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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이 떨어져 연못을 붉게 물들였다. 나무에 붙어 있는 꽃과 떨어진 꽃들이 엉켜저 꽃인지, 그림자인지?
▲ 백일홍 꽃들이 떨어져 연못을 붉게 물들였다. 나무에 붙어 있는 꽃과 떨어진 꽃들이 엉켜저 꽃인지, 그림자인지?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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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 동안 꽃을 볼 수 있어 백일홍(배롱나무)이라 부른다. 옛 선비들은 누정을 짓거나 정원을 만들 때 주위에 백일홍을 심었다. 대표적인 곳이 담양 명옥헌과 진도 운림 삼방 등이다. 물 위에 수북이 떠있는 꽃망울, 연못이 아예 붉게 물들었다.
 
명옥헌 연못 가운다. 백일홍 가지들이 이리저리 얽혀 꽃을 피웠다. 산자락에 누정을 짓고 밑으로는 연못이다. 선비들은 누정에서 시를 읊으며 유유작작 풍류를 즐겼다.
▲ 백일홍 명옥헌 연못 가운다. 백일홍 가지들이 이리저리 얽혀 꽃을 피웠다. 산자락에 누정을 짓고 밑으로는 연못이다. 선비들은 누정에서 시를 읊으며 유유작작 풍류를 즐겼다.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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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홍은 꽃도 꽃이지만 껍질을 벗고 나면 몸통이 매끄럽고 부드럽다. 그것이 여인 다리를 연상시킨다고 하여 집 안뜰에는 심지 않았다. 가지보다는 줄기(몸통)가 굵어야 가치가 있다. 매듭 매듭 잘라 수형을 잡은 모습은 하나의 조각품이다.

고향 동산에는 백일홍 한그루가 있었다. 백 년 이상 된 나무였다. 간지럼 나무라고 불렀다. 아이들은 나무줄기를 간지럽히면 나무가 간지럼을 탄다며 손톱으로 긁으며 놀았다. 세 번 꽃이 피면 벼를 수확한다고도 했다. 

당시는 먹거리가 우선인 시절이다. 지금은 삽목 등으로 쉽게 번식하는 수종의 하나지만 벼, 보리농사 등에 밀려 조경사업은 생각도 할 수 시대다. 귀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백일홍 사랑(?)이 이렇게 내 가슴에 자리 잡았다.
 
시골 밭에 진분홍 꽃이 활짝 피었다. 온통 주위가 빨갛게 물들었다. 은퇴 후 심은 이 나무때문에 열심히 고향을 찾았다.
▲ 백일홍 시골 밭에 진분홍 꽃이 활짝 피었다. 온통 주위가 빨갛게 물들었다. 은퇴 후 심은 이 나무때문에 열심히 고향을 찾았다.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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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전 잡풀을 걷어내고 백일홍을 심었다. 은퇴하고 나서다. 어머니가 남기신 밭이 가시덩굴이며 소나무, 억새 등이 자라 산이 돼버린 것이 안타까웠다. 경험이 없는 탓에 밀식을 했다. 1000여 그루를 심었다.

웃자란 잡초를 예초기로 베다가 묘목을 자르기 일쑤였다. 수형을 잡기 위해서는 전정을 해주어야 한다. 매년 전정을 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떤 일에 집착하다 보면 힘든 줄도 모른다.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다.

햇볕이 뜨거운 8월, 백일홍이 만개했다. 어렸을 때 보았던 꽃이라서 좋다. 내가 심고 가꾸었던 꽃이라서 더 사랑스럽다. 
 
배롱나무
- 도종환

배롱나무를 알기 전까지는​
많은 나무들 중에
배롱나무가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중략)

꽃은 누구를 위해서 피우는게 아니라고
말하듯 늘 다니던 길에
오래전부터 피어 있어도 보이지 않다가
늦게사 배롱나무를 알게 된 뒤부터
배롱나무에게서 다시 배웁니다

사랑하면 보인다고
사랑하면 어디에 가 있어도
늘 거기 함께 있는 게 눈에 보인다고

누정에 가면 보이고 산사에서도 보인다. 도로변에도 무릇 무릇 피어있다. 공원에는 조각이 되어 서 있고, 산소에 가면 묘 지킴이가 되어 호젓이 서 있다. 어디를 가나 백일홍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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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며 삶의 의욕을 찾습니다. 산과 환경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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