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가 끝났다. 지난 한 달, 일터에서의 시간을 제외한 나의 삶을 가득 채웠던 지구촌의 축구 대회들이 이번 주말과 함께 갑자기 끝나버렸다. 남미에서 벌어진 코파 아메리카 2021은 국가대표로서 무관의 제왕이었던 메시에게 왕좌를 허락했고, 유럽 11개국에서 분산 개최되며 유럽 대륙 코로나19 상황의 중요한 변곡점이 되었을 유로 2020은 아주리 군단 이탈리아의 우승으로 끝이 났다. 유럽, 한국, 브라질 어딘가의 시간으로 어정쩡하게 살던 한 달의 시간이 그렇게 멈췄다. 

코로나19는 세상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으로 바꿔 놓았다. 4년마다 꼬박꼬박 열리던 대회들은 멈췄고, 2020년에 열렸어야 하는 대륙별 국가대항전은 1년이 지나 찾아왔다. 원래대로라면 유럽 어딘가에서 유로 2020을 즐겼어야 했지만, 결국 포기했다. 대회는 멈췄던 시간을 지나 다시 돌아왔지만 지나가 버린 나의 여름 축제는 다시 오지 않았다. 

비대면 축구여행의 포문을 연 것은 로마의 올림피코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이탈리아와 터키의 유로 2020 개막전이었다. '안 일어나면 후회한다'며 울려대는 알람의 도움으로 간신히 눈을 떴지만, 침대에 누운 채 반쯤 감긴 눈으로 침대 옆의 전화기의 중계를 흘려보내던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이탈리아 팀의 놀라운 경기력이었다.

'재미없는 빗장수비'로 오해되던 푸른 유니폼의 아주리 군단은, 현대 축구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압박을 경기장 전체를 활용하며 펼치고 있었고, 숨 쉴 틈 없는 공-수 전환은 반쯤 깨어있던 나를 그대로 일어나게 했다.

하프타임의 여유를 놓치지 않고 거실로 나와 프로젝터를 켰고, 코로나19로 멈춰있던 1년의 시간을 잊어버리게 할 만큼의 쉴 틈 없던 개막전은 '살아남느라' 잊어버렸던 축구에 대한 열정을 순식간에 되살려 놓았다. 나는 곧바로 이탈리아를 응원하게 되었고, 유로 2020의 경기 시간으로 삶의 시계를 조정했다. 
 
유로2016 예선에서 맞붙었던 이탈리아와 벨기에 지난 2016년 6월 13일에 프랑스의 리옹에서 벌어진 이탈리아와 벨기에의 일전입니다. 경기는 90분 내내 긴장감 넘치는 압박과 전환의 최고수를 보여주었고, 제 기억에는 유로2016 최고의 경기로 남아있습니다. 아마 이 때부터였을꺼예요. 지금의 우승전력 이탈리아를 기대하게 된 것이 말이예요!

▲ 유로2016 예선에서 맞붙었던 이탈리아와 벨기에 지난 2016년 6월 13일에 프랑스의 리옹에서 벌어진 이탈리아와 벨기에의 일전입니다. 경기는 90분 내내 긴장감 넘치는 압박과 전환의 최고수를 보여주었고, 제 기억에는 유로2016 최고의 경기로 남아있습니다. 아마 이 때부터였을꺼예요. 지금의 우승전력 이탈리아를 기대하게 된 것이 말이예요! ⓒ 이창희

 
이번 유로에서는 오랜만에 대규모의 국가대항전이 갖는 수준 높은 축구를 만날 수 있었다. 또한 수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그중 덴마크의 신화는 빼놓을 수 없다.

코펜하겐에서 벌어진 예선 B조 첫 승부였던 덴마크와 핀란드의 경기는, 덴마크 주장인 에릭센 선수의 갑작스러운 사고로 경기가 중단되었다가 에릭센 선수가 간신히 정신을 찾고 난 후 이어지는 일이 벌어졌다. 이날의 사고는 덴마크 팀을 강하게 연결시켰고, 에릭센 선수의 쾌유에 대한 기원과 함께 4강까지 기대 이상의 경기력을 보이며 신화를 이어갔다. 비록, 그들의 역사는 잉글랜드와의 4강에서 멈췄지만, 아마 오랫동안 잊을 수 없는 축구라는 스포츠가 줄 수 있는 감동의 신화로 기억될 것이다. 나도 이탈리아와 덴마크가 결승의 두 팀이 되기를 응원했으니까. 

'죽음의 조'라고 불렸던 F조의 이야기도 잊을 수 없다. F조는 유로 2016의 우승 팀이었던 포르투갈과 전통의 강호 독일,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의 우승 팀인 프랑스가 함께했던 '이상한 조'였다. 마지막 한 팀이었던 헝가리가 최약체로 예상되었지만, 모든 팀이 승점 3점씩을 나눠갖는 예선을 거쳐, 1위 프랑스-2위 독일-3위 포르투갈의 결과로 본선팀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모두가 우승후보였던 F조의 세 팀이 모두 16강에서 탈락하였고, '죽음의 조'는 말 그대로 살아남은 팀이 없는 죽어버린 조가 되었다.
 
러시아 월드컵, 카잔에서의 승리! 지난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리는 독일을 2대0으로 제압하였고, 독일은 이 당시에도 F조 4위로 밀려나며 예선 탈락했었습니다. 그 날의 기억때문인지, 독일을 응원하게 되었는데 아쉽네요.

▲ 러시아 월드컵, 카잔에서의 승리! 지난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리는 독일을 2대0으로 제압하였고, 독일은 이 당시에도 F조 4위로 밀려나며 예선 탈락했었습니다. 그 날의 기억때문인지, 독일을 응원하게 되었는데 아쉽네요. ⓒ 이창희

 
독일은 지난 월드컵에서 우리에게 지면서 조 4위로 예선 탈락을 했기에, 이번 대회에서는 좀 더 오래 버티기를 원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50년이란 시간 동안 한 번도 지지 않았던 웸블리 경기장에서 잉글랜드의 제물로 쓰인 것만 같아 마음이 아팠다. 게다가, 독일 대표팀을 15년이나 이끌었던 '멋쟁이 독일 신사' 뢰브 감독의 마지막이라는 것도 아쉬웠다.

이번 유로를 통해 세계 축구사의 전술적인 진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10여 년의 유럽 축구를 이끌었던 강호들의 성공적인 세대교체가 눈부셨다는 점이 특히 눈에 띄었다. '어쩌다 보니' 레알마드리드의 선수들을 하나도 데려오지 못했던 스페인 팀의 선전이 인상적이었다. 

스페인 팀의 18세 신성 페드리가 보여준 경기력과 나이답지 않은 노련함은 앞으로의 스페인을 기대하게 했다. 물론, 21세인 덴마크의 담스고르와 19세인 잉글랜드의 부카요 사카의 미래도 기대된다. 골키퍼로써는 최연소이자 최초로 최우수선수상을 받은 우승 팀 이탈리아의 잔루이지 돈나룸마가 아직 22세라는 것도 앞으로의 이탈리아가 더욱더 기대되는 중요한 이유다.  

현장에서의 축구 열기를 포기하고 얻은 것이라면, 코파 아메리카와 유로를 비교하며 볼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언젠가의 정복의 역사를 통해 전파된 축구는, 꽤나 오랫동안 세계 축구를 양분하며 대륙 간의 균형을 유지하게 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메시, 브라질의 네이마르, 우루과이의 수아레스라는 몇 몇의 스타플레이어로 상징되는 남미의 축구는, 2021년에는 '원팀'의 조직력을 앞세운 강력한 압박으로 대표되는 유럽 축구와의 전력적인 격차를 확실하게 드러냈다.

게다가, 코로나19가 안정화되지 않은 남미의 현실을 상징하듯 관중을 받지 못하고 치러진 코파 아메리카는, 관중의 열기에서도 유럽 대륙과의 차이를 확실하게 드러낸 것만 같아서 씁쓸하기도 했다. 축구는 전지구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이니, 남미가 그동안 담당했던 균형이 이대로 쉽게 무너지지 않기를 기대한다. 

두 대회의 결승전은 모두 지난 일요일이었다(7월 11일, 엄밀히 말하자면 유로 결승전은 월요일 새벽이었다). 나는 부랴부랴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의 유니폼을 챙겨들고, 충북 어딘가에 있다는 우리나라 유일의 유로 2020 팬 페스트로 향했다.

매번 축구여행을 함께 떠났던 가족들과도 조금이나마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대회를 함께 마무리하기 위해 찾아간 팬 페스트는 여름의 열기와 축제의 마무리로 뜨거웠고 다행스럽게도 나는 내가 응원하는 두 팀의 승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유로2020 팬 페스트에서의 결승전 축구를 즐기는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저는 함께 현장에서 관람을 즐기는 친구들을 찾아가,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결승을 함께했습니다. 힘들게 새로 지은 창고 앞에, 엄청 큰 스크린을 설치한 것은, 모두 이 결승전 관람을 위해서라고 하네요! 감사합니다!

▲ 유로2020 팬 페스트에서의 결승전 축구를 즐기는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저는 함께 현장에서 관람을 즐기는 친구들을 찾아가,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결승을 함께했습니다. 힘들게 새로 지은 창고 앞에, 엄청 큰 스크린을 설치한 것은, 모두 이 결승전 관람을 위해서라고 하네요! 감사합니다! ⓒ 이창희

 
한 달의 일상을 빼곡히 채웠던 대회가 갑자기 끝나니 밀려드는 허탈감과 쓸쓸함은 어쩔 수 없다. 일단, 월요일 하루는 휴가를 냈으니 지구 어딘가의 시간대에서 방황하는 나부터, 한국의 시간으로 되돌려 놔야겠다.

지금을 또 정신없이 살다 보면 코로나19도 끝이 날 테고, 내년에는 카타르에 갈 수 있겠지. 우선, 10월에 도착할 이탈리아 대표팀의 유니폼을 기다리며 지금의 아쉬움을 달래야겠다. 유로 2020, 코파 아메리카 2021을 뜨겁게 즐겨주신 모든 분들과 함께,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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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2020 코파 아메리카2021 축구 관람기 코로나19시대 축구팬으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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