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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국립현충원 첫 안장자는 6.25전쟁 당시 양구에서 순직한 고 이춘원 하사를 포함해 장병 100명이었다.
 대전국립현충원 첫 안장자는 6.25전쟁 당시 양구에서 순직한 고 이춘원 하사를 포함해 장병 100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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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전현충원(아래 대전현충원)은 1985년에 개장했다. 하지만 이에 앞서 첫 안장은 1982년 8월 27일 시작됐다. 이날 대전현충원에는 이춘원 육군하사 등 100명의 장병이 안장됐다.

그 중에서도 1호 안장자는 이춘원 하사다. 하지만 그의 신상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1953년 2월 18일 504고지에서 순직했다는 것이 묘비를 통해 알 수 있는 정보의 전부다.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단을 확인해 보니 같은 이름으로 5명이 있는데, 이춘원 일등중사의 전사일이 1953년 2월 18일로 동일하다. 7사단 소속으로 양구군에서 전사한 것으로 나온다.

6.25 전쟁 당시 계급체계로 보면 하사-이등중사-일등중사-이등상사-일등상사-특무상사 순이었는데, 일등중사는 현재의 계급으로 '하사'이므로 동일인이다. 1934년생으로 만 19세의 젊은 청년이었던 이 하사의 출생지는 경북 경주시 산내면 감산리다. 군번은 0350554. 그는 정전 협정을 5개월 앞두고 안타깝게 숨졌다. 교전중 전사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고로 숨졌는지는 모른다.

당시 전선은 이 하사가 숨진 504고지보다 훨씬 북쪽인 가칠봉이었다. 504고지는 1951년 6~7월 중공군 대공세에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다. 아무튼 현충원 묘비에는 '순직'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하사는 30년 만에 다른 99명의 장병과 함께 장병묘역에 묻혀 대전현충원 첫 안장자로 기록됐다.

국립대전현충원은 장병묘역 외에도 장군묘역, 독립유공자묘역, 국가원수묘역, 국가사회공헌자, 순직군인·경찰관·소방관, 의사상자, 독도의용수비대 묘역 등을 갖추고 있다. 묘역별 첫 안장자를 찾아 안장 순으로 정리해 보았다.

경찰 송진근, 독립유공 류장렬, 국가사회공헌 황산덕

경찰 묘역의 최초 안장자는 송진근(1985년 9월 24일 안장) 상경이다. 송진근 상경은 1985년 7월 23일 진해 국군통합병원에서 치료 중 숨졌다. 제주해양경찰청 소속인 송진근 당시 일경은 303함에서 해상치안 업무 수행 중 갑자기 의식불명에 빠졌고 끝내 회복되지 못했다. 묘비 앞에는 (사)대한민국해양경찰전우회충청지회 명의로 '해양주권 수호를 위한 고귀한 희생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 글이 붙어 있다.
 
경찰관묘역 1호 안장자는 1985년 순직한 고 송진근 상경이다. ⓒ 심규상
 경찰관묘역 1호 안장자는 1985년 순직한 고 송진근 상경이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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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묘역 1호 안장자는 류장렬(1878~1960, 안장일 1987년 4월 6일)이다. 그는 정미의병 당시인 1909년 전북 일대에서 수많은 의병을 이끌고 의병장으로 활동했다. 정미의병은 1907년 헤이그 밀사사건을 계기로 일제가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을 체결한 후 군대를 해산하면서 생긴 대규모 의병전쟁이었다.

류 지사는 1913년에 경북 풍기에서 일제 총독부 요인과 친일파 숙청을 목표로 광복단을 조직하는 등 일경과 친일파 처단, 군자금 모금 활동을 벌였다. 징역 1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또 다른 독립운동 활약이 알려져 징역형이 추가돼 반신불수의 몸으로 15년 만에 출옥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정부는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고,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1묘역 1호에 안장했다.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의 첫 안장자는 황산덕(1989년 10월 23일 안장, 1917~1989)이다. 그는 평안남도 양덕 출신으로 법학자, 불교학자, 언론인으로 활동했고 법무부장관과 문교부장관 등을 역임했다.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43년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와 사법과에 합격하여 경북도청에 근무했다.

고등문관시험은 조선총독부가 시행한 고등관 채용시험이다. 이 시험은 해방 후에도 행정고등고시, 외무고등고시, 입법고등고시, 사법고시로 이어지고 있다. 서울대 법대·고려대 등에서의 연구, 강의를 통한 그는 형법과 법철학 분야 권위자로 지금까지도 학계에서 회자하고 있다.

1962년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 역임하면서 헌법개정에 관하여 비판하는 사설을 게재하였다가 허위사실유포죄로 4개월간 구속된 바 있다. 소설 '자유부인'의 작가 정비석과 논쟁을 벌인 일화는 유명하다. 그의 약력에도 1960년 국내 최초의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1980년 대한불교진흥원이사장, 국민훈장동백장 등 여러 훈장을 받은 경력이 있다고 소개돼 있다.
 
독립유공자묘역엔 류장열 지사가, 국가사회공헌묘역엔 황산덕 전 문교부장관이 각각 1호로 안장되어 있다.
 독립유공자묘역엔 류장열 지사가, 국가사회공헌묘역엔 황산덕 전 문교부장관이 각각 1호로 안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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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허귀범, 순직공무원 최덕근, 장군묘역 장창국

소방관 묘역의 1호 안장자는 허귀범(1994년 12월 6일 안장)이다. 1994년 6월 1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3동 내쇼날플라스틱 서울공장에서 대형화재가 발생했다. 이 불로 700평 규모의 창고와 창고 안에 있던 플라스틱 제품을 태워 수십억 원의 재산피해를 냈다. 영등포소방서 허귀범 소방관은 마지막 화재 진압에 나섰다가 건물 천장에서 떨어진 철골 구조물에 머리를 다쳐 36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순직공무원 묘역 1호 안장자는 최덕근(1996년 10월 8일 안장)이다. 그는 같은 해 10월 1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영사로 근무하다 숙소인 아파트 계단에서 정체불명의 괴한에 피습당해 숨졌다. 한국 외교관이 현지에서 최초로 피살된 데다 독침에 의한 북한의 보복살인 의혹이 제기되면서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이후 러시아 당국이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았고, 한국 정부와 언론조차 미온적으로 나서면서 누구의 소행인지가 불명확한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다.

순직공무원 묘역에는 차선우 집배원(2011년 12월 19일 안장)이 집배원 신분으로 처음 안장됐다. 그는 104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던 2011년 7월 27일 경기도 용인시 포곡읍에서 동료 집배원과 우편물을 배달하던 중 배수로에 휩쓸려 29세의 나이로 순직했다. 그는 배수관으로 빨려 들어가면서도 들고 있던 등기우편물 8통을 동료 집배원에게 안간힘을 다해 건네주는 책임감을 발휘했다. 
 
소방공무원묘역엔 허귀범 소방교가, 순직공무원묘역엔 최덕근 전 블라디보스톡 영사가 각각 안장1호로 누워있다.
 소방공무원묘역엔 허귀범 소방교가, 순직공무원묘역엔 최덕근 전 블라디보스톡 영사가 각각 안장1호로 누워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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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묘역의 1호 안장자는 장창국 육군대장(1996년 12월 30일 안장, 1924~1996)이다. 그는 1950년 육군본부 작전 교육국장, 1951년 제5사단장 등으로 한국전쟁 당시 전장을 누볐다. 이후 육군사관학교 교장, 육군참모차장, 제1군, 제2군사령관, 합참의장,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브라질 대사를 거쳐 국회의원(1973년)을 역임했다.

그는 일본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병과는 육군선박병으로 철도와 해상수송을 담당했다. 창씨개명에 따른 장창국의 이름은 마쓰모토 도시하루(松本敏治)였다. 그는 일본 육사를 다녔지만, 도중 광복을 맞아 친일인명사전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국가원수 묘역 최규하 유일

국가원수 묘역엔 최규하 전 대통령(2006년 10월 26일 안장)이 유일하게 안장돼 있다. 최 전 대통령은 농림부 양정과장으로 공직을 시작하여 외무부 통상국장, 주일공사, 차관, 주말레이시아대사를 역임하고 장관,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1979년 10.26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했고 12월 6일 제10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하지만 1980년 8월 16일 사임했다.

그는 평생 정당에 가입한 일이 없이 직업 공무원을 하다 대통령이 된 헌정사상 최초의 국가원수로 기록돼 있다. 묘역에는 공직 재임 시기 함께 했던 비서관 일동이 세운 "40여 년 간 하루도 결근하지 않은 근면성과 책임감 청렴결백의 미덕은 국민의 표상이었다"는 추모비 내용이 눈길을 끈다. 
 
국가원수묘역에 유일하게 안장된 최규하 전 대통령의 묘소
 국가원수묘역에 유일하게 안장된 최규하 전 대통령의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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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상자 묘역의 첫 안장자는 채종민(2007년 4월 26일 안장) 의사자다. 의사상자는 구조행위를 하다가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은 사람을 말한다. 의사상자는 안장을 하지 않다가 2016년 1월 제정된 국립묘지 기본법에 '의사상자'가 대상에 포함돼 안장이 가능해졌다.

채종민(당시 36세) 의사자는 그해 7월 27일 진도군 임회면 소재 서망 해수욕장에서 물놀이 중 파도에 밀려 떠내려가는 초등학생을 구하고 사망했다. 제2호 안장자는 김영민(당시 31세)으로 2016년 8월 5일 청원군 미원면 옥화리 소재 천경대 하천 부근에서 물에 빠진 어린이를 구하고 또 다른 어린이 1명을 구하려다 함께 사망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미디어마당사회적협동조합 누리집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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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활동하는 시민미디어마당 협동조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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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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