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박완용 ‘가보자’ 28일 일본 도쿄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7인제 럭비 대한민국 대 일본 11-12위 결정전. 대한민국 박완용이 달리고 있다.

▲ [올림픽] 박완용 ‘가보자’ 28일 일본 도쿄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7인제 럭비 대한민국 대 일본 11-12위 결정전. 대한민국 박완용이 달리고 있다. ⓒ 연합뉴스

 
골리앗들 앞에 선 한 명의 다윗.

대한민국 7인제 럭비 대표팀이 26일부터 28일까지 써내야만 했던 지금까지의 이야기였다. 월드컵 무대조차 한 번 밟지 못했던 한국 대표팀은 2020 도쿄 올림픽에 처음으로 출전해 '지옥의 조' 한복판에서, 어쩌면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것에 비견되는 어려운 싸움을 이어가야만 했다.

마지막 순위결정전인 한일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의 경우 프로리그가 운영된데다, 2019년 럭비 월드컵을 치렀을 정도로 아시아에서는 럭비 강국으로 꼽힌다. 2016년 리우 올림픽 당시에는 준결승까지 진출했을 정도로 전력도 강하다. 그에 반해 한국은 럭비 팀이 실업팀 3개, 대학은 4개팀에 불과할 정도로 선수층이 얇다.

그런 상황만을 놓고 봤다면 한일전 역시 일본이 압도적으로 승리했어야 했을 터. 하지만 선수들은 몸을 던져가며 일본과 대등한 경기를 가져갔다. 죽기, 아니면 살기의 정신으로 나선 선수들은 19-31의 스코어로 일본에 석패했지만, 투혼을 불사른 모습만큼은 국민들에게 기억될 수 있게 되었다.

비장한 얼굴의 선수들... 대등했던 전반전

28일 어느 때보다도 경기장에 들어선 선수들의 표정은 비장했다. 이날 교체 명단에 오른 박완용 대신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장에 들어선 한건규 선수의 표정에는 한일전이라는 게임의 중압감, 태극마크의 막중함이 묻어났다. 이날 스타팅 라인업에는 한건규를 필두로 김현수, 안드레 진, 장용흥, 김남욱, 장정민, 이진규 선수가 나섰다.

경기 초반부터 대표팀 선수들은 상대 진영을 돌파하려 애썼다. 상대 선수들의 러크를 뚫어내며 조금씩 전진하던 선수들. 경기 시작 1분 만에 안드레 진이 인골 에어리어까지 밀려난 상대 진영 끄트머리를 공략해 한일전 첫 트라이를 올렸다. 이어 안드레 진은 컨버전 킥까지 성공시키며 스코어를 7-0으로 만들었다.

일본도 이에 질세라 반격했다. 투키리 로테가 한국 진영의 빈틈을 노려 1분 만에 트라이를 올린 것. 점수는 단숨에 동점이 되었다. 그러자 한국 역시 일본을 따돌리려 애썼다. 해결사는 장정민이었다. 장정민은 상대 진영 끝을 파고들며 질주를 시작했다. 

뒤따르던 일본 선수들이 이윽고 추격을 포기했고, 장정민은 여유롭게 공을 인골 에어리어에 꽂아넣으며 트라이를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질주 거리가 길었던 탓에 컨버전 킥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상대 진영을 정석으로 뚫고 기록한 점수였기에 의미가 컸다.

하지만 일본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전반 종료가 1분 남짓 남은 시간, 장정민과 장용흥의 태클을 차례로 따돌린 일본의 히코사카 마사카츠 선수가 득점을 올렸다. 일본은 컨버전 킥에도 성공하며 12-14로 역전했다.

전반 추가시간에는 석연치 않은 판정이 추가 실점을 불러왔다.

상대의 태클, 이어진 러크에 공을 안고 넘어졌던 안드레 진 선수에게 경기 지연을 이유로 옐로 카드가 내려진 것. 옐로 카드를 받은 안드레 진은 항의를 이어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2분간 경기장 바깥으로 나가야만 했고, 진영이 흐트러진 틈을 타 일본이 트라이를 가져갔다. 결국 그렇게 스코어 12-19로 전반이 종료되었다.

끝까지 노력한 한국... 패배 막지는 못했다
 
[올림픽] 경기장 나서는 안드레 진 28일 일본 도쿄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7인제 럭비 대한민국 대 일본 11-12위 결정전. 경기를 마친 후 안드레 진이 태극기를 펼친 채 경기장을 나서고 있다.

▲ [올림픽] 경기장 나서는 안드레 진 28일 일본 도쿄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7인제 럭비 대한민국 대 일본 11-12위 결정전. 경기를 마친 후 안드레 진이 태극기를 펼친 채 경기장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이어 시작된 후반전에서는 경기 시작 20초 남짓 만에 일본이 달아나는 득점을 올렸다. 일본의 마츠이 치히토가 한국 측 수비진영을 가로지르며 득점을 올렸다. 장성민 역시 몸을 던지며 마츠이를 막아내려 애썼으나 일본의 득점을 막지는 못했다. 결국 점수는 12-26으로 벌어졌다.

한국에도 기회가 찾아왔다. 일본의 조세 세루와 한국의 장성민이 연달아 2분간 퇴장된 어수선한 틈을 정연식이 노렸다. 정연식은 올림픽 첫 경기였던 뉴질랜드와의 경기에서도 대한민국의 올림픽 사상 첫 득점을 올렸던 선수.

정연식은 상대 진영에서 김남욱의 짤막한 패스를 받아 질주를 시작했다. 몸을 던져 막아내는 일본 선수들의 추격을 모조리 돌파한 정연식은 상대의 인골 에어리어까지 달려나가 트라이를 올리는 데 성공했다. 한국은 컨버전 킥까지 성공을 거두며 19-26으로 스코어를 만들었다.

역전이 눈앞에 보이는 순간. 하지만 일본의 막판 공세도 무서웠다. 경기 종료 2분여를 남겨두고 일본의 하노 카즈시가 한국의 빈틈을 뚫어내며 트라이에 성공해 19-31의 스코어를 올렸다.

두 번의 트라이로 쫓아가야 하는 한국의 마음도 급해졌다. 박완용 주장이 그라운드에 들어오고, 최상덕 선수가 투입되는 등 분위기를 바꾸려 애썼고, 추가 시간 한국 역시 일본의 골 포스트 가까이까지 가면서 극적 득점을 만들려 했다.

하지만 공이 일본에 넘어갔고, 그 순간 심판의 호루라기가 울렸다.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 처음 나섰던 한국 선수들의 올림픽 도전이 마무리된 순간이었다. 전력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한일전에 나섰던 선수들은 19-31, 한일전에서 이번 올림픽 최다 득점을 기록하며 대회를 마쳤다.

값진 올림픽 경험, 박수를 보냅니다

첫 올림픽에서 역사적인 도전을 마친 선수들이었다. 안드레 진 선수는 어머니, 그리고 자신의 나라 국기인 태극기를 들고 경기장을 한 바퀴 돌았다. 어머니의 나라에서 태극기를 가슴에 새기고 올림픽이라는 무대에 뛰었던 안드레 진 선수에게는 누구보다도 뜻깊은 순간이었다.

선수들은 무엇보다도 값진 경험을 해냈다. 대한민국에서 럭비는 처절한 비인기, 아예 '종목의 이름은 들어봤을지라도 경기 방식은 모르는' 비인지 종목이었다. 그런 인식 사이에서 선수들 역시 외로운 싸움을 해야만 했다. 선수층 역시 얇다. 럭비협회에 등록된 선수 역시 1천여 명에 불과하다.

선수들은 누구보다도 이번 올림픽을 국민들에게 '럭비'라는 종목을 알리는 계기로 삼고 싶었다. 올림픽 전 한건규 선수에게 들었던 이야기도 "이번 기회에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면 '럭비가 이런 종목이구나'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겠느냐"는 말이었다. 

다행히도 방송 중계 역시 성사되었다. 첫 경기였던 뉴질랜드와의 경기는 중계가 성사되지 못했지만, 호주와의 경기, 아일랜드와의 경기, 그리고 한일전만큼은 생중계로 또는 지연중계로 방영되며 국민들에게 럭비라는 종목에 대해 알리고, 한국 선수들이 얼마나 어려운 과정을 거쳐 올림픽 무대에 섰는지를 알렸다.

국민들 역시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선수들의 과정, 그리고 선수들이 보여준 이야기에 감동을 보였고, 특히 세계 최강 뉴질랜드, 호주와의 경기에서 트라이를 보여낸 정연식 선수와 안드레 진 선수에게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선수들의 바람이 실제로 이루어진 셈이다.

누군가는 '올림픽 꼴찌'라고 한다지만, 선수들은 12개의 나라에게만 허락된 올림픽이라는 무대에 극적으로 섰다. 이 선수들만큼은 '세계에서 열 두 번째로 잘 하는 나라의 선수'인 셈이다. 여러 어려움에도 적극적으로 뛰어 최고의 성과를 내고, 트라이를 꽂아넣었던 선수들의 활약에 아낌없이 박수를 보낸다.

도쿄 올림픽에서 활약을 펼쳤던 13명의 선수들, 그리고 코칭스태프진은 29일 귀국길에 오른다. 귀국하는 길이 선수들에게 무엇보다도 뜻깊고 뿌듯한 여정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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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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