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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이아무개씨(59)가 근무하며 사용한 여학생 기숙사 내 휴게공간 모습.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이아무개씨(59)가 근무하며 사용한 여학생 기숙사 내 휴게공간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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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청소노동자 한 분이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 날들을 너무 일찍 마감했다. 서울대에서 청소 노동자의 사망 사건이 일어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서울대 민주화 교수 협의회에서는 두 번씩이나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 데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919호관의 준공 연도는?"
"우리 조직이 처음으로 개관한 연도"
"관악 학생 생활관을 한문으로 작성하시오"
(청소노동자들이 치렀던 필기시험의 문제 일부)


"직장 내 관계 또는 지위의 우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서고,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업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경우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 (2019년 개정된 근로기준법)


"업무상 적정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노조 측에 따르면, 청소노동자에게 매주 치르게 한 서울대 측의 필기시험은 2~3개의 질문을 제외하고 대부분 청소 업무와 무관한 내용이었다. 청소 업무를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사안도 아니었다.

또한 시험 결과는 공개적으로 발표했다고 한다. 필기시험을 통해 모욕감과 수치심을 느낀 노동자들은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이 뿐 아니라 "미화팀 업무회의"에 참석할 때에는 드레스 코드까지 지정한 문자를 발송했다.

"정장 또는 남방, 최대한 멋진 모습으로."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짜리 건물을 매일 홀로 청소해야 했던 이씨. 코로나로 배달 음식이 불가피하게 늘어나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들고 날라야 했던 이씨는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선 시험들로 인해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대 관계자는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필기시험은 직무교육 차원에서 시행했지만, 문제가 있다고 보이므로 폐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문제가 된) 팀장의 발언 관련해서는 사실관계를 파악한 뒤 조처하겠"으며, "산재 조사에 성실히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고인이 된 이씨의 남편이 호소하던 한 문장이 가슴에 콕 박힌다.

"출근하는 가족의 뒷모습이 마지막이 돼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

능력주의의 뻔뻔한 거짓말

50대, 혹은 60대의 청소 노동자들이 영어와 한문을 못 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업체에서 그런 필기시험을 시행한 이유가 궁금하다. 이미 채용한 사람의 지식 수준을 파악하려 했던 목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시험 결과를 모두에게 공개하면 업체 측은 무엇을 얻는 것일까? 조금 더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조금 덜 아는 사람들을 타당한 명분 없이 함부로 평가할 권리가 있을까?

능력주의와 관련한 책들이 요즘 많은 사람들 사이에 회자된다. 마이클 샌들의 <공정하다는 착각>과 더불어 홍세화의 <능력주의와 불평등>에서 던지는 공통적인 질문들은 이런 것들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정말로 공정한가. 개인의 능력에 따라 차별하는 것은 정말로 공정한 일인가. 우리의 삶은 오로지 능력만이 작용하는가. 능력과 상관없는 요소들은 정말로 전혀 작동하지 않는가. 

내 인생의 모든 일은 전부 온전히 내 힘으로, 내가 가진 능력으로만 성취했노라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심지어 나의 탄생조차도 나의 능력이 아니란 사실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나의 오늘은 결코 나 홀로 이룬 것이 아니다. 지금의 내 모습은 수많은 사람에게 감사의 빚을 지며 일구어낸 행운 그 자체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감사가 넘치고, 그것을 깨달은 사람들의 성취와 업적은 타인에게 유익하다. 사랑의 빚을 진 사람들은 기꺼이 타인을 도우며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다. 감사하는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 자체를 빛나게 할 뿐 아니라 다른 생명들도 자라나게 한다.

이미 오랜 시간 동안 능력주의의 뻔뻔한 거짓말에 오랫동안 물들어 온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스스로 정당하다고 믿는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어떤 지위나 위치에 오른 사람들이 그만큼 노력하고 열심히 살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노력"만으로 모든 결과를 판단한다면, 일정 수준의 성취, 학력, 혹은 지적 수준이 갖춰지지 않은 사람은 '게으르다'란 평가로 이어지기 쉽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좌절한다면, 그들에게 필요한 건 "노력"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어떤 곳인지를 한 걸음 물러나 바라봐야 한다. 불공정한 이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길들여진 서열 속에서 스스로 합리화한 차별적인 마인드를 깨닫기는 쉽지 않다.

부하 직원을 위한 채찍질이라 합리화하며 인격적 모욕을 주는 상사, 아파트 평수와 굴리는 차량으로 편 가르기 하는 천박한 선배, 진료실에서 위압적이고 퉁명스럽게 환자를 대하는 의사. 그런 사람 한 번 안 만나본 사람이 있을까. 모두가 알만한 쉬운 영어와 쉬운 한문을 알지 못하면, 교양 없는 것일까. 정말 교양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능력에 따른 차등 대우"라는 말의 심각한 모순점을 발견하지 못하면 세상은 더욱 끔찍해질 것이다. 애당초 완전한 능력주의는 실현될 수 없다. 또한 완전한 능력주의는 철저한 계급과 서열에 따라 차별을 더욱 공고히 한다. 이러한 능력주의의 허점과 모순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공정한 차별"에 현혹된 삶을 살고 말 것이다.

조금 더 많이 아는 사람은 조금 덜 아는 사람을 도와야 한다. 조금 더 많이 안다는 사실이 자기 자신을 더욱 비인간적으로 만들고 누군가를 차별하게 한다면 그런 지식은 버려야 마땅하다. 그 어떤 이유로도 함부로 누군가를 차별하지 않고, 사람을 사람으로서 존중하는 사회는 서로가 서로에게 유익하다.

우리들 스스로가, 우리의 의식이, 우리의 말과 행동이 사회적 안전망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당신과 나를, 사랑하는 가족들을, 소중한 친구들을 빠른 죽음으로부터 구해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claire1209)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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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차 영어강사/ 번역도 가끔씩 - 문화예술인/ 시인 - 5년차 엄마사람 -디카시 공모전 수상 및 시부문 신인상, 우수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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