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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링스(Earthlings) 지구생명체 기록 프로젝트'는 지구생명체들이 있는 현장으로 가 그들의 삶을 글, 사진, 영상으로 기록합니다. 다양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희생당하는 인간 외 종들의 현실을 고발한 2005년 미국의 영화 <지구생명체>(Earthlings)에서 이름을 가져왔습니다. 농장,바다,동물원,펫샵,동물실험연구소 등 인간의 목적을 위해 희생되거나 삶터를 빼앗긴 이들을 찾아가 기록원들이 보고 듣고 맡은 현실을 기록하여 연재합니다.[기자말]
6월의 어느 날, 어스링스 지구생명체 기록 프로젝트원들은 5월에 있었던 진실의 증인(VIGIL) 비질 활동 이후로 그 두 번째 시간을 제주도에서 가졌습니다. 주제는 바로 드넓은 바다의 주민들인 해양생물입니다.

제주도로 향하기 전, 저는 짧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제가 얼마나 많은 종의 해양생물을 알고 있는지, 또 어느 정도의 영향을 그들에게 끼치고 있는지, 그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고, 그렇지 못했다면 앞으로는 어떤 것들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그런 사유를 품고 제주도로 향했습니다. 지금까지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들을 마주하기 위한 몇몇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연결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요.

프로그램이 있던 하루 동안, 저희는 지난 역사속에서 -그리고 현재까지도- 논담의 여지가 있었던 동물권 및 생태 이슈를 비인간 존재 역할카드를 통해 조사해보고 그 부조리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얼마나 많은 존재가 이 땅 위에서 각자의 삶으로 존재해왔는지 새삼스럽게 깨닫기도 하면서요.

그리고 제주도의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의 해양생태 감수성 교육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존재 할 것 없이 모두 지구의 주민들이며, 그 어느 것도 빠짐없이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며 그날의 활동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짧았지만 뜻깊은 시간을 통해 해양생물에 대해 한발짝 다가섰다는 조금의 위안도 받았는데요. 그 어스링스프로젝트 6월 이야기를 여러분께 전합니다.

(제주도에 있는 동안 모든 식사는 고통의 총량이 최소화된 비건식(VEGAN완전채식)으로 하여 우리 모두의 연결성을 공고히 하고자 했습니다.)

사방이 바다로 탁 트인 그 곳, '제주도'
 
신도리
▲ 제주도의 한 해안가 신도리
ⓒ 이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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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까진 신선한 회와 흑돼지 고기를 먹고 바다와 야자수를 배경으로 몸과 마음을 쉬게 하기 위해 방문했던 제주도. 하지만 지금까지의 여행과는 달리, 이번 제주행의 목적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해양생물과 바다, 그리고 지구의 원주민인 수많은 존재들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고찰해 보는 것.

지구의 70퍼센트가 육지 아닌 바다라는데 제게 바다란 '여름, 피서, 관광, 낚시, 해산물' 정도의 단편적인 이미지들로만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바다는 제가 알고 느끼는 것보다 수백, 수천배 이상으로 사람과 비인간존재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곳이자, 많은 생명이 살아가는 보금자리이자 반드시 지켜야하는 중요한 생태자원 중 하나였습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첫 시작은 뭍밑에서 드러나지 않는 비인간 존재가 이 지구에 이토록 많다는것, 그 이입의 시작에서 비롯되었는데요. 그 인식은 '비인간존재 역할카드'로 인한 보드게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 <비인간존재 역할카드> 
ⓒ 피스모모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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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연결, 비인간존재 역할카드

아직 얼굴도 외우지 못했고, 이름도 낯설지만 같은 이유로 모인 사람들이 난생처음 들어보는 보드게임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 게임은 동물권이 관련되어있다고 해요. 동물권과 보드게임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엮일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카드를 뽑고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저는 팔을 부여잡고 낑낑거리며 개소리를 내는 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존재를 표현하려고 했던 걸까요? 아픈 개? 죽어가는 개...? 아니요.

저는 아프고 죽어가는 개들을 위해 쓰이는 피를 뽑히는 개, '공혈견'의 카드를 뽑았습니다. 그리고 그를 표현하고자 몸짓과 소리를 내었습니다. 비교적 사람과 친숙한 동물인 '개'였기에 그 특징을 표현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네요.

다른 프로젝트원이 뽑았던 '상괭이', '덴마크 밍크', '스푸트니크의 쿠드랴프카', '산천어축제의 산천어', '경주마', '후쿠시마에 남겨진 고양이' 등에 비하면 '공혈견'은 참 쉬운 편이었죠.

다소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대체 무엇을 표현하려는지 알 수 없었던 손짓·발짓, 괴상한 울음소리에 모두가 얼굴에 미소를 띠었습니다. 

하지만 각자의 상황별로, 목적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착취되어 죽음을 맞이하는 비인간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 짧은 자료조사의 시간을 거치는 동안부터 웃음이 차차 잦아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어떤 존재이며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일생을 보냈을까요.    
  말의 일생을 그림으로 표현해보았다.
▲ 경주마의 일생   말의 일생을 그림으로 표현해보았다.
ⓒ 어스링스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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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우주에 갔던 개 '쿠드랴프카'
▲ 스푸트니크의 쿠드랴프카 최초로 우주에 갔던 개 "쿠드랴프카"
ⓒ 어스링스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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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사한 자료들을 토대로 그림을 그리고 발표를 하는 팀원들의 얼굴엔 착잡함이 가득했습니다. 이 동물들의 쓰임은 전부 우리 인간들의 생활과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좋든 싫든 간접적으로, 직접적으로 우리의 역사나 여가, 생활, 발전 등에 쓰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슬픈 깨달음이 또 있을까요.

그리고 이어진 두 번째 시간, '비인간존재 되어보기'였습니다. 공감과 이입을 토대로 도심으로 간 매미나방, 태국의 아기코끼리 점보, 명품회사 악어농장의 악어, 홍수를 피해 지붕으로 올라갔던 90310 이름표를 단 소, 호주 최악의 산불 이후에 태어난 새끼코알라…

수많은 사연을 지녔지만 이름 없이 살다간 존재들이 되어보는 시간은 낯설고 또 가슴 아팠습니다. 내가 아닌 존재에 대해 깊이 이입을 시도해 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간혹 있었던 이입의 대상은 나와 가까운, 내가 좋아하고 존중하고자 하는 '사람'이었죠. 이처럼 비인간 존재에 이입해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카드에 적힌 비인간존재에 '나라면…'이라는 접근법으로 그들의 삶을 짧게나마 생각해보았습니다.

씁쓸한 마음과 새삼스러운 충격을 받았던 역할카드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이날 일정의 하이라이트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희는 해양생태 감수성 교육을 들으러 서귀포시에 있는 제주돌핀센터로 향했습니다. 제주 지명이 들어갔기도 하고 센터라는 호칭에 도심 속에 있을 멀끔한 건물을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1층짜리 건물이 나타났고, 건물 벽면엔 화려한 색깔로 귀여운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자연 친화 소재로 직접 지었다는 곳도 있었습니다. 

단층짜리 건물을 휘감은 넝쿨들이 인상적이란 생각들 찰나에, 갓 바다에서 나온 것처럼 잠수복을 입고 온몸이 젖어있는 분을 마주쳤습니다. 알고 보니 그 분은 바다에 들어가 해양쓰레기를 줍고 나오는 활동을 하셨다고 하네요. 센터 곳곳에 있는 알 수 없는 플라스틱과 구조물들은 모두 바닷속에서 건진 것들이라고 합니다. 아직 제대로 된 교육을 듣기도 전에, 여행객으로서 방문한 저희가 만들어낸 쓰레기들이나 낭비한 자원들에 반성의 마음이 들어 멋쩍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실없는 웃음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제주도의 생태는 쉼 없이 방문하는 여행객들로 인해 적잖은 피해를 입고 있었으니까요.
 
    전제내용입니다.
▲ 핫핑크돌핀스 해양생태감수성 교육  전제내용입니다.
ⓒ 이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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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해양생태 감수성 교육이 시작되었습니다. 육지에서 온 저희는 당장 바다와의 감정적인(?) 접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이름을 짓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바다와 관련된 존재들의 이름과 나의 과거, 그리고 현재를 상징하고 추구하는 단어들로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이날 하루에 대한 문장도 만들어봤습니다. 각자 '자신'이 먼저 느끼는 것부터 시작하고 그 뒤엔 바다를 터전으로 삼는 해양생물에 관해 이야기 나눠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일 먼저 나온 것들은 단연, 우리 식탁 위로 음식으로 올라오는 해양생물들이었네요. 

이날 점심으로 먹었던 김을 포함하여 사람들이 즐겨 찾는 게, 연어, 캐비어, 새우...
광활한 바다에서도 피할 수 없는 착취와 오염이 점점 그들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몰아 세우고 있는 현실을 들으며 얼마나 많은 일들이 '내 일이 아니니까'로 넘어갈 수 있었는지 실감했습니다.

바다와 그 주민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단체, '핫핑크돌핀스'는 바다의 보존 및 해양생태계를 지키고 특히 멸종위기종인 고래류 등을 포함한 해양생물 전시와 포획에 대해 법률적인 제도의 정비와 개정 등을 위한 노력을 다방면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남방큰돌고래 해방운동으로 시작된 다년간의 꾸준한 목소리는 직접적인 성과로 나타나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너무나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바다는 넓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무도 모르게 지나갈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끊임없이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 할 이유였습니다.
 
  친환경화장실
▲ 제주돌핀센터의 생태화장실  친환경화장실
ⓒ 어스링스프로젝트-임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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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제주돌핀센터에서 실제로 사용되는 특별한(!) 화장실도 체험해보았습니다. 생명체라면 누구나 할 배설 활동을 자연의 순환으로 퇴비화하는 생태 화장실입니다. 편견이라면 편견이었을 악취나 벌레 없이 깔끔하게 유지되고 있는 화장실의 비결은 톱밥이었는데요. 도심속에서 상용화하기에 어려워 보였지만 그 의미는 남달랐습니다. 자연과의 공존을 위한 방법은, 찾아보면 찾는 대로 나올 수가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었으니까요.

교육을 마치고 신도리의 해안가를 걸었습니다. 남방큰돌고래의 서식지이기도 한 정읍 앞바다에선 운이 좋으면 야생돌고래를 마주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짧은 산책 시간 동안 돌고래를 볼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이 없었지만 계속 바라보다 보면 볼 수 있다는 듯 끝없이 펼쳐진 넓은 바다에 시선을 고정해 걸었습니다. 방금 교육을 듣고 온 핫핑크돌핀스가 그 어떤 가치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공감하고 싶어서도, 실제로 제주 연안에 사는 야생돌고래를 마주 하고 싶어서도 그 무엇이로든 간절한 마음으로요.
  
보트를 타거나 수족관에서 가까이 볼 수 있는것보다 엄청난 감동이 밀려왔던 순간
▲ 해안가를 걷다가 발견한 돌고래 보트를 타거나 수족관에서 가까이 볼 수 있는것보다 엄청난 감동이 밀려왔던 순간
ⓒ 이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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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결국 저희는 땅을 딛고 서있는 육지에서! 돌고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의 원주민인 돌고래가 스스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으니까요. 그저 멀리서 바라볼 뿐인데도 연결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야생동물이 꾸준히 그 자리에 존재한다는 것은, 그곳이 서식지로 삼을만한 환경에 적합하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이 바다는 제주 그 어느 곳보다 특별한 바다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저희는 그 순간의 기쁨과 설렘을 간직한 채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비행기로 제주를 떠났습니다.

해양생물을 마주하기 위해 방문했던 제주에서 코앞에서 직접 마주할 수 있었던 해양생물은 단 한 존재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입에 넣지도, 만져보지도, 가까이서 바라보지도 못한 '마주하기' 시간엔 더없이 많은 비인간존재, 해양생물들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마주하기'에 가치를 두길 바라며 6월 어스링스 프로젝트 기록을 마칩니다.

태그:#어스링스프로젝트, #핫핑크돌핀스, #해양생태감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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