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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대사 관련 기사는 외교부의 보도자료를 비롯하여 '초치'라고 쓴 매체가 훨씬 많았다.
 일본대사 관련 기사는 외교부의 보도자료를 비롯하여 "초치"라고 쓴 매체가 훨씬 많았다.
ⓒ KBS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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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오후, 텔레비전 뉴스 화면에 뜬 '일본대사 초치'라는 자막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한 사람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기사는 우리 외교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부적절한 발언을 한 소마 히로히사 총괄공사 문제와 관련해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 강하게 항의했다는 내용이었다. 

'초치'와 '부르다' 

물론 모든 매체가 '초치'를 쓴 건 아니다. 낯선 '초치'라는 용어 대신 <한겨레>는 우리말로 '불러들여'로 썼고, 공중파 중에선 <SBS>가 '불러'로 썼다. <KBS>와 <MBC>를 비롯하여 <YTN>, <연합TV뉴스> 등과 대부분의 일간지에서는 '초치'를 썼다. 

'초치(招致)하다'는 "불러서 안으로 들이다"라는 뜻의 동사다. 이 낱말은 잘 쓰지 않는 한자어일 뿐, 무슨 전문 외교 용어는 아니다. '초(招)'는 '부를 초' 자고, '치(致)'도 보통 '보낼 치'로 쓰지만, '부를 치' 자로도 읽는다. '안으로 들이다'를 굳이 넣지 않고 '불러'로 써도 충분하다는 얘기다.

'초치'는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알기 쉬운 행정용어>(2018)의 1천 개 낱말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이 낱말은 외교부에서 낸 위 기사 보도자료에도 쓰였다. 대부분 매체에서 '초치'로 간 것은 이 보도자료 때문일 수도 있겠다. 
 
일본 총괄공사의 망언으로 빚어진 외교부의 항의를 다룬 방송과 신문의 기사 제목들. 초치와  '부르다'가 섞여 있다.
 일본 총괄공사의 망언으로 빚어진 외교부의 항의를 다룬 방송과 신문의 기사 제목들. 초치와 "부르다"가 섞여 있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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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용어의 순화와 표준화는 국어기본법에서 공공기관들이 공문서를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써야 하며, 어문 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전문용어도 쉽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표준화하고 체계화하여 보급해야 한다는 책무도 밝히고 있다. 

위 책에서도 알기 쉬운 행정용어를 쓰면 조직 내외부의 소통은 물론, 정부와 국민 간의 소통도 원활해져 정부의 정책 목표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으리라고 밝히고 있다. 행정용어를 알기 쉽게 쓰는 것은 무엇보다도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는 친절한 '행정서비스'라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아래는 <알기 쉬운 행정용어>에 나오는 낱말 중에서 일부를 고른 것이다. 한국어 낱말 가운데 상당수가 한자어이긴 하지만, 그중에는 실제로 거의 쓰이지 않는 한자어가 또 태반인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한자어가 행정용어로 지금까지 쓰였거나 아직도 쓰이고 있으니 놀랍다.   

간선(幹線)과 곤포(梱包)

줄기 '간(幹)' 자를 쓰는 '간선'은 일본어투 용어로 '신칸센(新幹線)'의 그 간선으로 "도로, 수로, 전신, 철도 따위에서 줄기가 되는 주요한 선"이라는 뜻이다. 부끄럽게도 나 역시 얼마 전까지 이를 무심히 써 왔으니 보수적인 관료 사회에서 이걸 버리기는 쉽지 않았겠다. '간선'은 '본선'으로 바꾸었으나 요즘은 '중심'으로 쓰는 경우도 많다. 

곤포(梱包)는 "거적이나 새끼 따위로 짐을 꾸려 포장함. 또는 그 짐"을 뜻한다. 추수 뒤에 들판에 압축해 포장해 놓은 하얀 볏짚 뭉치를 '곤포 사일리지'라고 하는데 이를 '압축포장 사일리지'로 쓰라는 거다. 그러나 여전히 곤포 사일러지가 우세하게 쓰이는 듯하다. 

'나포(拿捕)'와 '내사(內査)', '노역(勞役)' 같은 낱말은 치안·행형(行刑)과 관련된 용어로 얼마간 정착한 거로 보인다. '나포'는 "죄인을 붙잡다"는 뜻보다는 "사람이나 배, 비행기 등을 사로잡다"의 뜻으로 주로 쓰이고, '내사'도 공식 수사 이전에 예비적으로 시행하는 조사의 뜻으로 흔히 쓰인다. '노역'은 "몹시 괴롭고 힘들게 일함. 또는 그런 노동"의 뜻이지만, 실제로는 벌금을 내지 못하는 범죄자가 교도소에서 벌금 대신하는 노동의 뜻으로 쓰인다. 

도과(到過) 불출(拂出), 기타 한자어들
 
행정용어의 순화어, 표준화 용어
 행정용어의 순화어, 표준화 용어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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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과'는 국어사전에도 오르지 않은 낱말이다. '이를 도', '지날 과' 자를 써서 '어떤 기간이 지나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납부 기한·제소 기간·심판 청구 기간의 도과 등 주로 법률과 관련하여 쓰이는데, 법령에서는 '경과'로 바뀐 듯하다. 

불출은 내준다는 뜻인데, '떨 불(拂)'에다 '날 출(出)' 자를 썼다. 억지로 만든 말 티가 난다. 군 복무 시절에 비상이 걸렸는데, 방송에서 '대검을 불출한다'고 하니, 담당자가 '불출(不出)'한다는 뜻으로 알고 전달하여 소동을 벌인 적이 있는데, 결국 글자의 뜻과 말뜻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상신(上申)이나 수순(手順)은 일본식 한자어다. 상신은 아직도 법령이나 규칙에서 쓰이고 있는데, 제시한 순화어로 대체되지 못한 듯하다. 수순은 '순서·절차·차례' 등으로 바뀌었다. 

우수 관로(雨水管路) 같은 말은 한자로 쓰기 위해 만든 말이다. 최근 내가 사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우수관로 정비를 한다는 안내를 하고 있었다. 관련 업계에 일하는 이들에게는 이런 말이 굳어져 있는 것이다. 

일할 계산(日割計算)은 날짜에 따라 계산한다, 날수를 계산한다는 뜻인데, 뜻밖에 회계 관련 용어로 빈번히 쓰인다. 적의 조치도 억지로 한자로 바꾼 형식의 낱말이다.

한자어 대신 우리말 쓰기, '사용자의 몫'

'절사(絶捨)'는 '끊을 절, 버릴 사' 자를 쓴다. 주로 '원 단위 절사', '소수점 이하 절사' 등과 같이 쓰이는데, '버림'으로도 충분한 말이다. 

'제척(除斥)'은 순화어를 만들어 놓았으나, 법률 용어로 일정하게 쓰이는 말이다. "특정 사건에 대하여 법률에서 정한 특수한 관계가 있을 때에 법률상 그 사건에 관한 직무 집행을 행할 수 없게 함"의 뜻으로 살아남았으나, 법률적 의미가 아닌 데에선 마땅히 순화어를 쓰는 게 바람직하다.

'흠결(欠缺)'은 '흠'이나 '모자람'으로 써도 충분하다. 2음절로 쓰면 안정감이 있으니 '하품 흠' 자를 써서 억지로 한자어로 만든 말이기 때문이다.

생소한 한자어를 한글로 풀어쓰는 것은 처음이 어색할 뿐, 이내 익숙해진다. 무엇보다도 의사소통이 훨씬 원활해짐으로써 내용을 공유하는데 도움이 된다. 한자어를 대체하는 우리말 용어를 살리는 건 전적으로 사용자들의 몫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 풍진 세상에’(https://qq9447.tistory.com/)에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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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 기사 포함, 모두 1천여 편의 글을 썼다. 2019년 5월, 블로그 '이 풍진 세상에'에 연재한 '친일문학 이야기'를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으로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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