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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
 미용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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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리스트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어릴 때 소원이 있었다. 생머리를 길게 길러보는 것. 바람에 찰랑 흩날리는 머릿결을 가져보는 것(샴푸향이 퍼질 것만 같다), 무심히 쓸어올리면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고운 긴 생머리를 가져보는 것.

순정만화에나 나올 것 같은 이런 머릿결은 내 어릴 적엔 로망과도 같은 것이었다. 지금이야 매직펌이라는 신기술로 잘만 관리하면 아무리 거친 모발을 가진 사람도 자연스러운 생머리를 연출할 수 있다지만 그건 요즘 얘기지, 내가 어렸을 적엔 언감생심 그런 머릿결은 그저 동경의 대상이었다.

게다가 엄마 취향이라는 것이 있지 않나. 내 헤어스타일을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나이가 되기 전에는 엄마가 예쁘다는 헤어스타일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우리 세대의 룰이었다. 고로 나는 늘 짧은 머리를 고수했었다. 다행히 숏컷이 너무나 안 어울려 짧은 단발머리까지는 허용이 되었는데 그것도 묶을 수 없는 길이의 단발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의 친언니는 숏컷이 너무나 잘 어울렸던 탓에 어린 시절부터 중년의 지금까지 숏컷 헤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두 번 머리를 길게 기른 적이 있었지만 본인의 눈에도 타인의 눈에도 숏컷만한 것이 없다 보니 이제는 고민없이 짧은 머리, 그 한 길을 걷는다.

어울리든 어울리지 않든, 마흔이 넘어가면 머리카락을 더이상 기르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머리숱도 적어지고 머리카락에 힘도 빠지니 좀더 관리가 쉬운 짧은 헤어스타일을 선호하게 되는 탓일 것이다.

나의 로망, 드디어 '롱헤어'를 실현했지만 

어느덧 중년이 된 나는 사실 이제서야 그토록 로망하던 자타공인 롱헤어를 갖게 되었다. 일명 두껍고 뻣뻣한 데다 풍성한 숱을 자랑하는 머릿결을 가진 탓에 2, 3년 전만 해도 절대 풀 수 없는 머리였는데, 거역할 수 없는 세월의 흐름 탓인지(실은 감사하다) 머리카락에 힘이 흐늘흐늘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내 어느 정도 숱도 빠지고 힘없이 늘어지는 모발을 갖게 된 덕분에 헤어디자이너 선생님과 의기투합한 나는 그녀의 적극적인 지지에 힘입어 드디어 롱헤어를 갖게 되었다. (야호~) 그런데 이 참에 길러보자, 하며 반갑게 기른 머리였지만 여름이 오면서, 더위가 심해지면서 사실 조금씩 지치고 있다. 늘 로망이었던 롱헤어가 처치곤란한 처지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땀 때문이라도 하루에 두세 번씩 하게 되는 샤워인데 긴 머리를 감는 것은 늘 너무나 번거로웠다. 긴 샴푸시간과 트리트먼트는 필수이고 말리는 시간은 왜 이리 더딘지. 그리고 머리카락은 왜 이리 많이 빠지는지, 청소기 돌리는 횟수가 느니 이것 또한 고되다. 딸이 둘이나 있으니 내 머리카락이라도 좀 짧게 잘라야 하나 싶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그렇게 좋아하던 긴 머리인데도 요즘은 심각한 고민이 된다. '이참에 잘라버려? 이 정도 길러봤으면 된 거 아니야?' 그야말로 숏헤어인 남편이 샤워를 하고 나올 때마다 사실 좀 많이 부럽다.

그런데 머리카락의 길이가 이런 외모와 편리함이라는 두 가지 기준 외에 다른 뜻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된 것이다. 얼마 전부터 인터넷 뉴스를 달구는 기사 하나, 이른바 '페미 안산'이라는 키워드였다.

양궁 경기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솔직히 저 머릿기사가 무슨 소리인지 잘 몰랐다. 안산에 페미니스트가 많은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기사를 클릭한 순간 솔직히 경악에 가까운 실소가 터져 나왔다.

기사의 내용은 이랬다. 일부 남성 커뮤니티 유저들이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양궁선수 안산씨의 짧은 머리를 걸고 넘어지며, '페미 아니냐'고 '공격'을 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대체 숏컷과 페미니즘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숏컷'으로 비난하는 건 코미디 

여자들이 숏컷을 하는 이유는 더도 덜도 말고 편리함 내지는 기분 전환 등에 불과하다. 이유를 더 대자면 잘 어울리고 예뻐서일 뿐 여자들의 헤어스타일엔 그 어떤 이념이나 신념도 없다. 정말 그렇다. 페미니스트이든 페미니스트가 아니든 상관없이 양궁선수가 숏컷 헤어에 대한 비난을 받는다는 사실은 코미디에 가깝다.

답답한 마음에 든 생각이지만, 요즘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임산부나 노인의 신체를 경험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 같은 것이 있던데, '롱헤어 체험'을 해주는 곳은 없을까? 이 더위에 긴 머리를 감고 말리고 매만지는 일을 한번 해본다면 쓸데없는 이런 논쟁이 일어나지 않을텐데... 안타깝다.

중년의 나이, 이제 더이상 머리를 기르는 것이 힘들어 숏컷을 고민했던 나는 이 괴상한 논쟁이 경악스러웠지만 나름 신선했다. 그나저나 우리네 그 수많은 뽀글이 헤어 할머니들은 어쩌나? 할머니들도 모르게 이른바 '페미 인증'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어리둥절할 할머니들 생각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금메달을 금메달로 봐주는 어여쁜 마음이 모두에게 절실한 순간이다. 더위도 힘든데, 숏컷에 더이상 태클은 걸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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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고 글쓰는 일을 좋아합니다. 따뜻한 사회가 되는 일에 관심이 많고 따뜻한 소통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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