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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오랜 줄다리기 끝에 상임위를 여야 11대 7로 나누고 법사위는 21대 국회 후반기부터 국민의힘에 넘기는 것으로 합의했다. 오랜만에 협치에 성공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과연 그럴까? 진정 여야 협치가 되고 정쟁은 멈춰질 것인가?

국회에서 법사위는 '상원'으로 칭해져 왔다. 법사위가 모든 법률안의 체계 ⸱ 자구 심사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법률안 체계 ⸱ 자구 심사 권한을 바탕으로 그간 법사위는 어떤 법안이든 스톱시킬 수 있으며, 아예 소관 상임위에서 의결한 법안 내용 자체를 수정하여 상임위 간 갈등이 빚어진 경우까지도 적지 않았다.

이번의 합의에서 여야는 법사위의 기능을 다른 법률과의 충돌 여부나 문구가 적정한지를 따지는 '체계⸱자구 심사'로 엄격하게 한정하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의 '체계⸱자구 심사' 규정은 국회법 제37조에 법사위 소관 사항으로서 지금도 "법률안⸱국회규칙안의 체계⸱형식과 자구의 심사에 관한 사항"이 규정된 것 외에 다른 상임위에서 통과된 법률안의 본질적 내용을 손댈 수 있다는 내용은 전혀 없다.

엄격하게 한정할 것이라고 했다지만, 지금처럼 다른 상임위 법률안에 대해 '체계·자구 심사'라고 억지를 부리며 얼마든지 몽니를 부릴 여지는 상존하고 있다.

우리 국회에서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 조항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제헌의회 국회법의 해당 조문은 단지 "제3독회를 마칠 때에 수정 결의의 조항과 자구의 정리를 법제사법위원회 또는 의장에게 부탁할 수 있다"라고 규정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국회다운 국회로 가는 정상화의 길 가려면

지금처럼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 기능이 막강해진 시점은 바로 1973년 유신정권에서 이뤄진 국회법 개정 때였다. 유신정권은 1973년 국회법을 개정하여 그간 본회의에서 시행하도록 규정되어왔던 법안 축조심사 기능을 소관 상임위에 이전시킨 것이다.

의회의 상임위원회에서 소관 위원회의 결정을 다른 위원회가 존중하는 이른바 '위원회 소관주의(Jurisdictionalism)는 중요한 의회 규범 중 하나이다. 우리 국회처럼 법사위가 여타 상임위에서 이미 심사, 의결한 법안에 대한 체계·자구 심사를 함으로써 위원회 위에 옥상옥으로 군림하는 것은 위원회의 평등성 원리 그리고 국회의원의 평등 대표성 원리에 대한 심각한 침해다.

분명한 사실은 세계 어느 의회에도 우리 국회 법사위의 이러한 '상원'의 권한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미국 의회에서는 각 상임위원회 내에 '축조심사회의(Mark up)'가 구성되어 여기에서 수정안 작업과 체계·자구 심사의 기능을 수행한다. 즉, 체계·자구 심사는 세계 모든 나라 의회에서 너무도 당연하게 각 상임위원회에서 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스스로 수행하고 있다.

지금 '체계·자구 심사 권한'을 보유한 법사위를 야당에 넘겨주는 것은 쉽게 말하면, 야당에게 합법적으로 몽니를 부리고 끝없는 정쟁을 계속하라고 용인하는 것이다. 그것은 협치의 길이 아니라 끝없는 정쟁의 길이며 패망의 길이다. 국민이 만들어준 180석 여당의 의미는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천신만고 대선에서 승리한들, 법사위 몽니 부리는 야당에 가로막혀 국정이 마비될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야당은 법사위 하나만으로 다수당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비정상적인 그리고 박정희 군사독재의 적폐인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 권한을 폐기하라. 지금과 같이 하나라도 기회가 있을 때 차근차근 의회의 기본을 갖춰나가야 한다.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 조항 폐지는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렇게 할 때 우리 국회도 비로소 국회다운 국회로 가는 정상화의 길을 걸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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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우리가 몰랐던 중국 이야기>,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그리고 오늘의 심각한 기후위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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