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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본래 꼼꼼하고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래서 나 스스로도 피곤하지만 상처를 받을 때도 많아서 성격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도 참 많이 했다. 하지만 최근 발생하는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을 접하면서 엄마 혹은 주변인으로서 이러한 성격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내 아이의 이야기

나는 요즘도 유치원에서 아이와 인사를 하고 난 후 즉시 유치원을 떠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유치원 현관 주변에 서서 엄마가 가고 난 후 아이의 모습과 창 너머 유치원 교실 혹은 선생님들의 행동 등을 지켜보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2015년 여름, 셋째 아이를 낳고 얼마되지 않아서 난 둘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 밖에 없다고 판단하였다. 내가 아이를 보내려했던 어린이집의 원장은 스스로 유아교육학 박사임을 자랑스럽게 말하며 전문가적인 면모를 내세우는 편이었다. 솔직히 어린이집을 처음 보내는 엄마로서 무조건적인 믿음을 가질 수밖에 없기에 나 역시 되도록 신뢰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이는 늘상 어린이집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날도 겨우 등원 준비를 마치고 11시가 조금 넘어서 억지로 가기 싫은 아이를 이끌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아이는 어린이집 현관문 앞에 도착해서도 들어가기 싫다며 울고 떼를 썼다. 매우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으로 아이를 억지로 들여보냈다.

나는 바로 집으로 갈까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마음이 영 찜찜하여 그냥 가지 못했다. 어린이집의 현관문에 바짝 귀를 붙이고 무슨 소리가 나는지 조용히 들어봤다. 소리가 얼추 들렸다. 대화 내용이 자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대략 그랬다. 

아이의 담임교사는 따뜻한 말투로 우리 아이를 달래주면서 아이가 우는 것과 오기 싫은 마음 등을 공감해주고자 애썼다. 하지만, 원장은 냉랭한 말투로 '아이들이 울 때 일일이 달래주면 버릇이 잘못 든다'며, '밥을 안 먹으려고 하면 억지로 주려고 하지도 말라'고 하였다.
 
울고있는 아이
 울고있는 아이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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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는 계속 우는 듯 하였으나 점차 울음이 멈추었고 원장의 싸늘한 말투에 담임교사의 달래는 목소리도 어느덧 잘 들리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유아교육에 대한 전문성을 강조했던 원장의 교육자로서의 자질과 성품이 심히 의심스러웠고 마음의 동요가 오기 시작하였다. 당시 아이를 다시 집으로 데려가야하나 생각하다가 일단 나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혼자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후 우연처럼 어린이집 원장과 어느 엄마와의 갈등 상황을 듣게되었다. 그 이야기는 나의 생각과 고민에 어느 정도 방향성을 제시해주었고 결정적인 선택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엄마의 말에 의하면, 자신의 자녀가 바깥놀이를 가서 자주 대소변을 본다는 이유로 원장은 아이가 듣는 앞에서 수치스러운 발언을 했다고 한다.

또,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점심 식사 시 음식을 가리거나 먹기 싫어한다는 이유로 교실이 아닌 거실에서 홀로 점심을 먹게 했다고 주장했다. 그 아이의 엄마는 화가 나서 원장과 다투었고 아이는 그렇게 어린이집을 관두었다고 했다. 나 역시 이내 내 아이를 그 어린이집에 더 이상 보내지 않았다.

주변 아이에 대한 달라진 시선

요즘 나는 유치원생 아이를 등원시키고 오는 길에서 예전과 확연히 다른 시선으로 주변의 아이들을 바라보게 된다. 특히, 온 국민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던 '정인이 사건' 이후로 더욱 그렇다. 정인이 또래의 아기를 보면 지금까지도 정인이의 생전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돌덩이처럼 무겁게 짓눌리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길을 지나는 모든 어린 아이들을 이제는 매의 눈으로 바라보고, 아이들의 모습에서 특별한 징후는 없는지 단단히 살피며, 필요하면 용기를 내어 신고를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러나 과연 내가 주변인으로서 현실적인 상황에 직면하였을 때 그것들을 해낼 수 있을까 생각하면 참으로 어렵고 자신이 없다. 

<금쪽수업>에 출연한 이수정 교수는 마지막 당부로, '내 아이 뿐 아니라 주변의 아이들에게도 따뜻한 눈길과 손길을 주라'고 말하였다. 오전 산책 시간에도 예의주시하는 광경이 있다. 오전 산책을 나온 어린이집 선생님과 아주 어려보이는 아이들 무리가 종종 보인다.

어린이집의 선생님은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아이들은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지 유심히 바라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저 아이들은 괜찮을까, 어떤 마음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과 비슷한 나이일 때, 나의 자녀들은 과연 어땠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홀로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
 홀로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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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소통하며 지내는 아이 엄마가 나에게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해주었다. '우리가 아동학대에 관해 놓치고 있는 게 많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요즘도 아파트 단지 내 밤늦게까지 보호자도 없이 놀이터에서 혼자 노는 어린 아이가 있다고 하였다. 그 아이를 자세히 관찰해보면 다른 아이의 엄마들에게 과도한 친근감을 표시하고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통상적으로 아이들은 자신의 엄마 외 다른 아이의 엄마 그리고 낯선 어른에게 과도하게 친근감을 표시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는 주변의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면밀하게 들여다보면, '외관상 아동학대의 징후가 심하게 드러나지 않더라도 분명 보이지 않는 학대들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많이 공감 가는 이야기였다. 아동학대의 유형으로는 신체학대뿐 아니라 정서학대, 방임, 성학대도 포함된다. 신체학대나 성학대는 밝혀지기 쉬운 반면 정서학대나 방임은 묻혀버리는 경우도 많은 것이 바로 그 이유이다. 

현재 교육부는 '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라는 교육 철학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그렇게 하기 위한 준비가 덜 된 게 아닐까. 

태그:#아동학대, #정인이사건, #정서학대, #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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