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요즘 텃밭을 일구어 기부금을 마련한다. 그 두 번째 작물은 바로 옥수수였다. 지난 4월에 옥수수씨 140여 개를 심었는데, 모종으로 자란 건 10여 개 남짓이었다. 땅 좋고 공기 좋은 새 터전에서 강인한 작물 중 하나인 옥수수가 자라지 못하다니. 우리 부부는 그 이유를 금방 알아냈다.

좋은 땅이란, 본시 모두에게 이로운 땅. 작물만 잘 자라는 것이 아니라, 땅 속의 생물들도 잘 살 수 있는 땅. 유심히 보니, 땅강아지들이 눈에 띄었다. 그제서야 옆 두렁을 맡고 있는 할아버지 밭에 플라스틱 병을 세워 놓은 장대들의 속내를 알았다.

바람이 불면 장대 위에 있는 플라스틱이 소리를 내고, 그 소리는 밭 속의 생물들에게는 엄청난 천둥번개처럼 들릴 것이니, 그 밭에 올 수 없었을 거였다. 그런데 우린, 옥수수 씨를 갖다 뿌리니, 이게 무슨 복 씨인가 싶었을 것이다.

이번에는 모종 50여 개를 심었다. 뿌리를 파먹는 생물은 없었는지, 금새 옥수수대가 생겼다. 어릴 때는 옥수수를 보통 강냉이라고 불렀다. 해마다 옥수수 수확 후 옥수수의 껍질을 벗겨놓고 보면 왠지 강냉이라는 표현이 더 정겹게 되살아난다.

농사를 지을수록 배우는 즐거움 또한 큰데, 올해는 옥수수 수염이 암술대이며 껍질 밖으로 자라나서 꽃가루를 받는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았다. 수염이 암꽃인 거였다. 자세히 보니, 옥수수대 꼭대기 위로 수꽃이 피어나고 그 아래 암꽃이 있어 옥수수(강냉이)가 만들어졌다. 삶에서 관찰과 질문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기도 했다.

학원 방학 이틀을 두고, 하루를 옥수수 수확에 써야겠다 결심했다. 인터넷 지식박사가 수확 시 골라야 할 옥수수의 모양, 색깔 등을 알려주었다. 옷을 차려입고 보니, 어느새 나는 옥수수 농부가 되었다. 옥수수 한 대에서 평균 3~4개 정도의 옥수수가 열리니, 오늘은 몇 개나 딸까?

남편은 언제나 나에게 작물의 수확을 딸 기회를 먼저 준다. 특히 첫 수확의 기쁨을 내가 만끽하길 원해서 본인은 열심히 관리한다고 말한다. 내가 알고 있는 잘 익은 옥수수를 설명했다.

"보세요. 이렇게 진한 갈색 수염이 있잖아? 이 수염의 색이 일단 진하고 옥수수 이삭을 손으로 만졌을 때, 단단하게 알이 찬 느낌이 들어야 돼요. 그리고 한번에 홱 하고 꺾었을 때, 잘 익은 무 나박김치 먹듯 사박하고 똑 떨어지는 느낌이 있어야 돼. 그냥 내 느낌이에요."

옥수수를 거두다 보니, 분명 수염 색이 약간 서운한 것들도 있었다. 그래도 옥수수 이삭을 젖힐 때 나는 소리가 왠지 농부의 승리인 듯 즐거웠다. 70여 개의 옥수수이삭을 거두었다. 오늘 이들의 목표는 감자 완판에 이어 옥수수 완판의 자리에 서는 거였다. 기부금 마련 작물 제 2탄.

옥수수를 따 놓고 상자에 담다 보니, 왠지 허전해서 오이, 가지, 방울토마토, 고추, 깻잎 등을 따서 골고루 담았다. 우리집 가지는 그늘이 많아서 졸망졸망했는데, 옆밭 가경이네 가지는 매끈하게 키도 크고 생겨서 부러웠다. 그런데 때마침, 가경이네가 가지와 오이를 모두 기부하겠다고 전화를 주었다. 역시 하늘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구나 싶었다.
 
옥수수수확과 더불어 가지외 5종채소를 담은 상자의 판매금은 기부금에 골인
▲ 옥수수와 각종채소상자 옥수수수확과 더불어 가지외 5종채소를 담은 상자의 판매금은 기부금에 골인
ⓒ 박향숙

관련사진보기

 
"후배들아, 이번에는 옥수수 나왔다. 지난번 감자 못 가져간 사람들, 옥수수와 채소를 담은 이 상자를 보아라. 1만 원이면 거저다. 내가 애써 키운 작물 맛보고 그대들의 물건값은 기부금으로 들어간다. 선착순 9상자 밖에 없다."

메시지를 보냈는데, 곧이어 '완판' 했다.

"언니, 나는 3박스. 옥수수 많이 줘. 여름만 되면 옥수수알만 빼서 냉동했다가 밥에 넣어 먹네. 손자 주려고 하셨겠지만 나의 리액션에 흐뭇하게 웃던 시어머니 모습이 아련하게 떠올라 추억도 함께 먹네."
 
"언니, 왜 이렇게 부지런히 살아요. 나도 만만치 않게 열심히 사는데, 언니 앞에 서면 할 말이 없어지잖아. 채소 거리 있어도 언니가 농사지었으니 꼭 먹어야지. 너무 무리하지 말고요. 그러다가 큰일 나요."


후배들은 나를 걱정하고 격려하기 바쁘다.

조금만 나가면 장마당에 흔한 것이 옥수수와 여름 채소들. 뭐 한다고 서너 상자나 구입하는가. 내 품을 덜어주려는 후배들의 마음을 안다. 나눠 준 채소로 음식을 만들어 화답하는 후배들의 센스와 남편이 만든 점심(비빔냉면)을 받으며 아침 노동의 피곤을 씻어버렸다.
 
옥수수따느라 고생했다고 남편의 시원한 비빔냉면을 대접받다
▲ 남편의 극진한 점심상 옥수수따느라 고생했다고 남편의 시원한 비빔냉면을 대접받다
ⓒ 박향숙

관련사진보기

나눠준 깻잎으로 고소하게 자박자박 무쳐서 보내온 후배의 깻잎순봌음요리
▲ 후배 김현옥 님의 깻잎순 볶음요리 나눠준 깻잎으로 고소하게 자박자박 무쳐서 보내온 후배의 깻잎순봌음요리
ⓒ 박향숙

관련사진보기

 
얼마 전 시 필사팀에 박노해 시인의 <옥수수처럼 자랐으면 좋겠다>를 쓰면서 곧 있을 나의 옥수수 수확을 알리면서 혼자 낭송을 했었다.

오늘은 내가 옥수수를 파는 여자가 되었으니 이준관 시인의 <옥수수를 파는 여자>의 일부를 읊으며 하루의 문을 닫는다.
 
저 여자가 파는 옥수수를 사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저 여자의 발가락 같은 밭고랑에 씨를 뿌려
그녀의 마른 젖꼭지를 물려 키운 옥수수.
그 옥수수에 박힌 굵은 소나기와
그녀의 넓은 어깨의 싱싱한 노동을.

저 여자의 생의 열기처럼
뜨거운 김이 훅 얼굴에 끼얹어오는
그녀의 밥솥에서 쪄낸 옥수수.
그 옥수수를
아직 아무것도 깨물지 않은 젖니 같은 첫 이빨로
와락 깨물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저 여자의 옥수수밭처럼
넓게 펼쳐 놓은 치마폭에 놓인 옥수수 좌판.
그녀는 목에 두른 목수건으로
건강한 땀방울을 닦아내고,
나도 그녀의 목수건으로 연신 땀방울을 닦아내며
그녀가 파는 옥수수를 먹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