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여기, 서로 다른 종(種)이 서로의 삶에 영향을 끼치며 살아가는 네 가지 '인간동물 X 비인간동물' 이야기가 있다. 먹이로, 반려동물로, 동물원 전시품으로, 야생동물로 '인간동물'이 지구에서 살면서 마주할 수밖에 없는 '비인간동물'들. 우리는 과연 그들과 제대로 만나고 있을까? 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비인간동물과의 공존을 실천해온 '네 마리' 인간동물의 이야기를 통해 종을 넘어서는 연대를 모색한다. - 참여사회 [기자말]
완공된 축사에서 톱밥을 즐기는 돼지. 건강하게 자라 털에 윤기가 넘친다
 완공된 축사에서 톱밥을 즐기는 돼지. 건강하게 자라 털에 윤기가 넘친다
ⓒ 하하농장

관련사진보기

 
불과 몇 년 전까지 우리 부부는 돼지사육과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었다. 축산업에 문제의식을 느끼며 채식을 했었다. 2008년 광우병 집회를 계기로 축산업의 현실을 알게 됐었다. 그 당시 축산업과 관련한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는데, 그동안 내가 먹던 돼지, 소, 닭을 어떻게 키우는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좁고 더러운 곳에서 생활하는 돼지들, 동족의 사체를 먹고 광우병에 걸린 소들, 스트레스에 서로를 쪼아대는 닭들. 특히나 돼지들은 태어나자마자 꼬리와 이빨을 잘라버린다는 사실이 끔찍했다. 밀식 사육에 스트레스를 받은 돼지들은 서로의 꼬리를 무는 행동을 한단다. 공간을 넓혀 스트레스를 줄이기보다 스트레스는 그대로 두고 이빨과 꼬리를 자르는 것으로 해결했다. 

죄책감에 휩쓸렸고, 차마 육식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고기를 정말 좋아했기에 끊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의아하게 생각하던 친구들에게는 축산업의 현실이 바뀐다면 먹을 거라고 여지를 남겼다. 입맛에 안 맞거나, 고기를 좋아하지 않거나, 건강에 좋지 않아서 안 먹는 것이 아니었다. 규모화된 축산업 속에서 동물들은 너무 '비인간적'인 대접을 받고 있었다.

채식하던 우리가 잡식생활로 돌아간 이유
 

2012년 9월, 우리는 시골로 이주했다. 갖가지 환경문제, 기후변화나 생태위기 등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변화가 우선이라고 생각했고, 우리도 변해야겠다 생각했다. 자연과 가까운 삶을 살기를 바랐고, 큰 꿈을 안고 그렇게 이사를 했다. 

이때까지도 채식을 이어가는 중이었는데 뜻밖의 암초에 걸렸다. 마을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아가기 위해, 최소한의 생계비를 벌기 위해 처음엔 이웃 농가로 품앗이를 다녔다. 이때 먹게 되는 식사는 국밥, 백숙, 제육볶음 등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메뉴가 없었다. 힘든 농사일에 든든히 먹으라고 '고기'가 들어간 식사를 내어 주는 게 일반적이었고, 한편으론 일꾼들에 대한 예의였다.

거절할 수 없었다. '베지터리언(채식주의자)'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어르신들에게 고기를 안 먹는다는 얘기를 차마 할 수 없었다. 어울려 사는 것도 신념이었고, 고기를 먹지 않는 것도 신념이었다.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는 분명했다. 꿈을 이루어나갈 생활공간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특이한 청년들로 찍히는 것도 싫었다. 예전처럼 '잡식생활'로 돌아가기로 했다.

건강한 고기에 대한 고민, 우리가 한번 해볼까?

첫째 아이가 태어나며 '건강한 고기'에 대해 본격적인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돈으로 사 먹거나, 선택권이 있을 때는 최대한 건강한 고기를 고르고 싶었다. 먹거리는 주로 한살림에서 구입해서 먹었지만 그곳에서 판매하는 고기는 우리 기준에는 부합하지 않았다. 그것이 최선이라는 걸 이해하고 구입했다.

몇 년 지난 어느 날, 새로운 이웃들을 만났다. 그들은 흑돼지를 키우고 있었는데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로 사육을 했다. 그런 농가들이 우리 지역에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 이후로 고기가 필요할 때는 그분들에게 구입했다. 보통 때 먹던 돼지고기와는 확연히 달랐다. 건강하게 자란 돼지는 이런 맛이구나 느껴졌다.

그 선배들이 우리를 설득하기도 했지만, 우리 역시 직접 해보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뭄과 우박 등으로 농사 일에 지쳐갈 때라 다른 시도도 괜찮은 것 같았다. '후계농업경영인'이라는 제도를 통해 자본금을 대출받아 소규모 양돈업을 시작했다. 동시에 온라인 정육점도 시작했다. 소규모로 키우는 거라 직거래를 하지 않으면 경제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너무 준비가 안 된 상태로 뛰어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름대로 자료도 많이 찾아보고 선배들의 경험도 들었지만,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는 노하우가 부족했다. 대규모 양돈의 경우에는 기술 자료들이 많았지만, 소규모 친환경 양돈은 자료가 전무했다.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은 있었지만 이렇게 하라는 건 거의 없었다.
  
본격 사육의 시작, 'ASF'라는 암초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조류인플루엔자(AI) 등 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공장식 축산시스템은 동물들의 대규모 살처분과 희생을 야기한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조류인플루엔자(AI) 등 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공장식 축산시스템은 동물들의 대규모 살처분과 희생을 야기한다.
ⓒ 이미지투데이

관련사진보기

 
얼마 뒤 축사가 완공되었다. 바라던 대로 햇볕이 충분히 들어오고 바람은 막힘없이 통했다. 깔아준 톱밥 깊이는 무려 60cm. 돼지들이 맘 놓고 땅을 팔 수 있으니 스트레스로 꼬리를 물 일도 없는 그런 곳이었다. 개념은 있었지만 기술이 없는 상태로 본격적인 사육을 시작했다.

나름대로 노하우들을 하나씩 쌓아갔다. 첫 설계에 없었던 자돈(어린돼지) 칸도 따로 만들고, 모돈(어미돼지)들이 생활하는 곳도 더 넓혔다. 사료를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밥통도 직접 만들어 달아주었다. 더운 여름에는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막을 치고, 추운 겨울에는 볏짚을 많이 넣어주어 따뜻하게 보낼 수 있도록 했다. 풀이 날 때는 풀을 주고, 흙도 주고, 가을에는 이웃들이 준 사과도 먹이로 많이 주었다. 넓은 운동장을 만들어 산책을 시켜주면 정말 건강한 돼지가 되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아프리카돼지열병(ASF, African Swine Fever)이 닥치면서 더 이상 꿀 수 없는 꿈이 되고 말았다. 코로나19 방역은 '거리두기'가 핵심이라면, ASF는 외부와의 '차단'이 핵심이었다. 주변 자연과의 소통을 통해 건강한 사육을 꿈꿨는데, 정부 대책은 주변 자연을 막아야 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야생동물을 막기 위한 울타리, 새를 막기 위한 방조망, 쥐를 막기 위한 트랩과 구서제 등등.

이것도 지방자치단체에서 정부 정책을 해석해서 나름 배려해준 것이지, 원래 자료에는 창이 없는 무창 돈사 중심의 대책만 내놓았을 뿐 우리 같은 소규모 친환경 돈사에 대한 대책은 아예 빠져있었다. 오히려 ASF가 초기 발병했던 경기도권의 작은 농장들은 대책을 세워주기보단 폐업을 유도하고 폐업시켜버렸다.

친환경 소규모 축산, 소비자는 원하고 정부는 배제했다
  
넓고 외부와 통하는 공간은 건강한 사육에서 정말 중요한 요소다
 넓고 외부와 통하는 공간은 건강한 사육에서 정말 중요한 요소다
ⓒ 하하농장

관련사진보기

 
넓은 공간에서 건강한 사료를 먹고 크는 돼지들은 확실히 다르다. 우리는 정육점에서 발골부터 정육까지 직접 한다. 그렇기에 여러 돼지들을 비교해볼 수 있었는데 촉감, 식감, 색깔, 맛 모든 것이 다르다. 당연히 먹은 뒤 속도 편하다. 이것은 우리만 느끼는 게 아니다. 우리 농장의 출하 소식을 기다리는 소비자들이 아주 많다. 보통 카톡 알림으로 판매를 시작하는데, 20분 만에 80% 정도 판매된다. 한 시간 정도면 아주 비선호 부위를 빼고 모두 품절된다.

그만큼 소비자들의 대규모 축산업에 대한 문제의식도 늘어났고, 건강한 돼지고기에 대한 요구도 높아졌음을 실감한다. 대규모 농장에서 할 수 없는 친환경 요소들을 우리 같은 소규모 농장에서는 비교적 쉽게 실현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 정책은 우리 같은 소규모 농가는 폐업 유도 대상일 뿐 정책의 큰 그림에서는 빠져있다. 정책도, 기술도 모두 박리다매, 경제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술 지원도, 정책 지원도 작은 농가들에겐 언감생심이다. 

인류가 농사를 짓기 전, 수렵 채집을 하던 구석기 시대엔 육식이 주였다고 한다. 곡식으로 배를 채울 수 있었던 지난 만 년 이전, 수십만 년 동안 인간은 주로 육식을 하는 잡식동물이었다. 우리 유전자에 깊이 각인된 이 사실은 변할 수가 없다. 고기는 인간의 식생활에서 영원히 끊어낼 수 없을지 모른다. '육식이 기후위기의 주범'이라 외쳐도 사람들이 잘 움직이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육식을 피할 수 없다면 윤리적이고, 기후에 영향을 덜 미치며, 동물도 인간도 함께 건강할 수 있는 친환경 축산이 널리 자리 잡아야 한다. 우리 부부가 하고 있는 것은 너무 미미해서 변화도 무엇도 만들 수가 없다. 필요성에 공감한다면 정부도 더 열심히 정책을 만들고 다듬으면 좋겠고, 우리 같은 소규모 축산 농장이 아주아주 많아지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성만·송유하님은 하하농장 대표입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7-8월호에 실렸습니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