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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친구에게서 카톡이 하나 왔다. 뉴스를 보다가 문득 궁금증이 생겼단다. 궁금증이 뭐냐고 물어보니 친구가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경제가 불황일 때는 총수요가 줄어들어서 큰 기업이나 작은 기업이나 똑같이 어렵잖아. 그러면 큰 기업들이 개별적으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고용하고 있으니까 규모가 작은 기업보다는 큰 기업에게 경제적 지원을 집중하는 게 맞는 거 아냐?"

자기 전 휴대전화 수면모드는 '국룰'인데. 후회가 물밀 듯이 밀려왔지만 이미 카톡의 1은 사라졌으니 어쩔 수 없다. '뉴스 좀 그만보자'라고 썼다가, 그래도 경제학에 관심이라도 가져주는 친구에게 그럴 순 없지.

"음, 근데 불황에는 작은 기업들이 더 취약해서 작은 기업들이 망하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지."

친구는 작은 기업이 특별히 더 불황에 취약하다는 건 너무 감성적으로 들린다고 했다. 그러더니 내가 경제학 하는 사람답지 않다고 덧붙였다. '아마 경제학 하는 사람들은 피도 눈물도 없이 이성적이기만한 사람들'이라는 세간의 인식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물론 경제학 하는 사람들이 이성적이긴 하지만 이 두 가지가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이번 기회에 제대로 보여줘야지. 숨을 한 번 고른 후 답장을 이어나갔다.

"경제학에서는 기업이 생산할 때 생산비용이 발생한다고 해. 생산비용은 크게 고정비용(생산을 하지 않더라도 지출되는 비용)과 가변비용(생산할 때마다 발생하는 비용)으로 나뉘지. 불황이 발생하면 기업들의 생산량은 일반적으로 줄게 되는데, 이때 기업은 생산으로 인한 순손실이 나더라도 무작정 생산을 중단할 수 없어. 왜? 생산을 중단하더라도, 고정비용이 계속 나가고 있거든. 결국, 기업은 생산으로 인한 순손실이 고정비용보다도 크게 날 때야 비로소 생산을 중단하는 거야.

그럼 규모가 큰 기업과 규모가 작은 기업 중 보통 어디에서 더 큰 고정비용이 발생할까? 답은 간단해. 일반적으로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생산 시 노동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고, 큰 기업들보다 훨씬 저렴한 기계나 공장설비를 통해 생산을 진행한다고 생각해도 큰 무리가 없겠지? 그러면 노동의 비용 즉, 임금은 생산에 따라 변하는 가변비용이니, 결국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더 적은 고정비용이 발생해.

지금까지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기업이 생산을 중단하는 건 고정비용보다 더 큰 손해가 나는 경우인데,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고정비용 자체가 작으니 결국 작은 외부의 수요충격에도 고정비용을 뛰어넘는 손해가 더 쉽게 발생할 수 있어. 그러니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불황에 의한 외부의 수요충격에 더 취약한 거야.

덧붙여서, 규모가 작은 기업이 줄줄이 생산을 중단하면, 그곳에서 근무하는 많은 근로자들의 임금이 낮아져 사회 전체의 총수요가 더 많이 줄어들어서, 종국에는 불황이 더 심각해지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어."


끝으로 친구에게 '우리나라 전체 고용자의 약 80.7%가 200인 미만의 사업장에서 근무하니 경제불황 시 큰 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반드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건 아닐 수 있다'고 이야기해줬다. 이쯤 되면 끝났겠지. 눈을 감으려는 찰나 휴대전화에서 진동이 울렸다.

"오케이. 그래도 큰 기업이 잘되어야 작은 기업들도 같이 상생할 수 있는 것이잖아."

이거, 이 밤의 끝을 잡고 끝까지 늘어질 기세인데.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휴대전화를 수면모드로 설정하고 눈을 감았다. 어차피 경제학자들이 수십 년동안 해왔던 이야기인데 하루 정도 늦게 해준다고 별일이 생기진 않을테니까.

덧붙이는 글 | 프랑스 파리경제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진짜 경제학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작은 경제학살롱을 열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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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는 세무학과 경제학을 공부했습니다. 신입생 첫 수업 과제로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읽고 감명 받은 바람에, 회계사, 세무사, 공무원이 되어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다른 동기생들과 다르게 프랑스로 떠나, 바게뜨와 크로와상만 주구장창 먹고 있습니다. 그래도 위안인 점은 프랑스 빵이 정말 맛있다는 점과 토마 피케티를 매주 본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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