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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EBS <명의>를 본 적이 있다. 심각하고 무거운 질병을 학문적, 임상적으로 분석하고 이겨내려는 수많은 전문가들의 노력을 보여준다. 물론 환자도 나온다. 다른 프로그램에서 암환자들을 보여주는 방식과는 많이 다르다.

병원이나 환자가 나오는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절망스러운 시간을 이겨내려는 노력에 초점을 맞춘다. 눈물샘을 자극한다. 보는 사람도 아프고 안타깝다. 행, 불행이 이어지고 뜨거운 가족애로 마무리한다.  

<명의>는 좀 다른 곳에 주목한다. 환자의 가슴 아픈 사연을 소개하기보다 질병을 눈앞에 두고 이를 치료하기 위해 밤잠 안 자고 고민하는 의료진의 모습과 새로운 치료법과 수술법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는 의사들의 진지한 표정에 주목하는 다큐멘터리다. 

객관적으로 의학의 발전과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지만, 남편은 병원이 나오는 어떠한 방송에도 질색한다. 아버님, 할아버님을 암으로 잃은 가족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치유든 과학이든 병증 자체에 대한 거부 반응이다. 가족력이 강력한 방어기제로 작용해서였는지, 또는 회피인지 모르겠지만 눈물도 싫고 아픔도 싫고 병 자체도 알고 싶지도 않고 보기 싫다고 한다. 때문에 프로그램을 보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병원 나오는 방송 질색하던 남편
 
암 환자의 가족으로서 현실을 무겁고 진지하게만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나도 노력한다.
 암 환자의 가족으로서 현실을 무겁고 진지하게만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나도 노력한다.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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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남편에게도 암이 찾아왔다. 암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암(癌)이라는 한자어의 풀이로도 짐작이 된다. 입을 세 개나 가지고 있는데, 산이 가로막아 말을 못 하는 형국, 입이 턱 막히는 상황이 암(癌)이다. 인간의 생로병사의 진리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 것 같다. 그렇게 싫어해도 찾아오고야 말았으니.

진단 후 며칠은 병증에 대해 정확하지 않은 정보와  암울한 소식을 가감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알게 되는 정보는 주로 비극이었지만 게중 조금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정보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정보들에 일일이 온몸과 마음이 반응하며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을 보냈다.

환자 자신이나 가족들 모두 멘털을 겨우 붙잡고 있었지만, 서서히 우울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그 정도는 아닐 거라고 인정하지 않았다가 제발 그 정도는 아니기를 대책 없이 빌었다. 이래서 신을 찾는가 싶었다. 누구에게도 편히 말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 절대적인 존재가 있다면 모든 것을 털어놓고 "부디 이번 한 번만"이라고 무작정 빌고 싶었으니.

대장내시경을 끝내고 처음 영상을 보며 의사는 암을 확신했다. 그래도 조직검사를 넘겼으니 기다려보자고 했다. 기다리는 일주일은 악몽의 시간이었다. 한 주가 이렇게 길게 느껴진 적이 근래에 없었던 것 같다.

작은 정보에도 가족 모두가 휘청거렸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결과가 나왔고 미리 예약한 종합 병원으로 갔다. 의사를 만나고 다시 영상을 가지고 길게 얘기했다. 암에 대한 진단은 바뀌지 않았다. 세상이 무너진다는 느낌은 순식간에 일어나고 바로 잊히는 것이 아니었다. 

다시 더 복잡하고 정밀한 진단이 시작되었다. 검사를 위해 오전 내내 병원 곳곳을 돌아다녔고, 당일 불가능한 것들은 예약으로 이어졌다. 입원을 위한 마지막 절차는 코로나 검사였다. 코로나와 함께 사는 세상 속에서, 코로나는 모든 것의 관문이면서 통과 의례였다. 

수술을 마쳤다, 이제 필요한 것은
 
삶에 대해 절망하지 마라. 
우리에겐 어려움을 충분히 극복할 만한 힘이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1827-1862, 시인)

수술을 마쳤다. 앞으로 항암 치료와 투병의 시간이 이어지겠지만, 평정을 찾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매일 나를 깨우친다. 늘어지는 마음을 바로 세우고 나태해지려는 나를 재촉한다. 엄격한 식단, 치료의 과정을 위해 흔들리면 안 된다고 나를 다독인다. 
 
삶에 대해 절망하지 마라. 우리에겐 어려움을 충분히 극복할 만한 힘이 있다.(헨리 데이비드 소로)
 삶에 대해 절망하지 마라. 우리에겐 어려움을 충분히 극복할 만한 힘이 있다.(헨리 데이비드 소로)
ⓒ EBS <파란만장>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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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EBS <파란만장>에서는 암과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왔다. 병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는 것, 전 세계 6명 중 1명이 암에 걸린다는 것(WHO 2020 세계 암 보고서), 그럼에도 '암'이라는 단어 자체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방송의 서두에서 얘기했다. 

20대 청년 말기암 환자나, 13년간 말기암 투병을 하는 60대 배우나, 40대 폐암 4기 환자나, 그들은 환자의 모습으로 살지 않았다. 삶을 이어가는 노력이 그들을 웃게 한다고 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으니 내일을 재지 않아도 된다는 것. 지금 이 순간 행복하기 위해 다만 오늘에 최선을 다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암과 놀며 바쁘게 살아간다고 이야기했다. 

이전 같았으면 곧바로 돌렸을 채널을 한 시간 가까이 열심히 시청했다. 암에 걸린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 다른 사람에게도 사랑받는 방법이라고 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들의 조언이 행동 지침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암과의 동행은 이제 우리 가족의 몫이 되었다. 암을 사랑하는 방법, 사랑할 때 나오는 호르몬이 암의 진행을 막을 거라는 믿음과 확신이 필요하다. 

며칠 후면 퇴원이다. 철없는 낙천이 기적을 만들어낼지, 웃음이 불행의 싹을 지울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올 수 있으면서 누구에게든 공포인 병, 암. 방송에 출연한 사람들은 그럼에도 몸보다 마음이 먼저 무너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한다.

암 환자의 가족으로서 현실을 무겁고 진지하게만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나도 노력한다. 식사, 수면, 삶의 태도를 바꾸기 위한 노력, 그 시간을 준비하고 있다. 그럼에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끊임없이 걱정이 꿈틀거린다. 씩씩하게 살아내기 위해 힘을 내 본다.

암이든 암이 아니든 앞으로의 시간은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살아가는 세상, 암의 세상도 살 만하다는 위로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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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사람 사는 이야기를 씁니다. 50대의 삶을 어떻게 꾸려갈지 깊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남은 생도 이전처럼 힘 있게 달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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