금까지 정보의 격차를 사람 간의 소통으로 메꾸었는데, 무인 자동화 시스템은 이러한 '다리'를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 무인결제기 이제 무인편의점을 찾아들어온 사람들의 모습은 무척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무인 자동화 기술이 또다른 차별을 낳는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노년층은 지금까지 정보의 격차를 사람 간의 소통으로 메꾸었는데, 무인 자동화 시스템은 이러한 "다리"를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 김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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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까지 나는 '권력'을 휘두르곤 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어머니가 "다시 알려줘 봐. 어떻게 한다고?" 하고 물으실 때마다 노골적으로 짜증을 부렸다. 그런 나에게 어머니는 화를 내는 대신 늘 "미안한데..." 하며 부탁하셨다.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갖지 못한 어머니는 이 권력 구조에서 '을'이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는 기본적인 개념들을 납득하지 못하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시대 흐름에 뒤처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천지만물의 원리처럼 여기고 있었던 거다. 그런데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뒤, 편의점에서 본 할아버지의 모습에 한순간 울컥 했다. 엄마한테 미안해서. 

할아버지는 간간이 오셨는데, 매번 물건을 잘 찾지 못해 손녀에게 전화를 거셨다. 손녀는 영상통화로 매대를 보며 물건을 알려드렸다. 그런데 영상통화를 연결해 카메라로 매대를 잘 비추기까지가 쉽지 않았다. 먼저 일반통화로 시작해 영상통화로 바꾸는 데는 성공했는데, 손녀는 계속 매대가 안 보인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다이어리형 핸드폰케이스의 앞장을 뒤로 접어 카메라를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가서 알려드리기는 했지만, 할아버지가 아무리 오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도 손녀의 목소리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시종 공손하고 다정했다. "할아버지, 먼저 빨간 버튼 눌러 보세요. 할아버지, 제 말 들리세요? 할아버지, 그럼 핸드폰을 뒤집어서 들어 보세요, 앞이 뒤로 가게요."

많게 봐도 중학생 정도의 나이였는데, '디지털 정보 격차'를 줄이는 다리 역할을 듬직하게 해 내고 있었다. 혼자서 얼굴이 화끈했다.

누가 그러던가? 너는 예외일 거라고
 
그나마 마음이 놓이는 것은, 과기정통부의 '2020년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서모든 계층의 디지털정보화 수준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일반국민 대비 디지털취약계층의 정보화 수준은 72.7%로 전년대비 2.8%p 개선되어 디지털정보격차가 꾸준히 완화되는 추세로 나타났으며, 계층별로는 저소득층의 경우 전년대비 7.3%p, 장애인은 6.1%p, 농어민은 6.7%p, 고령층은 4.3%p 개선되었다. 이 조사는 전국 17개 시.도 15,000명을 대상으로 1대1 면접조사 방식으로 진행된다.
▲ 비대면 소통과 소외 계층 그나마 마음이 놓이는 것은, 과기정통부의 "2020년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서모든 계층의 디지털정보화 수준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일반국민 대비 디지털취약계층의 정보화 수준은 72.7%로 전년대비 2.8%p 개선되어 디지털정보격차가 꾸준히 완화되는 추세로 나타났으며, 계층별로는 저소득층의 경우 전년대비 7.3%p, 장애인은 6.1%p, 농어민은 6.7%p, 고령층은 4.3%p 개선되었다. 이 조사는 전국 17개 시.도 15,000명을 대상으로 1대1 면접조사 방식으로 진행된다.
ⓒ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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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너울 작가의 SF 단편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의 시대 배경은 지금의 MZ세대가 70살이 된 때다. 노인 '양윤'은 보청기 기능을 겸비한 블루투스 이어폰 '실버팟'을 구매하며 얼리어답터 노인이라는 자부심에 어깨에 힘을 준다. 그러나 여전히 터치스크린 방식에만 익숙한 자신과 달리 이제 사람들은 음성으로 기계를 조작하고 있다. 젊은 세대들에게 유행이라는 가상현실방에 호기롭게 들어가서도 큰 낭패를 본다.

소설은 유쾌하고 재미있었지만, 남는 뒷맛은 상당히 묵직하고 씁쓸했다. 왜 못 해 봤을까? 나 역시 언젠가 새로운 시스템이 버거워질 거라는 생각을. 나는 친구에게 소설에 대해 얘기했다. "나 이렇게 될 것 같아." 

사실은 벌써 그렇다. 같이 사는 친구가 주문한 블루투스 이어폰을 보고 나는 같은 것으로 내 것도 주문해 달라고 부탁했다. 잘 고를 자신이 없어서다. 그런 나를 보고 친구가 말했다. "와, 우리 엄마 같다."

심지어 나는 블루투스 이어폰이 터치 방식으로 기능하는 것이 앞서 언급한 근미래 배경의 SF에나 나오는 얘기인 줄 알고 있었다! 관심 분야가 아니면 새 정보에 반응하지 않는 나는, 얼리어답터가 아니라 라스트어답터에 가깝다. 30년 후의 나는 이웃집 문 앞에서 한껏 몸을 숙인 채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아가씨, 자꾸 와서 진짜 미안한데, 이 스마트팜(스마트폰의 기능을 손바닥에 옮겨놓은 것. 이경희 작가의 소설 <테세우스의 배>에 나오는 가상의 유비쿼터스 장치)으로 혈당 측정이 잘 안 돼서..."

나와 5시간쯤 떨어진 거리에 사는 우리 어머니는 보험 서류를 앱으로 보낼 줄 몰라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팩스를 이용하며 매번 눈칫밥을 드셨다. 그렇게 좋아하시는 트로트 아이돌 박형석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는 데는 성공했는데, 자꾸만 마음대로 안 되어서 꼬박꼬박 집앞 핸드폰 가게에 물어보신다. 그런 어머니가 이제야 이해가 되는데, 쥐꼬리만큼 철이 든 것도 팬데믹이 터지고 나서야 들 건 뭐람.    

일상은 더 빨리 변할 것이다. 전문가들은 팬데믹이 변화의 방향을 바꾼 것이 아니라, 기존의 방향으로 변화를 가속시켰다고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 실행 이후 SNS와 화상앱, 메타버스 등을 이용한 비대면 소통이 활발해졌다. 이러한 방식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편했지만, 그 때문에 소외되는 계층을 생각하면 그것도 마음이 편치 않다. 시대를 주도하고 시대에 희생한 사람들이 시대에 휩쓸려 단절되는 것은 생각할수록 너무도 쓸쓸하다.

새로 다가오는 변화를 밀어낼 수는 없어도, 나를 찾는 사람들에게 더 좋은 목소리와 마음을 내어 주려 한다. 이미 기술의 갑질에 기가 눌린 분들에게 세대적인 갑질까지 하지는 말아야지. '무인 아할'에 놀란 가슴 진정시켜 드리고, 들어서자마자 물건을 찾아달라는 어르신들께도 시원스런 걸음 보여드리고. 본가의 어머니와, 미래의 나를 대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의 브런치 페이지에도 게시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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