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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다가오면서 올해는 어디를 다녀올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강릉을 좋아하고, 제가 사는 용인에서 강릉까지는 가까운 편이어서 강릉을 자주 찾았었는데요, 코로나 확진자의 증가로 올해 휴가는 포기했습니다. 다만, 휴가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고 다른 방식으로 즐길 예정입니다.

휴가를 '수학 공식'처럼 생각했었습니다. 시쳇말로 '성지'라고 불리는 유명한 곳을 다녀오는 것을 휴가라고 생각했었죠. 그러다 보니 바쁘게 움직여야 하고, 특별한 피로를 쌓으러 가는 것이 휴가가 아닐까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공급은 그대로인데 수요가 폭증할 경우' 상품의 가격이 올라가는 것은 우리가 귀가 따갑게 들은 경제학의 기본 논리입니다.

바가지요금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고요. 이렇듯 휴가가 휴가가 아니었던 까닭, 급격한 산업화가 만든 부작용 중 하나였다고 생각하는데요. 바쁘게 살아온 탄력으로 휴가도 기간을 정해서 바삐 다녀와야 한다고, '휴가도 일의 연속'처럼 다녀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해 봅니다.

휴가를 위해 특별한 장소가 필요한 것일까요. 집을 떠나서 낯선 숙소에 머무르는 것도 이색적이기는 하지만, 휴가지를 다녀오면서 '아! 그래도 집이 최고야'라는 말을 하게 되죠. '집만큼 편안하고 안전한 곳은 없다'라는 방증일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휴가의 미덕은 낯섦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집에 머무르면서도 내가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새로움을 느껴보는 것도 휴가의 한 방법이 되겠죠.

휴가지에 들고 가지 않는 것의 리스트를 꾸려보면, 그 가운데 '책'이 있습니다. '책은 집에서도 읽을 수 있는데 굳이 무겁게 가지고 가'라는 생각을 하죠. 저의 경우는 한 권이라도 꼭 들고 갑니다. 문제는 가지고 가는 것과 읽는 것은 다른 일이라서요, 못 읽고 가져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 딸과 아내를 위한 봉사의 시간을 가지다 보면, 조용히 책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없습니다.

이번 휴가는 책 읽기에 가장 적합한 시간이 아닐까 합니다. 휴가 비용으로 집에서 맛있는 음식 먹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 쬐며, 책 읽어보시는 것 어떠할까요.

한정원 작가의 산문집 <시와 산책>(시간의 흐름)
   
한정원, 『시와 산책』, 시간의흐름, 2020년
▲ 시와 산책 한정원, 『시와 산책』, 시간의흐름, 2020년
ⓒ 시간의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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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한정원 작가의 <시와 산책>(시간의 흐름)을 추천합니다. 산문을 좋아하는데, 읽어보지 않았다면, 꼭 읽어보세요. 특히 겨울 또는 겨울을 은유하는 얘기가 많아 7·8월 무더위에 적당한 산문집일 수 있습니다.

첫 단락에서 작가가 왜 눈을 좋아하는지 솔직한 자신의 얘기를 풀어내기 시작합니다, 작가의 얘기는 페르난두 페소아의 시로 연결되고, 다시 눈과 같은 물성을 가진 눈물의 의미로 확장이 됩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죠.

그의 글 속엔 삶이 있고 시가 있고 반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강요하는 반성이 아닙니다. 삶을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안내하는 '차분한 반성'이죠. 이 책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세사르 바예호의 시 '여름'을 소개한 문장입니다.

덕분에 세사르 바예호를 알게 되었고, 바예호의 시집도 사서 읽었죠. '온 마음을 다해 오느라고, 늙었구나'(<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다산책방). 이 문장이 왜 이리 가슴을 찌르는지 모르겠어요. 청량한 계곡물에 푹 빠지듯, 작가의 문장은 우리를 시원하게 세탁해 줍니다.

오사다 히로시 시인의 시집 <심호흡의 필요>(시와서)    
 
오사다 히로시, 박성민 옮김, 『심호흡의 필요』, 시와서, 2020년
▲ 심호흡의 필요 오사다 히로시, 박성민 옮김, 『심호흡의 필요』, 시와서, 2020년
ⓒ 시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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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다 히로시 시인의 <심호흡의 필요>(시와서)도 휴식에 적당한 시집입니다. 시집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시집이기보다 산문집에 가깝습니다. 오사다 히로시(1939~2015)는 시인이자 번역가, 아동문학가, 수필가, 평론가입니다.

일본에서는 유명한 작가이지만, 우리에게는 덜 알려졌습니다. 출판사 '시와서'에서 그의 시집 두 권을 번역해서 출간한 것을 알았고, 우연한 기회로 이 시집을 읽게 되었습니다.

<심호흡의 필요>는 오사다 히로시 본인의 얘기입니다. '회상의 시집'이라고 얘기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작가가 살아온 시절을 회상하면서 차분히 적어간 기록. 이 시집을 읽으며 과거를 떠올리고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면서 심호흡을 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 시집을 다시 읽으며 '휴가는 일 년 절반쯤에서 마주하는 심호흡'이 아닐까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휴가, 심호흡의 계절

이 두 권의 책을 읽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호흡이 바뀌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메트로놈을 느리게 켜 놓고 책을 읽는 것처럼 호흡이 책의 문장에 맞춰 일정해집니다.

포르테의 호흡이 모데라토로 다시 안단테와 아다지오로 바뀌죠. 무엇인가에 쫓겼던 마음을 책의 단어와 행간 사이에 놓아두고 나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경전처럼 잊지 않고 찾는 책입니다.

'인생'이라는 단어를 어떤 사물이나 현상 앞에 붙여 말하는 것이 유행입니다. 그만큼 나에게 중요하다는 의미이겠지요. '인생 책'이라는 단어도 요즘 자주 듣게 되는데요, 오늘 소개한 두 권의 책, 여러분 '인생 책'의 후보에 올려놔 보시겠어요.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시와 산책

한정원 (지은이), 시간의흐름(2020)


심호흡의 필요

오사다 히로시 (지은이), 박성민 (옮긴이), 시와서(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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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9월 8일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그 힘으로 2009년 시인시각(시)과 2019년 불교문예(문학평론)으로 등단했습니다. 평일 새벽 6시 <클럽하우스>, <카카오 음>에서 시 읽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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