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전주 KCC 이지스는 지난 시즌 천국과 지옥을 함께 경험했다. 아슬아슬한 6강 후보로 꼽히던 것과 달리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KBL을 깜짝 놀라게 했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는 역대 최고의 용병 자레드 설린저(28·206cm)를 앞세운 안양 KGC인삼공사에게 4전 전패로 무너지고 말았다.

물론 KBL 수준을 훨씬 뛰어넘은 설린저가 이끌던 KGC를 상대로는 역사상 어떤 팀을 가져다 놓아도 시리즈를 가져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피트 마이클, 단테 존스 등의 케이스와 달리 설린저의 KGC는 포지션별 밸런스, 선수층에서도 KBL 최고를 자랑했다. 하지만 그런 것을 감안하더라도 단 1승도 챙기지 못했다는 사실은 KCC팬들 입장에서는 탄식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비록 국내 최고의 포워드 송교창(25·201cm)이 버티고 있기는 하지만 KCC는 어디까지나 가드농구를 하는 팀이다. 이정현(34·191㎝), 유현준(24·178㎝), 정창영(33·193㎝), 김지완(31·187㎝), 유병훈(31·188㎝), 이진욱(25·180㎝) 등 핵심멤버 대부분이 가드 포지션에 몰려있다. 그로인해 포지션 밸런스 문제가 늘 지적되어왔으나 전창진 감독은 뚝심있게 가드농구를 펼치며 소기의 성과를 올렸다.

다음 시즌에도 KCC 가드농구는 계속될 공산이 크다. 타포지션에 별다른 보강이 없는 가운데 비시즌간 가드 박재현(30·183㎝), 슈터 전준범(30·194㎝)이 추가됐을 뿐이다. 전준범의 포지션이 포워드라고는 하지만 수비적인 부분에서 공헌도를 기대하기 힘든 유형인지라 사실상 가드와 별반 차이가 없다. 여전히 KCC는 가드만 넘쳐난다.

문제는 가드농구를 하는 팀의 가드진이 불안정하다는 사실이다. 지난 시즌 가드진 중 제 몫을 해준 선수는 정창영이 유일하다. 유현준, 이진욱은 발전된 모습을 보였지만 타팀 가드진에 비해 비교우위를 점하지 못했고 김지완, 유병훈 등은 부상 등이 겹치며 기대 만큼의 경기력이 나오지 못했다. '양만 많고 실속은 적다'는 혹평이 끊이질 않는 이유다.

그중에서도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이정현이다. 국내 최고의 슈팅가드 중 한 명인 이정현은 송교창과 함께 '원투펀치'를 이뤄야 할 선수다. 그가 버티고 있기에 타팀에서도 KCC를 두려워한다. 아쉽게도 지난 시즌 이정현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그로 인해 KCC도 제대로 힘을 받을 수 없었다는 분석이다.
 
기량과 리더십을 두루 갖춘 최고의 캡틴
 
 이정현은 팀원 모두가 믿고 따르는 최고의 리더다.

이정현은 팀원 모두가 믿고 따르는 최고의 리더다. ⓒ 전주 KCC

 
이정현은 성공적인 농구 인생을 걸어왔다. 높은 'BQ(바스켓 아이큐)'와 특유의 승부욕을 바탕으로 아마 시절부터 에이스로 활약해왔으며 이는 프로에 와서도 꾸준히 이어졌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자신을 전체 2순위로 지명해준 KGC 인삼공사에 우승이라는 선물을 안겨줬으며 KCC로 둥지를 옮겨서도 높은 연봉에 걸맞는 빼어난 활약으로 핵심 전력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이정현의 장점은 꾸준함과 영리함이다. '2순위 지명은 다소 높은 것 아니었냐?'는 세간의 우려를 단숨에 뒤집어버릴 정도로 특별한 적응기 없이 프로 입성 후 지금까지 꾸준하게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한결같은 공헌도를 선보였다. 탁월한 재능과 더불어 성실한 자기 관리가 있었기에 가능한 모범적 행보라 할 수 있다.

끊임없이 뛰고 점프하고 격렬한 몸싸움이 오가는 농구경기에서 단순히 기술적인 수준만 출중하다고 롱런할 수는 없다. 일단 다치지 않고 혹은 어느 정도 부상 투혼을 각오하는 의지가 강해야지만 많은 경기를 뛰면서 누적기록도 쌓아가는 게 가능해진다. 그런 점에서 이정현의 꾸준한 행보는 많은 후배들에게 존경을 받기에 모자람이 없다.

이정현은 매우 영리한 전천후 공격수다. 테크닉도 테크닉이지만 센스가 빼어나고 시야까지 넓다. 조금의 틈만 있으면 과감하게 돌파를 감행해 득점을 올리거나 자유투를 얻어내는 것은 물론 골밑으로 들어갈 듯하다가 순간적으로 멈춰 서서 쏘는 미들슛, 뱅크슛도 일품이다. 옵션 자체가 매우 다양하다.

거기에 '오프 더 볼 무브'가 워낙 좋아 받아먹는 플레이에도 능하다. 자신이 공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도 끊임없이 빈 공간을 찾아 움직이며 슈터 혹은 속공수의 역할도 잘해준다. 더불어 2대 2 플레이까지 좋은지라 상대하는 수비 입장에서는 매우 골치가 아프다. 상황에 따라 자신이 어떻게 플레이해야 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고 이를 몸소 실천할 수 있는 농구 마스터다. 은퇴한 조성민과 더불어 KBL 역대 최고 슈팅가드 자리를 다투는 이유다.

지난 시즌 중 KCC 중심 선수 몇 명이 인터넷 방송을 통해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우승에 자신이 있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선수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정현이 형이 있잖아요. 형이 우승시켜줄 거예요." 이에 이정현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믿어보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결과적으로 챔피언결정전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팀원들이 이정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KGC 시절에도 간판스타 양희종은 승부처마다 이정현을 언급하며 신뢰해줬으며 챔피언결정전에서 터트린 빅샷은 지금까지도 최고의 한 장면으로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KGC 김승기 감독, KCC 전창진 감독, 모두 이정현에 대해서만큼은 무한 신뢰를 보였다.

이렇듯 이정현의 장점은 단순히 기량에만 있지 않다. 팀원들은 물론 지도자까지 자신을 믿게 만드는 행보를 걸어왔고 그 결과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리그 최고의 선수로 살아남아있다. '캡틴'이라는 호칭에 누구보다도 잘 어울리는 인물이다. 은퇴후에도 슈팅가드의 교과서로 두고두고 회자될 레전드다.

때문에 KCC가 다음 시즌에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이정현의 부활이 필수다. 적지 않은 나이로 인해 전성기가 저물어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주전, 식스맨 어떤 보직으로 나오더라도 지난 시즌보다는 나은 모습을 보여줘야만 이지스함의 화력이 되살아날 수 있다. 여전히 KCC 앞선의 에이스는 이정현이기 때문이다.

이정현이 지난 시즌의 부진을 털고 다시금 모두를 두려워하게 했던 기술자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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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디지털김제시대 취재기자 / 전) 데일리안 객원기자 / 전) 홀로스 객원기자 / 전) 올레 객원기자 / 전) 이코노비 객원기자 / 농구카툰 크블매니아, 야구카툰 야매카툰 스토리 / 점프볼 '김종수의 농구人터뷰' 연재중 / 점프볼 객원기자 / 시사저널 스포츠칼럼니스트 / 직업: 인쇄디자인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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