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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 폭염 특보가 발효됐다. 안전 안내 문자는 폭염 특보가 발효됐다며 한낮에 외출을 삼가라는 내용과 함께 계속 깜빡거린다. 장마가 끝나면서 찾아온 폭염이 일주일째 계속되고 있다.

22일은 1년 중 가장 덥다는 대서라서인지 유난히 뜨거운 햇볕을 자랑했다. 대서는 24절기 중 열두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로 '염소 뿔도 녹는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가장 더위가 심한 시기다.

한 할아버지가 손수레를 끌며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아스팔트 옆길로 차를 피하며 아슬아슬하게 지나가고 있다. 손수레에는 주워온 박스와 폐지가 수북이 쌓여있었고, 할아버지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돼 있었다.

골목길을 건넌 할아버지는 잠시 그늘에 앉아 물을 한 모금 마시면서 목에 맨 수건으로 땀을 훔쳤다. 쉬는 것은 아주 잠시였다. 할아버지는 쭈그려 앉느라 접었던 다리를 펴고 다시 가던 길을 재촉했다. 아스팔트 열기에 손잡이가 달궈져 뜨거워서인지, 할아버지는 손수레의 손잡이를 헝겊으로 칭칭 동여맸다.

무더위에도 밖으로, 밖으로 나오는 어르신들
 
뜨거운 햇볕을 피해 쉬고 있는 어르신 한참을 일을 하다 너무 뜨거워서 잠시 쉬고 있는 모습입니다. 매일 이렇게 밭에 나와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집에 있는 것보다 편하다는 어르신은 한낮의 열기를 피해 손 선풍기를 틀어 바람을 쐬고 있습니다.
▲ 뜨거운 햇볕을 피해 쉬고 있는 어르신 한참을 일을 하다 너무 뜨거워서 잠시 쉬고 있는 모습입니다. 매일 이렇게 밭에 나와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집에 있는 것보다 편하다는 어르신은 한낮의 열기를 피해 손 선풍기를 틀어 바람을 쐬고 있습니다.
ⓒ 김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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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목적지 인근엔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조금 멀리 차를 놓고 걸어가던 중에 천변 아래 고랑에서 우산에 기둥을 세워 파라솔 삼아 앉아계시던 또 다른 할아버지를 보게 되었다. 오후 1시, 푹푹 찌는 더위와 따가운 햇볕을 피해 우산 속에서 손 선풍기를 쐬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목에는 손 선풍기가 매달려 있었다. 개울가 도랑에 앉아계신 모습을 보곤 지나가다 다시 돌아와 어르신께 말을 걸었다.

"해가 뜨거우니까 가만히 앉아서 쉬는 중이지. 한두 시간 선풍기 쐬면 시원혀. 집에 있으면 갑갑하고 에어컨만 돌아가고 전기요금도 많이 나와. 11시에 점심 일찍 먹고 나와서 일도 하고 이렇게 밖에 나와 있는 게 편하고 좋아."

"쉬실 때는 댁에서 편하게 계셔야지요. 여긴 너무 뜨거워요."
"집에 가서 현관문을 열면 뜨거운 기운이 '훅' 하고 나를 덮쳐. 거기까지 가는 것도 힘들어."
 

밭농사를 짓고 있는 어르신은 한낮의 열기를 피해 새벽에 일어나 밭에 나가 일을 하고 들어와 10시가 넘어서야 겨우 아침 겸 점심 식사를 드신다고 했다. 더위로 입맛이 없어 돌을 씹는 것 같지만 살려고 먹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한 숟가락 떠넘기고 자리에 누워 쉬어야 하지만 뜨거운 기운이 집 안에까지 들어와 누워 있을 수가 없다고 했다. 예전에는 경로당이나 쉼터에 가서 시원하게 에어컨 바람도 쐬고 점심도 먹었는데 이제는 코로나 때문에 그것도 마음대로 못하니 그냥 집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아쉬워 했다. 

최근 코로나 4차 대유행과 함께 무더위 쉼터 등도 감염 위험으로 인해 폐쇄되거나 축소 운영되면서 노인들이 더위를 식힐 곳도 마땅치 않아졌다. 

아버지의 짧아진 머리, 그 이유
 
 집에 들어가면 더운 열기가 가득해서 아침 식사 후에는 공원에 나와 더위를 피한다는 어르신들은 저녁이 되어서야 하나 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집에 들어가면 더운 열기가 가득해서 아침 식사 후에는 공원에 나와 더위를 피한다는 어르신들은 저녁이 되어서야 하나 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 김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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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며칠 전에 찾아가 만난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아버지를 보고, 아니 아버지의 머리카락을 보고 깜짝 놀랐다. 순간 나는 왜 그렇게 마음이 아프고 아려오던지 눈물을 참으려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한여름에도 정장을 고수하며 상의를 입고 다니시던 아버지였다. 머리는 항상 정갈하게 이발소에서 정리를 하셨고, 까맣게 염색을 하셨다. 또 패션의 완성이 구두인 것처럼 항상 정장구두를 신으셨다. 혼자 생활한 지 15년이 넘었지만, 아버지는 그 스타일을 고수해 오셨다. 

"어, 머리가 왜 이래요?"
"하도 더워서 잘랐지!"
"......"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에 이발소가 보여서 들어가 잘라달라고 했어.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다들 나처럼 잘라달라고 앉더라. 지금 동네 노인들 머리가 나랑 똑같어."


아버지의 머리가 상고머리로 변해있었다. 염색하지 않은 상태의 흰색 짧은 머리카락의 길이는 두피에서부터 채 2cm가 되지 않는 듯했다.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길에 만났던 동네 할아버지들 머리모양이 아버지와 같았던 이유를 이제 알게 됐다. 한여름의 삼복더위로 인해 수십 년간 이어져 오던 아버지의 멋 부림도 빛이 바랬다. 더위는 아버지의 머리카락과 함께 멋들어지고 정정했던 모습까지 가져갔다.

"에어컨은 전기요금이 너무 많이 나와"
 
집 안의 열기를 피해 정자에 나와 쉬고 있는 노인들 폭염이 계속되고 있어 집 안의 열기가 너무 뜨거워 이른 아침 식사를 마치고 공원 정자에 나와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입니다. 매일 아침부터 오후까지의 일상의 노인들
▲ 집 안의 열기를 피해 정자에 나와 쉬고 있는 노인들 폭염이 계속되고 있어 집 안의 열기가 너무 뜨거워 이른 아침 식사를 마치고 공원 정자에 나와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입니다. 매일 아침부터 오후까지의 일상의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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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있어 찾아간 복지관 앞 정자에선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른 아침식사를 마치고는 집 안의 열기를 피해 정자에 나온다고 했다. 한낮의 기온이 높아 더위에 지친 어르신들은 집 안에 뜨거운 열기가 가득해서 생활하는 것이 힘들다며 밖으로 나왔다고 했다. 공원 한 곳에 자리를 잡고 가만히 앉아서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을 쐬며 이웃들과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뒤쪽으로 돌아가 보니 그늘진 곳에 있는 긴 의자에도 어르신들이 앉아 있었다. 한 어르신은 우편물을 보며 설명을 해 주다가 나를 보고 말을 걸었다. 다가가서 우편물 내용에 대해 설명해 드린 후 어르신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어르신은 집이 좁으니까 덥고 갑갑해서 있을 수가 없어 매일 이렇게 밖에 나온다고 했다. 에어컨은 있지만 전기요금이 많이 나오니까 무서워서 하루에 잠깐만 틀게 되는데, 낮에는 계속 틀어놓을 수 없으니 더위를 피해 밖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멀리 앉아있던 여자 어르신도 어느새 다가와 하소연을 했다.
 
"수급비 50만 원으로 생활하는데 빠듯해. 에어컨은 전기요금이 너무 많이 나와. 여기 사는 사람들은 다 장애인 아니면 혼자 사는 사람들이여. (집이) 10평도 안 되는데 답답하고 덥지. 그걸로 먹고살아야 하고 병원도 다녀야는데 전기요금 많이 내면 못 살아, 어떻게 살아."
"아침 일찍 해서 먹고 여기 나와서 복지관에서 주는 무료급식 도시락도 먹고 있으면 되지."


여자 어르신은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 더위를 식혀주기엔 역부족이었는지 연신 부채를 흔들어댔다. 혼자 살게 된 지는 벌써 20년도 넘었다며 두 아들을 키우느라 고생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나란히 앉아 있던 어르신들은 돌아가며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해 주었다.

오후 5시가 다가오자 어르신들은 집에 가서 저녁을 준비해서 먹어야 한다며 서로의 물건이 담긴 검정색, 흰색 봉지를 챙겨준 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폭염은 한여름 상온에 늘어진 엿가락처럼 사람의 몸과 마음도 한없이 늘어지게 만들었다. 삶의 의욕도, 입맛도, 건강도 모두 앗아가려 했다. 여름이 지나면서 노인들의 건강 상태는 많이 떨어지고 기력이 쇠해지는 경우를 많이 봤다. 어르신들이 올여름 폭염을 잘 견뎌내서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남은 노후생활을 즐길 수 있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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