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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이코노미스트의 말에 의하면 주식투자는 물 위에 떠 있는 게임이라고 한다. 물 위에 잘만 떠 있으면 언젠간 바다에 도달할 수 있다고. 그런데 대부분이 더 빨리 가려고 욕심을 내다 무리하여 중간에 빠진다고. 무리하지 않는데 나의 처절한 경험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기자말]
주식 투자에 대한 글을 쓰고부터 종종 대하게 되는 반응이 있다.

"뭘 안다고 떠들어?!"

윽. 정곡을 찔렸다. 너무 없어 보일까봐 조금 있어 보이게 쓴다고 썼는데 아픔은 배가 된다.
  
유구무언
 유구무언
ⓒ 남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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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잘 하지도 못하면서 가르치려 한다는 얘기와 번갈아 나오는 반응인데, 사실 정곡을 찔린 것보다 가당치 않은 오해를 산 것에 당황스러움이 더 크다. 안다고 떠든 것도 아니고 가르치려고 한 것은 더더욱 아님에도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불편한 부분이 있었나 보다.

그럴 깜냥이 되지 못함은 여러 글에서 구구절절하게 밝혔다. 그래서인지 구구절절 뭔 말이 그렇게 많냐는 반응도 있는데, 사실을 직시한 반응이라 딱히 변명거리가 없다. 원래 (주식에) 한이 많은 사람은 말이 많은 법이다.

아는 게 많아서 역사적 사례도 제시하고 근거에 입각해 척척 설명하면서 예측도 하고, 그러다 보기 좋게 틀려서 손가락질 받는 게 부러웠다면 믿을지 모르겠다. 그만큼 나는 부족하고 스스로 부족하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모두 오해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 적어도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을 거라는 짐작으로 날아드는 질문도 있는데, 오해 속에서 싹튼 이런 질문도 적잖이 당황스럽다.

"그래서 얼마나 벌었는데?"

'아이고. 못 벌었다니까요. 이제야 겨우 겨우 손실을 복구하고 있어요', '그것도 시장이 좋았던 거지, 제 실력이 아니에요. 매일 매일이 걱정입니다' 제길. 대답하다 슬퍼진다. 가볍게 미소 지으며 으레 하는 겸손의 말이어야 하는데, 사실을 진지하게 고하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울컥한다.

전문가들의 언행불일치

포트폴리오 선택 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해리 마코위츠는 자신의 자산을 주식과 채권에 50대 50으로 아주 단순하게 나눠 담았다고 한다. 리스크 대비 기대 수익이 다른 여러 자산에 분산 투자함으로써 위험은 낮추고 기대 수익률은 올릴 수 있다는 그의 이론에 비하면 지나치게 심플한 자산 구성. 아무리 대단한 전문가라 하더라도 자신의 일이 되면 쉽지 않은 일이 되고 마는 사례다.

의사가 흡연율이 가장 높은 직업군에 속한다는 것과 수백억을 다루던 금융 전문가가 전업 투자에서 실패하는 것은 어찌 보면 아이러니다. 그러니 나 같은 개미의 작은 경험 하나 얘기 하지 못할 게 뭐가 있나 싶었다.

포트폴리오 이론 덕분에 안정적으로 자산을 불린 많은 사람들과 의사의 권유로 담배를 끊은 소수(?)의 사람들처럼, 아주 '극'소수만이라도 내 경험에 공감하고 편한 투자를 이어갈 수 있다면 나로선 큰 성취이자 보람일 테니까.

그러니까 나는 잘나서, 아는 게 많아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니다. 그저 별 볼일 없는 한 사람의 경험도 누군가에겐 나름 의미 있는 선택의 지표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시작한 기록이다. 비록 나는 잘 못했고 여전히 부족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이를 발판으로 좀 더 나아질까 싶어서.

나란 사람은 별 볼일 없게 여겨도 경험은 조금 별 볼일 있게 봐줬으면 싶다. 아무리 가벼운 이야기라도 그 속에 담긴 경험을 가벼이 여기지 않으면, 이야기는 힘을 얻고 읽는 이의 작은 발판이 되기도 한다.

뭘 안다고 얘기 하냐는 반응 속에 적어도 '난 이 사람보단 낫네'라는 안도라든지, '나는 이러지 말아야지'라는 경계라든지, '나도 그랬지'라는 공감이 함께 있었음 하는 이유다.

모든 게 선택임에

적다 보니 아무래도 궁색한 내 처지를 미화한 데서 오해를 산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혹시 이런 얘기를 들어 봤는지 모르겠다. 행복은 찾거나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이야기. 행복은 현재의 선택이라는 누군가의 깨달음을 나는 책에서 배웠다. 꾸뻬씨라고 행복을 찾기 위해 세상을 여행한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 속, 한 노승의 가르침이었다.

그리고 그때 얻은 배움을 매 순간 적용하려 노력 중이다. 그러니까 내 보잘 것 없는 경험의 미화는 '그럼에도 괜찮다', '그런대로 나아지고 있다'라고 애써 택한 나의 선택이란 얘기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었을 거란 것은 안 비밀...

오늘도 여전히 부족한 나는 괜찮다며 아쉬움보단 만족을 선택한다. 시세에 흔들려 다짐을 지키지 못해도 열 번의 흔들림을 참은 후에 저질렀음에 희망을 보고, 내 글에 대한 탐탁지 않은 시선과 반응에도 '관심'이라는 애먼 단어를 가져와 색안경을 만들어 쓰고 본다. 그런다고 행복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적어도 불행을 느끼지는 않는다.

오늘도 주식 시장은 열리고 많은 사람들의 최선이 얽히고설킨다. 그 최선이 가닿은 단기간의 결말에서 다들 어떤 선택을 할는지... 한탄일지, 아쉬움일지, 만족일지 못내 궁금하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부디 나와 같은 미화시킨 선택이길 바란다. 어차피 일어난 일, 어차피 바꾸지 못하는 거, 그냥 좀 예쁘게 봐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뭐 제 글도 좀 예쁘게 봐달라는 건 아니고요... 그냥 그렇다고요.(웃음)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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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렀지만 넌 또 모르잖아"라는 생각으로 내일의 나에게 글을 남깁니다. 풍족하지 않아도 우아하게 살아가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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