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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생각하니, 지난 한주는 참으로 스펙터클(spectacle)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감동적인 드라마의 조연으로 출연했던 듯도 하고, 미스터리 수사물에서 날카로운 추리력을 발휘하는 수사관이 돼 본 것도 같다.

물까치 가족의 정체가 드러나다
 
물까치 부부가 실외기 뒤편에 둥지를 틀고, 새끼 5마리를 두 달여간 키우고 있었다.
 물까치 부부가 실외기 뒤편에 둥지를 틀고, 새끼 5마리를 두 달여간 키우고 있었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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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2일 목요일 저녁의 일이다. 고요한 저녁 공기를 가르며 까마귀와 참새가 동시에 우는 듯한 새소리가 창밖에서 요란하게 들려왔다. 몇 차례 울다 그치려니 하고 기다렸다. 한참을 참고 기다린 게 무색하게 울어대는 새소리는 점점 더 귀따갑게 들려왔다.

베란다 문을 열고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봤다. 멀리 갈 것도 없었다. 바로 윗집 실외기를 둘러싸고 곤충채집망을 든 아저씨가 새 한 마리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뿐 아니었다. 윗집 실외기 바로 밑에서는 관리소장님과 경비아저씨로도 부족해서 주민 몇몇이 삼삼오오 모여 뭔가를 찾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더는 궁금증을 못 참고, 하던 일을 올스톱하고 아파트 입구로 내려가 봤다.

어느 틈엔가 윗집 아저씨도 내려와 있었다. 사태 수습에 동참한 한 주민 손에는 택배 상자가 들려 있고, 살짝 벌어진 틈새로는 깃털이 보였다. 소장님이 아기 새 세 마리가 잡혀 있다는 귀띔을 해준다.

통장댁 둘째는 "고양이한테 잡아먹히면 안 되는데, 어디 있는 거야" 중얼거리며 정원수 주변을 뒤지느라 여념이 없다. 찾아야 하는 새 두 마리는 여럿이 달려들어 뒤지고도 찾지를 못했다. 결국 택배 상자에 든 새끼 새들만 둥지에 돌려놓으러 가는 윗집 아저씨를 따라나섰다가 자초지종을 듣게 됐다.

두 달 전쯤 에어컨 실외기 뒤에 어미 물까치가 알 5개를 낳았단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법한 일이 우리 아파트에서 벌어졌던 거다. 일주일 전부터 새끼들은 날개가 돋기 시작했고, 둥지가 좁아 보여 철망으로 여유 공간을 확보해 줬다고 한다.

그런데 이날 뭣 모르고 둥지 밖으로 나온 새끼 5마리는 막을 새도 없이 차례차례 추락했고, 뒤늦게 집에 돌아온 어미 새는 위층 아저씨가 새끼들을 해코지 하는 줄 알고 덤벼든 모양이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부터 유난히 위층 실외기에 새 한 마리가 자주 앉는다고만 여겼는데, 이런 기구한 사연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설상가상 택배 상자에서 둥지로 옮기려던 새끼들은 제자리에 내려놓자마자 다시 전부 추락했고, 이번에는 단 한 마리도 찾지 못한 채 날이 저물어 버렸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새끼 물까치
 
새끼 물까치가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 따가운 햇빛을 피해 그늘에 앉아 있다.
 새끼 물까치가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 따가운 햇빛을 피해 그늘에 앉아 있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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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새벽, 동이 트자마자 득달같이 일어나 일층으로 내려가 봤다. 고층에 달린 실외기며 앞 동 옥상 꼭대기, 아파트 입구에 심어 놓은 소나무 위, 가로등 전구 위를 날다 앉다를 반복하며 물까치 여러 마리가 시끄럽게 울어대고 있었다. 아찔했던 추락의 경험이 자연스럽게 이소로 이어졌는지도 모른다. 총총걸음으로 담장 근처를 바삐 뛰어가는 새끼 물까치 한 마리도 보였다. 

7시쯤 되니, 울어대던 새들이 조용해졌다. 그렇게 새끼 물까치들의 추락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런데 귀를 기울이니 어디선가 새 우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따라갔더니만, '이런 세상에나!' 우리 라인 출입구 지붕(네모난 공간)에 새끼 물까치 한 마리가 돌아다니고 있다. 약아빠진 게 그늘진 데로만 왔다 갔다 하더니, 가끔 푸드득 날개짓도 서슴지 않는다.

더운데 애쓰는 게 안쓰러워 물병을 매단 검정색 우산 하나를 챙겨왔다. 그늘도 만들고, 천적들 눈에 띄지 말라고 아끼던 우산을 쾌척하고야 말았다. 무엇보다 먹을 물을 챙겨줘야 하는데,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았다.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아파트를 돌던 젊은 집배원이 선뜻 나서더니 창문을 통해 내려가 물그릇을 놔주고 왔다. 평소에도 인사성 밝고 친절한 양반인데, 어찌나 고맙던지.

추락사고 이틀 후

전날 새벽과 마찬가지로 물까치 떼가 아파트 주변을 비행하며 울어댄다. 고층 실외기에 앉은 물까치 한 마리가 어디를 감시하는지는 뻔할 뻔 자였다. 사람들이 집 밖으로 한꺼번에 나오는 시간대 전까지는 마치 교신이라도 하는 듯 어미와 새끼는 번갈아 가며 울어댔다. 이날은 통장님이 플라스틱 용기에 구멍을 내고 노끈을 매달아 토마토와 해바라기씨, 물까지 넣어 놨다. 

하루 일과가 됐다. 점심 때쯤 새끼 물까치를 다시 들여다봤다. 먹이와 물에는 손도 안 대고, 꾸벅꾸벅 졸고 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도울 방법을 모르니 답답했다. 그저 바닥과 우산 위에 물을 뿌려주며 계속 동태를 주시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저녁때면 보이던 어미 새가 코빼기도 안 비친 날이다. '새끼를 포기한 건 아닐까?' 불안했다. 다행히 새끼는 통장님이 넣어 준 해바라기씨를 먹은 눈치였다. 혹시 모르고 주워 먹지는 않을까 노파심에 긴 빗자루를 가져다 눈에 거슬리는 담배꽁초, 빈 생수병, 비닐봉지 등을 새끼가 놀라지 않게 살살 구석으로 몰아놨다.
 
천적의 눈을 피하고, 햇빛도 막으려고 놔둔 우산대에 새끼 물까치가 올라앉아 있다.
 천적의 눈을 피하고, 햇빛도 막으려고 놔둔 우산대에 새끼 물까치가 올라앉아 있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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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인 다음날, 다른 날보다 조금 늦게 일어나 새끼 물까치를 살피러 가 봤다. "우와!" 녀석이 우산대를 발톱으로 부여잡고 올라타 있는 게 아닌가. 자꾸만 아래로 미끄러지는데도, 다시 올라가고 또다시 올라간다. 날렵하고 늠름해졌다. 인기척을 느끼고 경계하는 눈초리에서는 매서움마저 느껴졌다.

'자식!' 낮에 살피니 여기저기에 똥을 푸지게도 싸놨다. '이젠 살았다.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마침내

월요일이 됐다. 아침 8시가 채 안 된 시간에 내려가 봤더니, 아무리 눈 비비고 찾아도 새끼 물까치가 안 보인다. 우산을 걷어내고 살펴도 마찬가지였다. 아침 일찍부터 나가 돌아다니다 올라오는 통장댁 둘째를 계단에서 만났다. 새벽까지 물까치 우는 소리를 들었는데, 살피러 갔을 때는 녀석이 없었단다. 깃털이 떨어져 나뒹군 흔적이 없으니 그저 다행이라고 서로를 다독였다. 

야멸차다 여겼던 어미는 새끼를 포기하지 않았던가 보다. 전날 쥐도 새도 모르게 찾아와 새끼를 잘 먹여 둔 게 틀림없다. 증거로 거사 전날 새끼는 사방팔방에 똥을 휘갈겨 놓지 않았던가. 떠나는 마지막을 챙기지 못해 서운하면서도 무탈하게 이소한 게 여간 다행스럽지 않았다.
 
실외기에 지붕이 있어서 물까치 부부가 둥지를 튼 것인지, 아니면 새 둥지를 보고 아저씨가 지붕을 마련했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물까치가 알을 낳기 전에는 실외기에 지붕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실외기에 지붕이 있어서 물까치 부부가 둥지를 튼 것인지, 아니면 새 둥지를 보고 아저씨가 지붕을 마련했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물까치가 알을 낳기 전에는 실외기에 지붕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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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가는 아들이나 시집가는 딸을 보면 이런 심정일까. 마음이 휑하여 물까치 일가족이 떠난 자리를 보고 또 올려다봤다. 그러다 문득 물까치 부부가 하고많은 실외기 중에 왜 윗집 실외기에 둥지를 틀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비로소 깨달았다. 윗집 실외기에만 지붕이 덮여 있다는 사실을. 두 달 전쯤부터 올빼미족인 윗집 아저씨가 밤 10시면 소등을 하고, 폭염에도 에어컨을 안 틀던 이유도, 이 물까치 가족 때문은 아니었을까.

서식 환경이 좋지 않아 도심에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는 조류들이 어렵지 않게 목격된다. 이번 사건을 통해 그들을 돕고자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최악의 사태는 막을 수 있고, 우리의 노력이 지속되면 어려운 가운데 상생이 가능할 수 있다는 희망도 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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