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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그룹 '대체왜하니?'는 초4에서 중3까지 10대 사춘기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엄마 시민기자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편집자말]
"엄마, 엄마~~ 오늘 한 번만, 응? 오늘만 진짜 오늘만~"
"안돼! 오늘만이 벌써 몇 번째야?"
"진짜 약속할게! 오늘만 먹고 일주일 동안 안 먹을게!"
".... (믿을 수는 없지만)... 약속할 수 있어?"
"그러~엄~~!!"

  
지키지 못할 약속이라는 것을 뻔히 알았지만 모른 척 넘어가 주었다. 말려봐야 언제 어떻게든 몰래 먹을 걸 알았기 때문이다. 먹지 말라는 엄마와 먹겠다는 아이의 절대 질 수 없는 팽팽한 줄다리기! 언젠가부터 너무나 익숙한 그것, 바로 10대들의 입맛을 확 사로잡은 '불닭볶음면' 이야기다.

사실, 난 불닭볶음면의 외모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못되게 생긴 찢어진 눈에 노란 입술로 불을 뿜어내는 비주얼이 딱 봐도 불량해 보였다. 저렇게 못되게 매운 녀석이 자꾸 우리 딸들을 꾀어내는데 이것을 과연 한 끼 식사로 허용해도 될는지, 엄마라는 존재론적 입장에서 상당히 고민이 되었다.
  
그런데 그런 나의 걱정과 고민이 무슨 상관있으랴. 아이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불닭볶음면에 빠져들어갔다. 세상에 연하디 연한 어린 것들의 위장을 불에 덴 듯 활활 태울 것이 분명한 저 매운맛을 왜 그리 못 먹어 안달일까.

불닭볶음면에 빠진 중3 딸
 
아이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불닭볶음면에 빠져들어갔다.
 아이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불닭볶음면에 빠져들어갔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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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맛은 맛도 아니라는데, 그저 고통에 불과하다는 그 맛에 아이들은 왜 그토록 열광하는지. 아무래도 아이들을 열광케한 힘은 그 맛 때문이 아니라 트렌드의 힘이 분명한 것 같았다. 너도 나도 먹으니, 그 대열에 합류하고 싶은 사춘기의 마음을 건드린 게 분명했다.
  
그저 유행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린 나는 아이들이 하필 매운맛에 현혹되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열심히 말리고 또 말리고, 때로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위장에 구멍 난다. 밤새 설사하다 병원에 갈 수도 있어. 그렇게 매운 걸 먹어대다간 정작 다 커서는 매운 음식 입에도 못 댈 걸? 엄마를 봐. 엄마는 이제 조금만 매운 걸 먹어도 위장약을 먹어야 하는데, 이게 다 엄마 중학교 때 매운 쫄면이랑 떡볶이를 하도 먹다가 이렇게 된 거거든."
  
순도 100퍼센트 진실인 엄마의 이야기를 귓등으로 흘려듣는지, 아니면 자기들은 다를 것이라 생각하는지, 영 먹혀들어가는 눈치가 아니다. 아이는 자기도 맵찔이라 '오리지날 불닭볶음면'이나 '치즈 불닭볶음면'은 아예 건들지도 않을 뿐더러 엄마와 달리 튼튼한 위장을 가졌으니 괜찮다나 뭐라나.

그저 안 매운 '크림 까르보 불닭볶음면'만 먹으니 걱정하지 말란다. 이상하게 이쯤 되면 더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헛심 빼지 않고 허락을 해주는 수밖에. 매운 음식을 먹는 아이의 위장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허락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매운 그 음식이 스트레스 해소에 너무나 도움이 된다는 아이의 말 때문이기도 하다.

중학생인 큰 아이는 학원에서 집에 오면 오후 10시 30분이 되는데 그 시간, 아이는 그렇게 생각나는 것이 불닭볶음면이란다. 늦은 시간까지 학원에 있다 온 아이에게 건강한 밥상을 차려주고 싶은 엄마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파김치가 되어 들어온 아이는 매번 툭 던지듯 한마디를 건넨다.
  
"엄마, 나 오늘 너무 힘든데, 불닭볶음면먹으면 안 돼?"
  
퀭한 눈으로 세상 피로한 얼굴로 나를 보면서 던진 한마디에 나는 쉽게 '노'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아 "안돼"라는 말을 꿀꺽 삼키고는 허락을 하고 만다.

"그래. 마음대로 해."
  
어쩔 수 없이 튀어나온 대답에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이는 쌩하니 방으로 들어가 불닭볶음면을 가지고 나온다(신기하게도 아이의 방에는 늘, 항상 불닭볶음면이 대기 중이다). 아까까지 죽을 것 같던 피곤한 얼굴에 금세 생기가 도는 모습이, 내가 아무리 소고기를 구워먹여도 볼 수 없는 낯빛이다.  
 
아이들이 가장 즐겨먹는 크림까르보 불닭볶음면
▲ 크림까르보 불닭볶음면 아이들이 가장 즐겨먹는 크림까르보 불닭볶음면
ⓒ 은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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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내 눈에 불닭볶음면이 곱게 보일 리 없다. 매번 지는 기분이랄까. 그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안 그래도 싫은 그걸 자꾸 내게 권한다. 자기의 힐링푸드를 그렇게 원수보듯 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듯, 딱 한 번 맛을 보라고. 정말 맵지도 않고 맛있다고.
  
어린아이들 입맛을 사로잡은 맛 따위, 궁금하지도 맛있을 것 같지도 않다고 내리 거절을 했지만 아이는 지치지도 않고 권한다. 아이의 정성이 이렇게나 갸륵하니 먹기는 한번 먹어봐야겠는데 머릿속으로는 계산이 한창이다. 표정을 어찌 관리해야 하지? 맛있는 척이라도 해야 하나? 분명 내 입맛엔 별로일 텐데...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휘젓는 가운데, 어느새 내 입속으로 들어간 불닭볶음면 한입.

어랏, 그런데 이건 뭐지? 그건 내가 상상하던 맛이 아니었다. 이 맛은 뭐랄까... 불닭볶음면 한 젓가락을 입안에 넣는 순간, 머리에서 폭죽이 터지고 혀끝에서 팡파레가 울려 퍼지는 맛이라고 할까?! 아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한 입을 더 먹어보았으나, 역시나 찬란한 패배. 나는 깨끗하게 불닭볶음면의 승리를 선언했다. 맛, 있, 네.

엄마가 졌다, 졌어 
 
불닭볶음면 소스에 찍어먹기 위해 떡국떡꼬치를 만들어버린 우리 딸.
▲ 대체 떡국을 왜 이렇게 먹는거니? 불닭볶음면 소스에 찍어먹기 위해 떡국떡꼬치를 만들어버린 우리 딸.
ⓒ 은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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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이젠 우리 딸들의 소울메이트, 불닭볶음면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호치'(불닭볶음면 캐릭터)가 그렇게 얄미워 보였던 이유를 알 듯하다. 그건 어쩌면 '먹지 않고 버틸 수 있으면 버텨봐'라는 자신감의 강한 어필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저러나 오늘은 인터넷이 고장나 할머니 집으로 온라인 수업을 들으러 간 아이의 불닭볶음면 타령을 듣지 않아도 되겠다, 싶어 마음을 놓고 있는데 난데없이 카톡이 울렸다.
  
"에미야, 얘는 대체 떡국을 왜 이러고 먹는 거냐?"
  
헐, 이게 뭔가? 순간 어이없는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할머니가 점심 식사로 끓여주신 떡국을 젓가락에 끼워 먹고 있는 사진이었다. 맹맹한 떡국이 싫어 할머니 몰래 불닭볶음면 소스를 찍어 먹어버렸다는 아이. 에고고 우리 딸, 정말 졌다. 졌어!

group대체왜하니 http://omn.kr/group/teen_why
초4에서 중3까지 10대 사춘기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엄마 시민기자들의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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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고 글쓰는 일을 좋아합니다. 따뜻한 사회가 되는 일에 관심이 많고 따뜻한 소통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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