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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의 연재코너 <오늘의 기사 제안>을 나는 늘 관심 있게 지켜본다. 이번 주제는 '여름 먹거리'. 건강에 좋은 비름나물, 시원한 열무 물김치, 감칠맛 나는 면두부 비빔면... 시민기자들의 맛있는 기사가 솔솔 올라온다. '난 힘들겠는걸?' 지금까지 음식에 관한 글을 써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먹는 것을 좋아하고 요리도 나름 잘하는 편인데 글로 잘 안 써진다. 그래서 나는 음식 이야기를 생생하고 먹음직스럽게 잘 쓰는 사람이 부럽다. 최근에 읽은 <나를 치유하는 부엌>도 그렇다. 고명한 작가는 음식 이야기를 술술 풀어낸다. 게다가 심리학까지 잘 녹여 친절하고 맛있게 버무려 냈다.

우리가 몰입하는 음식들
 
책 <나를 치유하는 부엌>
 책 <나를 치유하는 부엌>
ⓒ 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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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인 '양가감정- 장례식 육개장 한 그릇'은 읽는 날은 마침(!) 남편과 말다툼을 한 날이라 책을 읽으며 뜨끈한 위로를 받고 마음을 풀었다. 좋아함과 미워함이라는 상반된 감정이 충돌하는 '양가감정'은 특히 부모와 자식, 부부, 연인 등 사랑하는 관계에서 많이 발생한다. "문제가 생길 때 흑백의 선택지가 아닌 그 속의 다양한 대안을 찾아 양가감정의 균형을 잡으라 (27쪽)"는 조언 덕분에 부부싸움 뒤의 남은 감정을 빨리 정리할 수 있었다.

작가는 콩자반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콩자반'도' 잘한다는 엄마의 칭찬에 주눅 든 사회 초년생의 '자존감'을 찾고, 엄마의 고등어조림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열등감'은 나만의 다른 맛을 인정할 때 극복할 수 있었다. 대학 시절,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티라미수를 친구 앞에서 잘 아는 케이크처럼 말했던 '허영심'도 솔직하게 고백하고, 소풍날 아이들 김밥 도시락과는 다른 엄마의 삼단 도시락이 부끄러워 꺼내지 못한 에피소드에서 '획일화 문화'를 고찰한다.

'레몬 과자, 몰입의 순간' 중 "레몬 과자는 반죽을 만들고 굽는 과정 내내 나를 설레게 만든다"(208쪽)라는 문장에서 '지금까지 레몬 마들렌을 구웠던 내 마음이 바로 이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들 간식이나 지인 선물로 레몬 마들렌을 자주 굽는데, 나 역시 그 과정이 귀찮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레몬을 끓는 물에 데쳐 껍질을 곱게 갈고, 버터를 녹이고, 달걀을 풀고, 밀가루를 두 번씩 채 치는 과정 모두 즐겁다. 물론 '몰입' 전에 오늘 만들까 말까 고민의 시간은 길고, 만든 후에 설거지 과정은 귀찮지만 말이다.

내가 완전히 몰입하는 또 하나의 음식은 '크로켓(이라고 쓰고 '고로케'라 읽는다)'. 감자를 포근포근하게 삶고 뜨거울 때 껍질을 살살 벗겨 으깬다. 양파를 곱게 다져 볶아놓고, 다진 돼지고기도 국물이 생기지 않게 바싹 볶는다. 한데 버무려 모양을 잡아 밀(가루)-계(란)-빵(가루)을 묻혀 적당한 기름 온도에 튀겨낸다. 그야말로 요즘 유행하는 '겉바속촉(겉은 바삭 속은 촉촉)'이다. 가족들이 와삭 한 입 베어 무는 소리에 행복해진다.

크로켓을 만들 때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가 생각난다. 하루키는 크로켓을 좋아해 한 번에 반년 치를 만들어 왕창 냉동 시켜 놓을 정도인데 어느 날 갑자기 냉장고가 고장 난다. 냉동 크로켓이 녹아가자 며칠 동안 그는 가능한 한 크로켓을 많이 먹어 치웠다. 덕분에 몇 년은 크로켓이 꼴도 보기 싫었는데, 흉악한 크로켓 군단에 폭행당하는 꿈까지 꾸었다나. 내가 튀긴 크로켓이 튀김 받침대에 간격을 맞춰 정렬해 있는 걸 보면 오늘 밤, 이 크로켓 군단이 나를 찾아오면 어떡하지 싶어 슬며시 웃음이 난다.

평범한 음식,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 

코로나 시국에 폭염까지 덮친 올해 초복, 중복 삼계탕을 끓일 때는 '전쟁과 삼계탕-후회' 편이 매번 떠올랐다. 작가의 아버지는 베트남 전쟁 징집 전날, 홀어머니가 끓여주신 삼계탕을 남겼던 죄책감을 평생 안고 살았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아버지는 여전히 닭 다리 한쪽을 먹지 못한 채 집을 나서지 않았을까 작가는 추측한다.

젊은 아버지는 자식을 위하는 어머니의 마음보다 불안한 자신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더 컸을 테니 말이다. 아버지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께 효도하겠다는 희망으로 전쟁터에서 살아남았다. 후회에 매몰되지 않고 희망을 품은 것이다.

"후회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두 배로 불행하고 두 배로 무능하다"는 철학자 스피노자의 말처럼 이미 지나간 선택을 후회하는 것은 감정 소모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상반기에 후회스러운 일들은 잠시 접어두고 올해 남은 후반기를 후회 없이 살아야지 다짐해본다.

<나를 치유하는 부엌>은 매일 먹는 평범한 음식에서 삶의 허기까지 따뜻하게 채워주었다. TV에서 라면이나 짜장면 먹는 장면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먹고 싶듯이, '나도 음식 이야기를 한 번 써 볼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오늘의 기사 제안>으로 가을 먹거리나 겨울 먹거리가 뜨기만 해봐라. 그때는 내가 꼭 쓰고 말 테니!'

나를 치유하는 부엌 - 삶의 허기를 채우는 평범한 식탁 위 따뜻한 심리학

고명한 (지은이), 세이지(世利知)(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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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세상의 나뭇가지를 물어와 중년의 둥지를 보완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50플러스 에세이 작가단 연재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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