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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를 문명 간 충돌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우리가 읽는 많은 세계사와 한국사 책은 대부분 전쟁이나 정치적 격변과 같은 충돌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역사 발전의 많은 부분은 문명 간 충돌이 아니라 교류와 대화의 산물이었다. 커피의 탄생 역사가 그것을 보여준다.

커피는 서양의 음료, 차는 동양의 음료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두 음료 모두 동양 문화의 산물이다. 차는 중국에서 그리고 커피는 아랍에서 탄생한 후 유럽 세계로 건너가 대중화되었다. 유럽인들이 즐겨 마시는 포도주와 맥주도 아랍 문명의 산물이지만 유럽인의 음료가 되면서 성장하였다.

차·포도주·맥주는 모두 인류가 낳은 대단한 발명들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커피는 어떤 문명이 탄생시킨 음료일까?

15세기 후반 예멘을 포함한 아랍 전역에 전파된 신비주의적 이슬람 분파인 수피(Sufi) 교도들이 커피를 처음으로 마시기 시작했다는 것은 정설이고 역사적 사실에 가깝다. 커피 분야의 교과서 격인 윌리엄 우커스의 <올 어바웃 커피>(All About Coffee, 1922)나 제임스 호프만의 <더 월드 아틀라스 오브 커피>(The World Atlas of Coffee, 2014) 등도 이런 설을 따르고 있다.

그렇다면 수피교도들은 언제부터 볶은 커피체리와 뜨거운 물을 결합하여 만든 음료를 마시기 시작했을까? 아쉽게도 이에 관해서는 그 어떤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16세기 말경 예멘의 산악 지역에서 커피나무를 상업적으로 경작하고 있었으니 그에 앞서 커피나무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홍해를 건너 예멘에 전파된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커피를 로스팅하고 뜨거운 물을 이용하여 음료수로 만든 기원에 대해서는 어떤 답도 힌트도 주지 않는다. 그동안 기록의 부재가 많은 주장을 낳았지만 설득력 있는 주장은 없었다. 특정한 나라, 특정한 인물, 혹은 특정한 동물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전해져 왔지만 설득력 있는 이야기는 없었다.

명나라 환관 쩡허
 
쩡허의 무덤 난징에 있는 쩡허의 무덤이다. 쩡허는 색목인이라고 부르던 우즈베키스탄 출신 부모를 둔 이슬람계 후손이었다.
▲ 쩡허의 무덤 난징에 있는 쩡허의 무덤이다. 쩡허는 색목인이라고 부르던 우즈베키스탄 출신 부모를 둔 이슬람계 후손이었다.
ⓒ 이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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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까지 알려진 이야기와는 달리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커피가 동아시아 음료 문화인 차와 아랍의 식물인 커피나무가 만남으로써 극적으로 탄생한 음료라는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다. 21세기 들어 세계인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는 커피 문화가 특정한 사람, 국가, 혹은 문명의 독자적 발명품이 아니며 문명 간 대화의 산물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필자는 십여 년 전에 미국의 세계사 교과서 속에 실린 15세기 중국인 해양 탐험가 쩡허(鄭和 1371~1433)의 남아시아와 동북아프리카 여행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나 커피의 기원과 역사에 관한 글을 하나 둘 읽게 되면서 떠올랐던 질문이 '혹시 쩡허가 아라비아반도를 방문하였을 때 중국차를 선물하며 차 만드는 모습을 아프리카와 아랍 사람들에게 보여 준 것은 아닐까? 이것을 보고 누군가 차를 만들 듯이 커피나무 잎이나 열매를 볶아서 뜨거운 물로 내리는 방식을 시도해 본 것이 커피를 탄생시킨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이런 나의 오래된 상상이 사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최근이다. 최근에 읽게 된 안토니 와일드(Antony Wild)의 책 <커피: 어 다크 히스토리>(Coffee: A Dark History, 2005)에서 바로 나의 생각과 똑같은 주장을 만나게 된 것이다. 안토니 와일드는 커피의 기원에 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차, 차의 발상지인 중국, 그리고 중국과 중동 간 무역의 역사에 주목할 것을 제안하였다. 바로 명나라 초기 환관 쩡허의 북아프리카와 예멘 방문이다.

쩡허는 중국 남부의 윈난성 쿤양에서 마(馬)씨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마산바오(馬 三寶)다. 그의 선조는 부하라(지금의 우즈베키스탄)의 무하마드왕의 후예였다. 즉, 쩡허는 중국 한족이 아니고 페르시아계 이슬람교도의 아들이었다. 열한 살이 되던 1382년 윈난성이 명나라에 의해 점령되었을 때 포로가 되어 명나라로 잡혀 온 후 거세되어 환관이 되었다. 1398년에서 1402년 사이에 있었던 정변에서 큰 공을 세움으로써 새로 등극한 황제 영락제에 의해 환관 중 최고위직인 태감에 올랐고 쩡(鄭)씨 성을 하사받았다.

34세가 되던 1405년 쩡허는 황제의 명을 받아 대규모 선단을 이끌고 해양 탐험에 나서게 된다. 원나라 세력이 비록 명에 밀려 중국 본토는 포기하였지만 서역으로 가는 내륙의 초원 지대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었고, 오스만터키의 등장으로 북부의 비단길을 통한 육로 무역의 위험성이 높아진 것이 해상 무역을 시도한 배경이었다. 서양의 대표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이 향신료를 찾아 해양 탐험에 나서게 된 것과 동양 문명을 대표하던 중국이 대규모 해상 무역을 추구한 배경은 동일하였다.

1405년 첫 항해 이후 쩡허는 30년간 총 일곱 차례 대항해를 했다. 한 차례 항해에 보통 2년이 소요되는 긴 항해였다. 동남아시아·인도·아랍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프리카 동해안에까지 이르는 대단한 여정이었다. 당시 선단은 50~200여 척 규모로 승선 인원이 2~3만 명에 달했다. 일곱 번에 걸쳐 떠났던 인도양 방면 대항해 중에서 다섯 번째였던 1417년 항해와 마지막 항해였던 1432년 항해에서 예멘 지역을 방문했다.
 
쩡허의 항해지도 쩡허의 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 대항해 루트. 중국의 차문화와 예멘 지역 커피나무의 만남으로 커피음료를 탄생시킨 문명 간 대화의 흔적이다.
▲ 쩡허의 항해지도 쩡허의 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 대항해 루트. 중국의 차문화와 예멘 지역 커피나무의 만남으로 커피음료를 탄생시킨 문명 간 대화의 흔적이다.
ⓒ 이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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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커피나무의 만남

이슬람교도였던 쩡허의 예멘 지역 방문은 매우 흥미로운 사건이었다. 무역이 목적이었던 쩡허 선단은 많은 중국 물품을 소개했고, 방문지의 신기한 물건들을 중국에 들여왔다. 많은 동물과 식물 그리고 약재 등이 중국에 소개되었는데 그 어느 기록에도 커피 이야기는 없다. 이런 것에서 유추해 보면 쩡허가 북아프리카와 예멘 지역을 방문했을 15세기 초 당시 커피가 예멘 지역은 물론 아프리카 동쪽이나 아라비아반도에 널리 퍼져 있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대만의 한화이종(韓懷宗)이 <세계가배학>(世界咖啡學, 2016)에서 쩡허 이야기를 좀더 구체적으로 다루었다. 쩡허는 출항 때마다 벽돌 모양으로 굳힌 차[磚茶]를 가져갔고, 예멘의 통치자들에게 중국식으로 차를 내려 대접하였다. 한화이종에 따르면 예멘 지역에서 출토되는 초기 커피잔이 중국의 찻잔과 모양과 크기가 비슷하였고, 예멘에 이어 커피를 대중화시킨 터키 지역에서도 중국식 찻잔에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쩡허의 마지막 항해에는 예멘의 조공 사절단(일종의 볼모)이 동승하여 중국을 방문하였다. 이들은 중국에 머무는 동안 가는 곳마다 차 대접을 받았다. 이들이 귀국한 후 중국에서 배운 차 내리는 문화를 커피 내리는 문화로 전환하여 커피의 대중화를 가져왔을 가능성 또한 적지 않다.

쩡허 방문 당시 이슬람 세계에 소개된 중국의 물품 중에서 가장 신기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차였을 것이다. 쩡허의 방문 이후 차와 비슷한 성분을 지닌 식물의 잎을 말리고, 이것을 뜨거운 물에 넣어 우려내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예멘의 수피교도들은 커피나무 원산지인 에티오피아 지역, 특히 커피 산지이며 이슬람 문명권이었던 하라(Harrar) 지역과 활발하게 무역을 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홍해 주변인 에티오피아, 예멘 그리고 일부 아랍 지역에서 커피나무의 잎이나 커피 열매의 껍질 혹은 과육을 이용해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 풍습이 널리 퍼져 있었다.

특히 잠을 잊고 기도에 집중해서 신에게 가까이 가고자 하는 욕망이 누구보다 강했던 수피교도들 중 차를 마시는 중국인을 만났거나, 중국인의 차 마시는 풍습을 전해 들은 사람들이 다양한 식물로 새로운 음료 만드는 시도를 했을 것이고 커피체리는 그중 하나였을 것이다.
 
 커피열매와 커피꽃. 순백의 커피꽃과 선홍빛으로 익은 열매가 어우러져 더욱 아름답다. 봄이 제대로 무르익을 무렵,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커피열매와 커피꽃.
ⓒ 임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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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탄생의 역사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인 수피교 수도사 샤들리(Shadhili)와 다바니(Dhabhani, 일명 게말딘)가 쩡허를 만났을 가능성도 있다. 쩡허 일행이 아덴항에 도착하였던 1417년에 어린 다바니는 아덴에 있었다. 다바니는 수피교와 과학 분야에서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고, 30대 초반에는 메카로 순례를 떠난다. 당시 메카에는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온 이슬람 순례자들이 많았다.

1432년 메카 주변 항구인 지다(Jiddah)에 쩡허 선단이 도착했을 때 다바니는 그곳에 머물렀고, 그때도 중국 차 문화를 경험하였을 가능성 또한 높다. 중국 차 문화를 경험한 과학자 다바니 혹은 그와 비슷한 호기심을 가진 누군가 찻잎과 비슷한 성분의 식물을 찾아보았을 것이고, 결국 에티오피아를 왕래하던 무역상들로부터 커피나무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커피나무 잎뿐 아니라 열매에서 더 맛 좋은 음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커피가 이슬람의 음료로 탄생하고, '아랍의 포도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예멘 지역에서 발굴되는 유물들은 1450년 즈음에는 커피가 이 지역 수피교도들의 종교 행사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5세기 초 이슬람계 중국인 쩡허와 예멘의 수피교도들, 동양과 아랍 문명의 만남 속에서 커피가 자연스럽게 탄생한 것이다.

<역사대논쟁: 서구의 흥기>(Historians Debate: The Rise of the West)의 저자 조나단 데일리(Jonathan Daily)가 주장하듯이 인류 역사에서 모든 문명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하였다. 문명 간 갈등이 아니라 협력이 인류 문명의 발전 법칙이라는 사실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 커피의 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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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 교수이며 커피인문학자이다. 대표적인 저서로 <커피세계사 한국가배사>(2021), <한국교육 제4의 길을 찾다>(2019), <세계의 교과서 한국을 말하다>, <글로벌 시대의 다문화교육>(2015), <20세기 한국교육사>(200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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