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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수리 하느라 두어 달 신문구독을 끊었다. 새벽 5시 일어나자마자 신문부터 펼치던 손이 허전하다. 중앙지 하나, 지방지 하나, 신문 2개를 매일 한 시간씩 펼치던 일상이 몇 십 년 계속되었으니 허전할 수밖에 없다. '신문은 꼭 읽어야한다'는 의무감 같은 습관이 생긴 탓이다.

세계는 지금 읽을꺼리 천지인 스마트폰 세상이다. '스마트폰이 도서관이다.' 도서관하나를 손에 들고 다닌다. 유튜브는 강의와 노래, 게임과 서예, 드라마까지 취향을 알아내 골라주기까지 한다. 책읽어주는 '북튜브'도 있다. 이런 디지털 만능시대에 프린팅 미디어는 무슨 역할을 하는가. 정보 무료, 정보 과잉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한 달에 2~3만 원씩 내고 종이신문을 꼭 읽어야하나?

지난 4월 7일 발표한 '2021년 신문의 날 표어'를 찾아 읽어본다. '신문이 말하는 진실은 검색창보다 깊습니다'. 검색창이 말하는 진실은 얕고 신문이 말하는 진실은 깊다는 뜻일까. 독자들이 디지털 미디어인 '검색창' 바다에 빠져 길을 잃고 헤매지 않도록 등대처럼 '진실'을 밝히겠다는 선언 같다. 디지털 세상에는 정보가 넘친다. 산속에서 길을 잃었는데 갈래 길이 열 댓 개나 나타난다면 어느 길로 가야할지 헷갈린다. 정보바다에는 등대가 필요하다.

신문은 지금 정보바다를 밝히는 등대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물으려다 신문에게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느냐'고 따져 물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의문이 든다. 한 달에 2~3만 원 내는 유료독자라고? '신문이 역할을 못한다고 생각하면, 구독을 끊고 안 읽으면 되지 않느냐' 답하면 말문이 막힌다. 신문구독을 마음대로 끊고 검색창 독자로 남아 자유를 누릴 수 있나, 그러고도 손이 허전하지 않을 수 있나 하는 의문이다.

디지털 시대, 검색창 독자는 모두가 뉴스생산자다. 뉴스를 읽기만 하는 한 방향 뉴스소비자가 아니다. 소비를 하면서 동시에 생산하는 쌍방향 소비생산자다. 자기가 믿거나 좋아하는 뉴스를 전달하는 전달자이기도 하다. 누구나 몇 번 클릭으로 수 천 명에게 뉴스를 공급하고 공유할 수 있다. 여러 개 뉴스를 조합하거나 새로운 사실을 입혀 가공하기도 한다. 편집자이자 뉴스 편곡자 역할이다.

뉴스생산자인 우리는 이제 신문을 비판하느라 노동과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가짜뉴스, 얕은 진실을 비난할 필요도 없다. 스스로 진실한 뉴스를 부지런히 생산하고 전달하고 공유하면 된다. 세상에 가짜뉴스가 더 많이 나돈다고 생각이 들면 '나는 지금 진실한 뉴스를 생산하고 있나, 깊은 진실을 외면하고 얕은 진실에 빠져 있지는 않는지' 자신을 채찍질하는 시간을 가질 기회다.

한국은 인구데드크로스를 2020년에 만났다. 인구축소사회로 진입한 것이다. 예상보다 9년이나 빨리 맞닥뜨리게 된 현실이다. 1년에 몇 조 원씩 쓰며 인구축소사회 진입을 막으려 안간힘을 썼는데도 9년이 늦춰진 게 아니라, 9년이나 빨라졌다. 우리가 믿고 있고, 좋아하는 뉴스만 듣고 보고 전달하다가 빚어진 현실이 아닌지, 탐진치(탐욕, 분노, 어리석음)에 휘둘려 깊은 진실을 외면하고 얕은 진실에 목매다 빨리 맞게 된 매가 아닌지 반성한다.

사람의 탐욕(소유욕망)은 끝이 없다. 다른 생명체의 영역까지 침범해 세계대전보다 더 혹독한 코로나19 바이러스 집단감염사태를 만났다. 아직도 언제 끝날지 모른다. 이상기후, 지구온난화, 한국부동산 버블현상의 깊은 진실은 무언가. 새벽 5시, 신문도 검색창도 없다.  일기장을 펼친다. 나는 지금 무슨 뉴스를 생산하고 있나!

태그:#디지털 시대, #신문의 역할, #깊은 진실, #인구축소사회, #검색창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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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글로 쓰면 길이 보인다'는 가치를 후학들에게 열심히 전하고 있습니다. 인재육성아카데미에서 '글쓰기특강'과 맨토링을 하면서 칼럼집 <글이 길인가>를 발간했습니다. 기자생활 30년(광주일보편집국장역임), 광주비엔날레사무총장4년, 광주대학교 겸임교수 16년을 지내고 서당에 다니며 고문진보, 사서삼경을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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