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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출마를 선언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0일 오후 대구 중구 서문시장을 방문하며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0일 오후 대구 중구 서문시장을 방문하며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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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소위 '주 120시간 노동' 발언 후폭풍이 계속 커지고 있다. 지난 19일 <매일경제> 인터뷰에서 윤 총장이 현 정부의 경제 정책들을 비판하기 위해 '작은 정부론'을 내세우며 했던 말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는 모양새다.

이에 대해 정치권, 특히 여권의 반응이 뜨거웠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대선 캠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우원식 의원은 20일 페이스북에 "이제 대권가도에 올랐으니 힘자랑은 그만하고 재벌들 저승사자가 아니라 보디가드로 전업하겠다는 공개 선언이기도 하다"고 비판했다.

이날 이낙연 전 대표도 페이스북을 통해 "일주일 내내 잠도 없이 5일을 꼬박 일해야 120시간이 됩니다. 아침 7시부터 일만 하다가, 밤 12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7일 내내 계속한다 해도 119시간"이라며 꼬집었고,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이분이 칼잡이 솜씨로 부패 잡는 게 아니라, 이제는 사람 잡는 대통령이 되시려는 것 같다"고 일갈했다.

인터넷에서도 관련된 비판이 봇물을 이뤘다. 네티즌들은 나치 아우슈비츠 수용소 총 98시간(하루 14시간 노동, 주7일), 북한 요덕 정치범 수용소 총 105시간(하루 15시간 노동, 주 7일), 일본 아소탄광 조선인 강제징용 총 119시간(하루 17시간 노동, 주 7일) 등을 거론하며 어처구니없어 했으며, 주 5일 24시간을 꼬박 근무한 뒤 이틀을 기절해야 하냐고 반문했다.

이런 반응들에 대해 윤석열 전 총장 측은 인터뷰가 오독되고 있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현장에서 들은 제도의 맹점과 그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려 했을 뿐"인데, 정치인들이 "이런 발언 취지와 맥락을 무시하고 특정 단어만 부각해 오해를 증폭시키고 있는 말꼬리 잡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생각

개인적으로 윤석열 후보의 주 120시간 노동 발언은 단순한 해프닝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그가 산수를 못 한다고 해도 일주일이 168시간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으며, 검사 시절 야근을 밥 먹듯이 했어도 법적으로 정해진 하루 노동 시간이 8시간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발언을 최대한 선의로 해석한다면, 그가 현 정부의 노동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과장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120시간 발언이 아니다. 그보다 먼저 주 52시간 노동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그의 생각부터 근본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과연 현재 근로기준법으로 정하고 있는 노동시간인 주당 52시간이 부족할까?

우리 사회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세 번째로 노동시간이 길고 세계 평균보다 연간 300시간 넘게 일을 더 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무려 1930년에 주당 노동시간을 48시간으로 규정했고, 대부분의 국가가 40시간을 주당 법정노동시간으로 정하고 있다. 심지어 프랑스는 주당 35시간이며 이를 늘리겠다고 하자 시민들이 반대 시위를 한 적도 있다.

게다가 현재 우리의 근로기준법은 말로만 주당 52시간이지 많은 예외 조항을 가지고 있다. 2018년에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야당과 보수언론들, 경영계 일부가 극렬하게 반대한 결과 탄력근로제와 선택근로제, 특별연장근로제 등으로 초과 노동을 일부 허용하고 있다. 아직도 근로기준법 밖에 놓여있는 노동자들이 많다는 의미다. 최근 들어 과로사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택배 노동자나 플랫폼 노동자가 대표적 예이다.

이런 현실에서 주 52시간 노동도 모자라 주간 120시간 노동을 운운한 대선 후보라니. 아무리 그것이 비유적 표현이라 한들 윤석열 후보의 자질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는 아직도 우리 사회를 낮은 인건비를 갈아 넣어 경제를 발전시키는 60~70년대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나는 왜 직장을 옮겼나
 
돈과 시간은 반비례한다.
 돈과 시간은 반비례한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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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물류 회사에서 일하던 나는 아침 7시쯤 나가 밤 8시가 되어야 집으로 돌아왔다. 일주일에 3~4일은 영업 혹은 회식 때문에 술을 마시고 더 늦게 들어왔으며, 월말에 1주일 정도는 마감 때문에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이런 나의 노동시간은 아이를 갓 낳고 집에 있던 아내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내가 회사에서 노동하는 만큼 아내는 집안에서 홀로 가사노동을 책임졌으며, 주말에야 아빠 얼굴을 볼 수 있는 아이들은 또 그들대로 힘들어했다.

당시 나와 같이 일하던 기사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나는 그것을 계기로 사회적경제 분야로의 이직을 준비했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을 통해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기존 연봉의 절반을 넘게 포기해야 했는데, 아내는 나의 결정에 동의하는 대신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저녁 있는 삶을 살 수 있어?"
  
물론 지금도 나는 확실하게 저녁 있는 삶을 누린다고 확신할 수 없다. 여전히 일 때문에 늦게 들어가는 일이 잦다. 그러나 어쨌든 이직 전보다 시간을 벌게 되었고 그만큼 나의 삶이 180도 달라졌다. 비록 돈벌이는 예전보다 못하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문화예술 협동조합을 이끄는 아내를 적극적으로 도와주기도 한다.

결국 그것은 돈 대신 시간을 선택한 결과였다. 월급쟁이에게 있어서 소득은 노동시간과 비례할 수밖에 없지만 삶을 영위해 가는 데 있어서 소득만이 중요한 건 아니다. 일정 부분 소득 대신 시간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 속에서 다른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이웃과 지역을 만날 수도 있고, 나의 또 다른 재능을 발견하여 노후를 다르게 그릴 수도 있다.

주당 노동시간 52시간을 준수하는 것은 바로 이런 선택의 여지를 늘려주는 일이다. 평균 수명은 늘었지만 평생직장의 개념은 이미 사라진 시대. 소위 '워라벨'을 찾고 인생이모작, 삼모작을 고민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시간이 필요하며 노동의 질을 높여야 한다.

더 이상 상사 눈치 때문에 늦게 퇴근하고, 비용 때문에 사람을 뽑지 않아 야근을 해야 하는 회사 분위기는 근절되어야 한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은 계속해서 떨어져 가고 있는 시대의 비극을 막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주 52시간 노동시간이라는 기본부터 지켜야만 한다.

태그:#윤석열, #노동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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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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