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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주살이 4년차에 접어들었다. 그 사이에 거셌던 제주 러시 현상은 다소 진정된 듯하다. 그러나 아직도 제주 이주를 꿈꾸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제주 1년 살이 혹은 1달 살이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이 글은 동아일보 기자와 세종대 초빙교수를 지내고 은퇴한 후 제주로 이주한 한 개인의 일기이자 제주에서의 생활을 소재로 한 수필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제주도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제주의 자연환경,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한국현대사의 축소판이라 할 제주사회를 이해하는 데 유익한 읽을거리가 되길 기대한다.[기자말]
 
제주도 최초의 호스피스 전문병원으로 성이시돌목장을 개척한 아일랜드 출신의 맥그린치 신부가 세웠다.
▲ 성이시돌복지의원 제주도 최초의 호스피스 전문병원으로 성이시돌목장을 개척한 아일랜드 출신의 맥그린치 신부가 세웠다.
ⓒ 황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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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성이시돌복지의원에서 호스피스 봉사를 하는 날이다. 8월의 더위도 수그러져 가을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뜻밖에도 슬픈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주말을 보내는 사이에 무려 6명의 암환자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이곳으로 호스피스 봉사를 나온 지 7개월 만에 처음 접한 충격적 소식이다. 말기암 환자들이 입원해 있는 호스피스 병동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주말 사이에 6명이나 저세상으로 떠나다니, 잠시 할 말을 잊었다. 13명의 입원환자가 순식간에 7명으로 줄어들었다.

나를 더욱 슬프게 한 것은 김○○ 사도 요한, 이제 막 세례를 받고 하느님 나라에 가기를 소망했던 한 가여운 남자, 그마저 이 죽음의 파도에 함께 떠내려갔다니!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난주 만났을 때도 밝은 모습으로 맞아주었고 성경에 대해 알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던 그였다. 좀 더 많은 시간을 그와 함께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터였다.

정확히 보름 전의 일이다. 아침 일찍 성이시돌복지의원 원장 수녀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전혀 생각도 못 한 부탁을 하셨다. 김○○ 환자가 오늘 오전 세례를 받기로 했는데, 대부가 되어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누군가의 대부가 될 자격이 있나?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승낙하고 말았다. 수녀님이 갑작스럽게 이런 부탁을 해온 걸 보면 당장 대부를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고, 따라서 내가 뒤로 뺄 수 없는 일이라고 직감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김○○의 상황을 약간은 알고 있었다. 성이시돌복지의원에 입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두세 번 병실에서 본 정도였다. 몸을 가누기 힘들고 말을 할 수 없는 말기암 환자였다. 다행히도 청각은 살아 있어서 말을 알아들을 수 있고, 글씨도 알아볼 수 있었다. 무언가 말을 해주면 눈빛으로 긍정의 의사 표시를 하곤 했다.

수녀님이 전해준 바에 의하면, 김○○는 전에 성경을 접한 적이 있고 신앙생활의 경험도 있다고 한다. 이곳에 입원해서 수녀님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천주교 세례받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세례식은 병실에서 베풀어졌다. 이곳 이시돌목장 지역에 자리 잡은 금악성당 주임신부이자 성이시돌복지의원에서 매달 사별 가족을 위한 미사를 집전하는 이어돈 미카엘 신부님이 오셨다. 간단한 세례 의식이 시작됐다.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김○○는 병상에 누운 채 나와 함께 촛불을 들고 의식을 치렀다.

봉사라기보다는 인생수업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말을 할 수도 없는 상태에서 병실에서 이뤄진 세례식.
▲ 병실에서 거행된 세례식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말을 할 수도 없는 상태에서 병실에서 이뤄진 세례식.
ⓒ 성이시돌복지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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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과 수녀님 두 분, 간호사, 병원 직원 그리고 대부가 된 나까지 모두 6명이 김 사도 요한의 세례를 지켜봤고, 축하해줬다.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세례식이었다. 축하객도 꽃다발도 축가도 없었지만, 모두 김 사도 요한이 하느님의 품 안에서 얼마 남지 않은 생을 구원의 희망 속에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렇게 해서 처음으로 한 신자의 대부가 되었다. 그날 대자 김 사도 요한의 손을 꼭 잡고 약속했다. 내가 올 때마다 성경을 읽어주겠다고. 영세 후 지난주 만났을 때만 해도 표정이 밝아 보였다. 봉사 나올 때마다 만나서 함께하자는 다짐을 했다. 그런데 이토록 빨리 떠나갈 줄은 몰랐다. 허무했다. 부디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호스피스 봉사를 하게 된 것은 올해 초 성당에서 성이시돌복지의원 호스피스 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공지사항을 접하면서부터였다. 봉사자를 구한다니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일었다. 미사가 끝난 뒤 아내 역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제주로 이주하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봉사의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었다. 제주도에서는 출퇴근할 일이 없을 것이니 아무래도 시간 여유가 있을 테고, 그렇다면 지금까지 못 해본 봉사활동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다소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던 참이다.

그런데 처음 찾아온 봉사의 기회가 다른 일도 아닌 호스피스라니... 나 같은 봉사 초보자가 감당하기에는 무언가 능력과 경력이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반면, 묘하게 끌리는 점도 있었다. 단순 노력형의 봉사가 아니라 환자들과 교감하면서 신뢰를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봉사라면 어렵지만 한번 해보고 싶다는 의욕이 조금씩 커갔다. 더욱이 죽음이라는 명제를 실제상황 속에서 구체적으로 접해보면서 나름의 사생관을 터득해보고 싶은 욕구도 일었다.   
 
호스피스 봉사의 가장 중요한 분야가 환자와 신뢰를 바탕으로 나누는 대화다.
 호스피스 봉사의 가장 중요한 분야가 환자와 신뢰를 바탕으로 나누는 대화다.
ⓒ 성이시돌복지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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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 봉사자 모집에 응한 신자는 우리 부부를 포함해 모두 6명이었다. 호스피스 봉사를 하려면 제주대 병원에서 매년 실시하는 호스피스 교육부터 받아야 했다. 그런데 교육일정이 유동적이어서 나중에 받기로 하고 일단 봉사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1월 하순, 이렇게 한 달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했던 호스피스 봉사를 시작하게 됐으니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

성이시돌복지의원은 성이시돌목장을 개척한 아일랜드 출신 맥그린치(한국명 임피제) 신부가 세운 호스피스 전문병원이다. 모든 환자를 무료로 받고 있어 자원봉사자들도 많다. 가톨릭에서 세웠고 수녀님이 원장을 맡고 있지만 가톨릭 신자가 아니어도 입원이 가능하다.

이 호스피스 전문병원은 제주의 중산간 이시돌목장 지대에 위치해 환자들이 최상의 자연환경 속에서 평화롭게 여생을 보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무엇보다도 탁 트인 목가적 풍경이 아름다운 청정지역이다. 성가소비녀회 수녀님들이 병원을 운영하고 있어 일반 영리병원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환자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있음을 쉽게 느낄 수 있다. '나도 나중에 때가 되면 이곳에서 마지막 생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해보기도 한다.

호스피스 봉사는 일주일에 한 번 2시간 동안 진행된다. 6명의 봉사자가 정해진 시간에 자원봉사자실로 모여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간단한 시작 기도를 한 뒤 호스피스 병동으로 들어간다. 1인실, 2인실, 다인실을 찾아가 환자와 인사하고 환자 상태에 따라 적절한 방식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주로 환자와 대화하기, 경직된 자세 바꿔주기, 불편한 부위 주무르기, 기도해주기, 요구사항 들어주기 등을 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준다. 의료적 처치는 담당 의사와 간호사가 전담하므로 봉사자는 환자와 함께 있어 주며 심리적·신체적으로 편안하게 해주는 게 주된 역할이다.

처음으로 하는 봉사가 호스피스 일이지만 어찌 보면 남을 위한 봉사라기보다는 나 자신이 새롭게 깨달아가는 인생 수업을 받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병동에서 만나는 환자들은 대부분이 말기암을 앓고 있다. 간혹 젊은 나이의 환자도 들어오지만, 대부분은 70~80대 노인들이다. 인생의 마지막 구간에서 힘들게 종착점을 향해 가는, 아니 가야만 하는 운명들이다.

이들 환자를 보고 있노라면 바로 나 자신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각자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죽음 뒤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영원한 생명을 꿈꾸며 하느님을 믿는 자의 삶이란 어떤 것인지.

호스피스에 대한 오해
 
자원봉사자들이 환자의 머리를 깎아주고 있다.
▲ 미용봉사 자원봉사자들이 환자의 머리를 깎아주고 있다.
ⓒ 성이시돌복지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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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대 병원에서 하루 3시간씩 6회에 걸쳐 진행하는 호스피스 교육도 지난 6월에 수료했다. 의외로 호스피스 영역이 광범위했다. '완치할 수 없어 죽음이 예견된 환자와 그 가족들의 신체적·정신적·사회적·영적 증상을 돌봐주면서 대상자가 인격적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돌보는 것'이 교육 첫 시간에 배운 호스피스의 정의다.

라틴어 호스피탈리스(hospitális)가 어원으로, 초기에는 순례자와 나그네들이 쉬어가는 안식처를 의미했다고 한다. 현대적 의미의 호스피스는 1960년대에 영국에서 시작됐다고 하니, 아직은 일반인에게 낯선 개념인 것 같다. 그저 죽음을 앞둔 말기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교육을 받으면서 호스피스에 대한 사람들의 이런 인식이 틀린 건 아니지만 오해하고 있는 부분도 적지 않음을 알게 됐다. 예를 들어, 호스피스 병원은 죽으러 가는 곳이라는 고정관념이 대표적이다. 한마디로 호스피스는 죽음이 아니라 삶을 위한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답게 살다가 떠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호스피스다.

이와 관련된 또 다른 오해가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환자에게 어떤 치료도 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실제로는 통증과 증상을 효율적으로 조절해주고, 의료적 검사나 치료를 모두 제공할 수 있다. 그리고 호스피스를 받으려면 병원에 입원해야만 한다고 알고 있지만, 가정형 호스피스 제도도 운용하고 있다. 집에서도 간호사나 봉사자로부터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처럼 호스피스 '돌봄'의 범위가 생각보다 넓고, 꽤 전문성이 요구된다는 점을 깨달았다. 강의내용만 봐도 호스피스 완화의료, 대상자와의 의사소통, 말기 암 환자 증상·통증관리, 영양 관리, 임종 직전 증상, 죽음에 대한 이해 등 다양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컸던 건 호스피스 대상자와의 의사소통과 말기 암 환자 통증관리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이해 부분이었다. 봉사활동에 당장 필요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제 호스피스 봉사를 시작한 지 8개월째에 접어들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역시 환자가 생을 다 마치고 떠날 때다. 말기 암 환자들이 모여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는 하나 며칠 전까지 돌봐드리던 분의 병실이 텅 비어 있을 때마다 삶의 무상함을 절감하게 된다. 오늘, 여기저기 병실마다 텅 빈 모습을 보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부디 하늘나라에서 영생을 누리시길! (20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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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의 언론계 생활과 7년의 대학 초빙교수 생활을 끝내고 2018년 봄 제주로 이주했다. 애월읍의 한 생태마을에 거주하면서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 그리고 제주현대사의 아픔에 깊은 관심과 연대의식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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