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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형 선생
▲ 순국 직전의 최시형 선생 모습 최시형 선생
ⓒ 박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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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조직이나 기업(가업)을 막론하고 후계체제 과정은 말썽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국가기관의 경우는 임기제가 분명하지만 종교 교단이나 기업의 경우는 세습이 이루어지거나 형제자매끼리 혈투를 벌이고 법적 송사에 가기도 한다.

최시형이 1세 교조로부터 도통을 이어받을 때에도 반발이 없지 않았다. 교조와의 인연과  연수, 한학의 능력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직접 부딪혔던 그는 12월 24일 손병희ㆍ손천민ㆍ김연국 등 최측근을 불러놓고 "너희들 세 사람 가운데에 또한 주장이 없지 않을지라. 의암으로서 북접 대도주를 삼노라"고 '손병희 승계'를 분명히 하였다.

23세에 동학에 입도하여 손병희와 함께 해월의 고제(高弟)가 되었던 이용구(李容九)는 동학혁명 과정에 붙잡혀 투옥되었다가 곧 사면되어 동학을 진보회라 고치고 송병준의 일진회에 통합하였다. 1905년 손병희가 동학의 전통을 이어 천도교를 포교하자 이에 맞서 시천교(侍天敎)를 창설, 교주가 되었다. 일진회 회장을 맡아 한일합방을 제창하면서 총리대신 이완용과 소네 통감에게 '한일합방 건의서'를 올리는 등 배교ㆍ매국에 앞장섰다. 후계자가 되지 못한 데 대한 앙심도 작용했을 것이다. 

1898년 1월(음) 관졸들이 최시형이 거처하는 곳에 들이닥쳤으나 손병희의 호통으로 물러갔다. 

포덕 39년 무술 1월 3일에 신사가 몸의 병으로 인하여 침상에 누우시더니 이천군에 주재하는 병사와 여주군 주재하는 병사 수십 인이 도인 권성좌를 결박하여 앞머리에 세우고 신사 집에 갑자기 들어와 수색하기를 매우 하는 지라.

이때 신사가 의암, 구암 등에게 일러 말하기를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이 명령이 있으리오. 즉 지극한 정성으로 하늘에 기도함이 가하다" 하시고 또 말하기를 "이 운이 만일 다하였으면 끝이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재앙을 면할 방도가 있으리라" 하시고 여유롭게 베개를 높이 베고 편히 누우시더니 병예배(兵隸背)가 신사를 보지 못하고 다만 의암을 향하여 따져 묻거늘 의암이 소리 높여 꾸짖어 병졸을 돌려보내하시다.

관의 촉수가 임박하고 있었다. 거처를 옮기는 도중에 정보가 새 나갔을 것이다. 이곳을 떠나 홍천군 서면 제일동의 오창섭 집에 한 달 동안 머물다가 2월 그믐에 입학선의 주선으로 원주군 서면 송곡리 원진여(元鎭汝)의 집으로 옮겼다. 

4월 5일은 1세 교조의 득도일이었다. 동학에서는 가장 큰 기념일로 쳤다. 최시형은 기념행사를 준비하는 손병희ㆍ임순호ㆍ김연국ㆍ이병춘 등 간부들에게 "각자 집으로 돌아가 향례를 설비하라"고 일렀다. 이에 손병희가 "비록 먼 곳에 있을지라도 반드시 모여 예식을 거행하였거늘 하물며 이왕 모였던 자가 어찌 흩어져 가라이까?" 하였다.

이에 해월 선생은 "내 생각한 바 있으니 명을 어기지 말라."라고 말하므로, 부득이 모였던 사람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다만 임순호와 임도여 만이 남아 있었다. 4월 4일 밤에는 해월 선생은 밤이 깊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적면히 홀로 앉아 있었다고 한다.

최시형은 오랜 수도생활로 자신에게 닥친 운명을 알고 있었다. 해서 도통을 넘기고 신변을 정리하였다. 더 이상 피신할 곳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조직을 살리기 위해 대신사의 득도 기념행사에도(측근들에게) 피할 것을 명하였다.

1898년 4월 6일 새벽 40~50명의 관졸이 원주 원진여의 집에 나타났다. 

신사가 밤이 새도록 조용히 홀로 앉아 기다리는 바 있으시더니 6일 새벽에 송경인이 병사를 이끌고 신사 집에 갑자기 들어오니 신사가 마침내 잡히게 되어 서울로 향하실 때 문막점에 이르러 제자 황영식이 물을 주고 뒤따르니 관례배가 어지러이 때리거늘 신사가 화난 목소리로 크게 꾸짖으면서 말하기를 "죄 없는 자를 때림이 도리어 죄가 되나니. 너희들은 저 하늘이 보는 것이 두렵지 않느뇨?" 하시니 이로부터 관례배가 감히 행패하지 못하더라.


주석
6> 앞의 책, 313쪽.
7> 윤석산, 「해월 최시형의 서소문 옥중생활과 처형과정」, 『동학학보』38권, 69~70쪽, 2018.
8> 「천도교서」, 314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해월 최시형 평전] 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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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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