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사상 첫 리그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여기에 리그 중단의 도화선이 된 NC 다이노스 선수들의 방역수칙 위반과 일탈 행위 의혹까지 덩달아 쏟아져나오며 파문이 걷잡을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박석민, 박민우, 이명기, 권희동 등 NC 선수 4명은 지난 5일 밤 서울 원정 숙소에서 여성 2명과 밤새 술자리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모임에 함께한 인물들은 박민우를 제외하고 모두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 박민우는 도쿄올림픽 대표팀에 뽑혔기 때문에 유일하게 백신을 맞은 상태였다. NC 음주사태가 공개된 후 박민우는 책임을 지고 자숙과 손가락 부상 등을 이유로 올림픽 대표팀에서 자진 하차를 밝혔다. KBO는 이번 사태로 국가대표에서 물러난 박민우 대신 롯데 신인 좌투수 김진욱을 도쿄올림픽 야구 대표팀에 추가 선발했다고 15일 밝혔다.

KBO는 NC와 두산에서 총 5명의 확진자가 나오면서 선수단 전원이 자가격리 통보를 받는 상황에 이르자 지난 12일 긴급 이사회를 열어 리그 중단을 결정하고 13일부터 18일까지 KBO리그 30경기를 순연시키로 합의했다.

그런데 방역당국의 역학조사에서 관련 선수들이 거짓 진술과 은폐 의혹까지 불거지며 사태는 또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단순히 운이 나빠서 코로나 감염자와 접촉한 것도, 방역수칙을 위반한 것은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박석민은 자신들의 잘못으로 리그 중단 등 피해를 야기한 점에 대해서는 사과했지만, 코로나 양성 판정이 나온 직후 바로 구단에 관련 내용을 알렸고, 방역 당국의 역학 조사에서도 묻는 내용에 사실대로 답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유흥업소 종사자를 불러 술판을 벌였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예전부터 알던 지인들과 룸서비스로 시킨 치킨과 맥주 3병, 편의점에서 산 맥주 4캔 등을 섭취했을 뿐 부도덕한 행위는 없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서울 강남구는 14일 코로나19 확진 이후 동선에 관한 허위 진술을 했다고 지적하며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한 상태다. 정순균 강남구청장은 라디오 시사프로그램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1차 역학조사 당시 선수들과 지인들은 술자리 모임 자체를 진술하지 않았고, 제보와 추가 조사를 토대로 호텔 CCTV 등을 확인해서 출입자를 확인해 상세하게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CCTV로 출입자들의 동선을 확인한 결과 술자리도 다음날 새벽 4시까지 이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박석민의 변명은 신뢰를 잃게 됐다.

문제의 NC 선수들은 앞으로 경찰 조사에서 위증 혐의가 밝혀질 경우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 내려질수 있다. 더구나 프로야구 선수의 개인적 도덕성은 물론 구단과 KBO 이미지까지 오점을 남긴 만큼 중징계가 불가피하여 앞으로의 선수생활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프로야구 선수협회도 신중하지 못한 행동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며 사과했다. 공교롭게도 선수협회는 NC 주장 양의지가 회장을 맡고 있는 상황이다. 양의지도 NC 선수단과 프로야구계를 대표하는 리더로서 자기 팀 내 선수단 기강과 방역 의식을 제대로 다잡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사과문 역시 리그 중단과 법률 위반 등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진정성 없는 형식적인 사과에 그쳤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선수 개인의 일탈을 넘어 구단들과 KBO에 대한 여론도 악화되고 있다. 사태의 진원지인 NC와 두산은 선수단 내부 관리소홀로 확진자가 발생하고 리그까지 중단시키는 사태를 초래했음에도, 오히려 휴식으로 전력손실을 만회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되었기에 수혜만 입은 셈이 됐다.

KBO은 당초 코로나 19 확진자가 발생하더라도 자가격리 대상자를 제외하고 대체선수로 시즌을 계속 운영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으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손해를 감수하며 매뉴얼을 잘 준수해온 타 구단들만 애꿎은 피해를 봤다는 공정성 논란이 불거졌다. 더구나 NC와 두산이 적반하장으로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보다는 먼저 리그 중단을 앞장서서 KBO에 강력하게 요구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며 팬심은 완전히 차갑게 돌아섰다.

어쩌면 이 사태의 본질은 화려한 성공과 이익에만 도취되어 사회적 책임감을 망각해버린 프로야구계의 집단이기주의와 도덕불감증에 있다. 프로야구는 1982년 출범 이후 약 40년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 인기 스포츠로 자리매김했고, 야구 스타들 중에는 수십억 대 연봉자들도 적지 않다. 대중의 인기와 관심을 자양분으로 많은 혜택을 누리는 만큼 그에 걸맞는 사회적 의무에도 책임감을 느껴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운동을 잘해서 아무리 돈도 많이 벌고 성공했다고 해도, 그에 걸맞는 인성과 공공의식을 갖추지 못한다면 반쪽짜리 성공에 불과하다.

하지만 프로야구계는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로 올라선 이후 그 높아진 위상과 파급력이 무색하게 팬들을 실망시키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단순히 이번 리그 중단 사태와 NC 음주 파문만이 전부가 아니다. 승부조작, 음주운전, 불법도박, 금지약물, 학폭, 병역기피에 이르기까지 종류로 다양하고 특히 리그를 대표하는 스타급 플레이어들이 연루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최근 몇 년 사이만 봐도 강정호, 안지만, 임창용, 윤성환 등 선수로서는 '레전드'로 불릴만한 업적을 세운 이들이 잇달아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어 유니폼을 벗거나 심지어 법적 처벌까지 받았다, 대표팀은 선수차출의 공정성과 병역혜택 논란으로 감독이 국정감사에까지 소환되는 굴욕을 당했다. 프로야구선수들을 대표한다는 선수협은 판공비 배임 논란으로 수뇌부가 교체되고 일부 스타 선수들의 이익단체로 변질됐다는 조롱을 들어야했다. 하나같이 팬들의 존경과 공감을 이끌어낼만한 사회적 롤모델이나, 노블리스 오블리주같은 단어와는 거리가 먼 모습들이었다.

또한 선수들에 대한 대우와 환경은 과거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지만, 리그의 수준은 오히려 정체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억대 연봉은 넘치지만 가치를 다한다고 인정받는 선수는 그리 많지 않다. 가뜩이나 프로야구의 현실을 바라보는 부정적 시선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대놓고 시즌중에 야간 술판을 벌인 것은 프로의식 결여는 물론 사회적으로 민폐를 끼치는 일까지 터졌으니, 일반 국민들의 눈높이에서는 그저 딴 세상 이야기를 보는 것 같은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이번 NC 사태를 단지 몇몇 선수와 구단의 우발적 실수나 불운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어쩌면 오래 전부터 일반 국민들의 정서와 거리된 그들만의 세상에 갇힌 야구선수들에게 조금씩 누적되어온 자만과 방종의 결과물이 터진 것은 아니었을까. 최근 팬들의 불신 역시 비슷한 사례가 반복되고 있음에도 바뀌지 않은 프로야구계에 대한 실망감이 오랫동안 쌓이고 쌓여서 이뤄졌다는 것을 야구인들이 기억해야할 대목이다.

한번 무너진 신뢰는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 이번에 NC 사태가 폭로되지 않았더라면 과거에도 비슷한 일탈이나 방역수칙 위반사례가 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특히 이번에는 단순히 개인적 일탈을 넘어 리그 중단과 방역수칙 위반이라는 엄청난 사회적 파문까지 불러온 만큼 절대 가볍게 넘어갈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관련자들의 중징계야 당연한 일이지만, 단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NC와 두산, KBO, 선수협에 이르기까지 프로야구 운영의 관련 주체들도 이번 사태를 초래한데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는 또다른 공범들이나 마찬가지다. 이들이 작금의 사태에 얼마나 진정성있는 책임의식을 지니고 있는지, 앞으로 프로야구의 신뢰회복을 위하여 어떤 후속 대책을 내놓을 수 있을지, 팬들이 엄중한 시선으로 지켜봐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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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다이노스 프로야구중단 노블리스오블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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