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2.9%라는 높은 시청률(닐슨미디어 코리아 기준)을 기록하며 인기리에 종영한 KBS 주말드라마 <오!삼광빌라>에 출연한 배우 진기주는 배우가 되기 전 삼성 SDS 컨설턴트와 G1방송 기자로 일했던 경력이 있다. 그 밖에 배우 김태리는 두유 판매원으로 일했고 이시영은 찜질방 매점을 운영한 경력이 있으며 크레용팝의 금미는 피부과에서 모낭분리사로 일했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연예계 활동을 그만둔 후 전혀 다른 일을 하며 제2의 인생을 사는 사람도 적지 않다. <태왕사신기>와 <시크릿가든>에 출연해 이름을 알렸던 이필립은 현재 사업가가 됐고 NRG의 래퍼였던 문성훈은 가방 디자이너 겸 CEO가 됐다. 개그맨 문천식은 쇼핑호스트로 변신해 누적매출 5000억 원에 빛나는 '홈쇼핑계의 완판남'이 됐다. '황마담'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개그맨 황승환은 현재 무속인으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지난 2016년 4월 대한민국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던 날, 여전히 대중들에게 아주 익숙했던 왕년의 슈퍼스타가 꽃목걸이를 한 채 지지자들의 축하를 받으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다름 아닌 지난 2005년 20대 국회의원을 지낸 현 여의도연구원의 지상욱 원장과 결혼해 배우가 아닌 '정치인의 아내'로 은퇴 후 16년 만에 대중들 앞에 얼굴을 드러냈던 1990년대 최고의 여성배우 심은하였다.
 
 <미술관 옆 동물원>은 서울에서만 41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미술관 옆 동물원>은 서울에서만 41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 시네마 서비스

 
<마지막 승부> 다슬이, 최고의 배우가 되다

<해를 품은 달>의 김수현이나 <건축학개론>의 배수지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해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듯하지만 사실은 이들에게도 자신을 단련한 기간이 있었다. 김수현의 경우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자이언트>에서 각각 고수와 박상민의 아역으로 연기경험을 쌓았고 배수지는 걸그룹 미스에이의 멤버로 이미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쌓고 있었다(두 사람은 2011년 <드림하이>라는 청소년 드라마에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이에 비해 MBC 공채 22기 탤런트 심은하는 아침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 단역출연을 제외하면 연기경험이 전무한 상태였다. 그런 심은하에게 16부작 미니시리즈 <마지막 승부>의 주인공을 맡기는 것은 MBC 입장에서도 큰 모험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대성공. 심은하는 <마지막 승부>의 다슬이를 통해 남학생들의 로망으로 떠올랐고 이어 <M>과 <숙희> <아름다운 그녀>를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최고의 여성스타로 등극했다.

하지만 천하의 심은하도 영화에서는 좀처럼 빛을 보지 못했다. 불량소녀로 파격적인 변신을 했던 스크린 데뷔작 <아찌아빠>가 서울 6만 7000명, 정우성과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은 <본투킬>이 13만에 그치는 아쉬운 성적을 남긴 것이다. 그렇게 '영화보다 드라마가 어울리는 배우'의 이미지가 강해지던 심은하는 한석규라는 귀인을 만나 1998년 1월에 개봉한 <8월의 크리스마스>를 통해 서울 42만 관객을 동원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그리고 심은하는 1998년 12월 신인 감독 이정향, 신인배우 이성재와 호흡을 맞춘 <미술관 옆 동물원>으로 영화 연기에 정점을 찍었다. 이미 <8월의 크리스마스>를 통해 청룡영화제와 백상예술대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심은하는 <미술관 옆 동물원>으로 대종상 여우주연상까지 차지했다. 남들은 평생 연기를 해도 받기 어렵다는 3대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단 두 편의 영화로 휩쓸어 버리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하지만 심은하는 자신에게 찾아온 전성기를 스스로 내려 놓았다. 심은하는 2000년 <인터뷰>를 끝으로 활동이 뜸해졌고 2001년 결혼과 파혼이라는 대형 스캔들 이후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2005년 지상욱과 결혼한 심은하는 외부노출을 최대한 자제한 채 정치인의 아내로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서른이 채 되기 전에 은퇴했지만 한국나이로 지천명이 된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는 심은하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여성 배우의 전설이다.

'기묘한 동거' 통해 서로에게 물들어 간 두 사람
 
 심은하는 <미술관 옆 동물원>으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3대 영화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심은하는 <미술관 옆 동물원>으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3대 영화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 시네마 서비스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철수(이성재 분)는 열흘 이상 남은 휴가기간을 여자친구와 함께 보내기 위해 다혜(송선미 분)가 살고 있는 집으로 찾아간다. 곤히 잠든 여자친구를 위해 월세(30만 원)도 대신 내주지만 집 안에 있는 것은 다혜가 아닌 낯선 여성 춘희(심은하 분)였다. 춘희는 우연찮게 철수와 다혜가 만나는 자리에 동행하지만 다혜는 화해의 손길을 내민 철수에게 다른 남자와의 결혼을 통보한다.

실연을 당한 철수는 울적한 마음에 과천 공원을 찾지만 춘희는 동물원보다 미술관을 더 좋아한다. 그렇게 취향도 사랑관도 전혀 다른 철수와 춘희는 춘희가 준비하는 시나리오의 타자를 철수가 대신 쳐주는 조건으로 휴가 기간 동안 짧은 동거를 시작한다. 하지만 낭만주의자인 춘희와 현실주의자인 철수는 시나리오 집필과정에서 사사건건 부딪히고 결국 현실 속 각자의 짝사랑 대상을 시나리오의 남녀주인공으로 정하기로 합의를 본다.

영화 초·중반부에서 관객들의 감탄을 자아낸 장면은 청순가련의 대명사 심은하가 보여준 털털한 매력이었다. 특히 맛있는 음식을 보며 괴상한 소리를 낼 때는 남성 관객들은 물론이고 여성관객들마저 심은하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까칠한 성격의 철수를 연기한 이성재 역시 춘희에게 독설을 퍼부으면서도 보이지 않게 춘희를 배려한다. 특히 춘희가 앞서 가는 버스를 잡으려 할 때 철수는 차로 버스 앞을 막으며 춘희가 도착하길 기다린다.

춘희와 철수는 시나리오 마무리 작업에서 의견이 갈리면서 서로에게 빠져 있음을 깨닫는다. 이쯤 되면 "사랑이라는 게 처음부터 풍덩 빠지는 걸로만 알았지, 이렇게 서서히 물들어 버릴 수 있는 건지 몰랐어"라는 춘희의 뜬금없는 독백도 상당히 애틋하게 들린다. 귀대를 앞둔 철수는 춘희가 좋아하는 미술관을 찾았고 춘희는 동물원에서 철수를 찾는다. 결국 두 사람은 미술관과 동물원의 갈림길에서 만나고 풋풋한 입맞춤을 통해 사랑을 확인한다. 

<미술관 옆 동물원>을 통해 4개 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과 각본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한 이정향 감독은 2002년 두 번째 장편영화 <집으로...> 역시 서울에서만 157만 관객을 동원하며 두 편 연속 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집으로...> 이후 9년 동안 차기작을 발표하지 않았던 이정향 감독은 2011년 송혜교 주연의 <오늘>이 전국 13만 관객에 그치며 주춤했고 이후 다시 10년 동안 차기작을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

조금 다른 의미로 남다른 존재감 뽐낸 송선미
 
 신인배우 송선미의 도도한 연기는 영화 속에서 썩 잘 어우러지지 못했다.

신인배우 송선미의 도도한 연기는 영화 속에서 썩 잘 어우러지지 못했다. ⓒ 시네마 서비스

 
미스코리아와 슈퍼모델은 그 자체로도 영광이지만 연예인 데뷔의 지름길이 된다는 점에서 1980~1990년대의 연예인 지망생들에게는 그야말로 '꿈의 무대'나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김성령과 고현정, 이승연, 오현경, 염정아, 김사랑, 손태영, 이하늬(이상 미스코리아), 이소라, 이선진, 홍진경, 한예슬, 한지혜, 소이현, 최여진, 김새롬, 이성경, 나나(이상 슈퍼모델) 등 미스코리아와 슈퍼모델 출신 연예인들은 손에 꼽기도 힘들 만큼 많이 배출됐다.

송선미 역시 1996년 슈퍼엘리트모델 선발대회에서 2위를 차지하며 연예계에 데뷔했다(같은 해 배우 윤지민과 모델 변정수의 동생 변정민도 참가했다). 그리고 데뷔 2년 만에 처음으로 찍은 영화가 바로 <미술관 옆 동물원>이었다. 이미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에서 맹한 매력의 송 간호사 역으로 가능성을 보인 적이 있기 때문에 영화 데뷔작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 게다가 영화 속 송선미의 상대역은 '국민배우' 안성기였다.

하지만 송선미는 <미술관 옆 동물원>을 통해 혹독한 영화 신고식을 제대로 치렀다. 송선미는 <미술관 옆 동물원>을 통해 <사랑과 전쟁>의 장수원, <에덴의 동쪽>의 이연희, <돈 크라이 마미>의 동호, <웃어요 엄마>의 강민경 등과 승부를 펼칠 만한 심각한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주연 배우였던 심은하와 이성재가 기대 이상의 자연스런 연기를 펼치는 바람에 송선미의 딱딱한 연기가 더욱 눈에 띄었다.

하지만 송선미의 '발연기 흑역사'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착실하게 연기경력을 쌓은 송선미는 2012년 <골든타임>으로 코리아드라마어워즈 여자 우수상, 2017년 <돌아온 복단지>로 MBC <연기대상> 연속극 부문 여자 우수 연기상을 수상했다. 송선미는 2006년 <해변의 여인>을 시작으로 <북촌방향> <밤의 해변에서 혼자> <강변호텔> <도망친 여자>까지 홍상수 감독 영화에 5편이나 캐스팅된 배우이기도 하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 이정향 감독 심은하 이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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