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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생명을 가득 담고 있는 제철 식재료를 먹는다는 것은 자연의 기쁨을 온 몸으로 느끼는 것. 계절도 생명도 드러나지 않는 무감한 매일의 밥에서 벗어나 가끔은 혼자서도 계절의 맛을 느껴보자. 철마다 나는 제철 채소를 맛있게 즐기는 법을 익혀 자연스레 채소 소비는 늘리고 육류 소비는 줄여 지구에는 도움을, 나에게는 기쁨을 주는 식탁으로 나아간다.[기자말]
 
살구
 살구
ⓒ 강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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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는 왜 이렇게 맛있을까? 또 자두는, 복숭아는?' 이런 생각을 하다 깨달았다. 나는 핵과류의 과일을 제일 좋아하는구나! 6월 말 우리집을 점령했던 매실도 핵과에 속하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정말이지 핵과류의 열렬한 팬이다.

핵과는 외과피(껍질)과 우리가 먹는 육질인 중과피, 단단한 심 또는 내과피의 삼중의 뚜렷한 층 안에 씨가 들어있는 열매를 가리키며 내과피의 딱딱한 핵 안에 씨앗이 있기 때문에 석과(Stone Fruit)라고 불린다. 매실과 복숭아, 자두, 살구, 올리브, 체리 등이 이 핵과에 속한다.

매실로 시작해 살구와 자두, 복숭아 그러니까 6월부터 8월까지의 여름은 핵과의 계절이다. 핵과 중에는 '딱복파'대 '물복파'로 나뉠 정도로 열렬한 팬층을 가지고 있는 복숭아가 역시 제일인 듯 싶지만 새콤달콤한 자두도, 역시 새콤달콤하지만 조금 더 가벼운 질감에 향긋한 살구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에 요즘은 맛있는 자두, 살구, 복숭아를 찾아 먹기만 해도 바쁜 때다.

그 중에서도 살구는 6~7월 두 달간만 반짝 나오고 사라지는 과일이기 때문에 더 소중하다. 복숭아와 자두는 품종에 따라 지금부터 9월초까지 계속 만날 수 있지만 살구는 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기간이 정말 짧다.

그나마 올해는 살구 작황이 좋아 시장 등에서 2주째 보이고 있지만 작년 같은 경우에는 작황이 안 좋아 도심 속 마트에서는 정말 반짝하고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이 잠깐의 기간이 아쉬워 살구가 나오면 살구 프리저브(병조림)나 잼이 만들고 싶어진다.
 
살구 과육
 살구 과육
ⓒ 강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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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과육이 커다랗고 보드라운 살구를 먹으며 '잼을 만들어야겠다' 생각을 하다가 다 먹고 남은 살구 씨앗을 보고 생각에 잠겼다. 살구 씨앗은 겉의 딱딱한 내과피를 쪼개면 그 안에 아몬드와 같이 생긴 진짜 씨앗이 들어있는데, 보기뿐 아니라 향도 아몬드 향을 닮았다.

칵테일이나 제빵용 리큐르로 사용되는 '아마레또 시럽'을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병에 그려진 살구 과육이나 살구 시럽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살구향이겠거니'하다가 막상 맛을 보면 은은한 아몬드 향이 풍겨 당황하기도 한다.

중국이나 일본 등의 아시아 지역에서 사랑받는 디저트 '행인 두부' 또한 오리지널 레시피의 원료는 살구 씨앗으로 만드는데 은은한 아몬드 향과 달콤함이 일품이다. 그러니까 살구 씨앗으로 향을 낸 무언가는 곧 아몬드향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살구 씨앗은 독성을 가지고 있다. 살구 뿐 아니라 복숭아나 매실 등 핵과류의 씨앗에는 시안배당체의 한 종류인 아미그달린 성분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 아미그달린은 그 자체로는 문제가 안 되지만 시안화수소, 즉 우리가 '청산'으로 알고 있는 맹독성 물질로 분해가 돼 주의해야 한다.

살구를 한자로 풀어쓰면 '살구(殺狗)', 즉 '개를 죽인다'라는 의미에서 살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살구의 씨앗 때문에 땅에 떨어진 살구를 먹으면 개가 죽는다는 섬뜩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그럴 수도 있다'는 주장 중 하나로 사실 살구의 옛말이 순우리말인 '살고'에서 왔다는 걸 생각하면 신빙성은 없다.

살구 속 성분 아미그달린은 아몬드에서 유래한 단어인데 본래의 재래종 아몬드에는 이 아미그달린이 너무 많이 함유되어 있어 식용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아몬드는 독이 적은 돌연변이 종이 갑자기 나타나 이를 먹어본 사람들이 개량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그렇다면 살구 씨를 가공해 만든 아마레또 시럽이나 행인 두부(지금은 살구씨 대신 아몬드를 활용하는 곳이 훨씬 많기는 하다)를 먹으면 위험한 걸까? 아미그달린 성분이 든 살구 씨앗을 생으로 한 번에 열 개 이상 섭취하지 않는 이상 적당히 섭취하면 약효를 지닌다고 해 한의학에서는 약재로 쓰이기도 한다. 또 살구 씨앗을 고온 처리해 만든 아마레또 시럽 등을 섭취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하지만 살구씨를 식품원료로 사용하는 것은 국내에서는 불법이다. 살구 씨앗을 몸에 좋다고 생으로 섭취하는 행위는 역시 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살구잼 끓이는 과정
 살구잼 끓이는 과정
ⓒ 강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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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는 살구 씨앗을 같이 끓이는 레시피들도 있지만 일단은 일반적인 살구잼을 만들기로 했다. 모든 잼이 그렇지만 살구잼 만들기의 가장 어려운 점은 무더위 속에서 잼이 냄비 바닥에 눌어붙지 않도록 불 앞에 계속 서서 잼을 저어주는 일이다.

하지만 살구의 향으로 가득찬 더위의 기억은 후각을 자극하는 달콤함과 주위를 둘러싼 후덥지근한 온도, 눈 앞 냄비 가득 들어간 노란색 등 모든 감각이 합쳐져 언제까지나 기억에 남을 것이다.

땀을 흘리며 만든 잼은 살구과즙이 입 안에서 팡 터지듯 상큼하고 달콤하게, 그 어느때보다 맛있게 완성되었다. 미국의 작가이자 비평가, 역사가, 여권운동가인 리베카 솔닛은 그의 에세이 <멀고도 가까운>에서 언젠가 어머니가 심각하게 아프기 시작하고 본인도 아프기 시작한, 살구 수확철과 맞물린 시기를 기억하며 이렇게 기록했다.
          
그 시기에 어머니의 상태는 어떤 것으로도 풀 수 없는,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동화 속의 저주처럼 느껴졌다. 그렇지만 살구는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대상이었다. 과일 자체를 처리하는 일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무언가 오래된 유산과 임무를 떠올리게 하는 하나의 비유 같았다. 하지만 무엇에 대한 비유였을까?
 
비참한 상황에서도 집 안 가득 쌓인 수확한 살구로 잼과 병조림을 하면서 그녀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살구잼을 병에 담고 있는 지금이 일년 후의 나에게는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잼을 만들었다. 잼을 만든다는 것은 한 시기의 기억을 병에 담는 일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할 수도 있으니 정말 멋지지 아니한가.
  
병에 담은 살구잼
 병에 담은 살구잼
ⓒ 강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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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구잼 만들기

- 재료

살구 2kg, 설탕 750g, 소금 1/2작은술, 레몬즙 1개 분량

- 만들기

1. 살구를 반으로 갈라 씨를 제거하고 과육은 설탕 500g과 소금을 넣고 잘 섞은 뒤 뚜껑을 덮거나 랩으로 씌운 뒤 설탕이 녹아들고 과육에서 물이 생길 때까지 1시간 가량 그대로 둔다.
2. 바닥이 두꺼운 냄비에 설탕에 섞은 과육을 옮겨 담고 중불에서 바닥에 눌어붙지 않도록 스패츌러로 잘 저어가며 30분간 끓인다.
3. 거품 크기가 커지고 농도가 끈적해지면 나머지 설탕을 넣고 한소끔 더 끓인다. 맛을 봐서 충분히 달지 않다 싶으면 설탕을 추가해도 된다. 뜨거울 때보다 병에 담겨 차갑게 식을 때 단맛과 신맛이 줄어들고 점도가 더해지니 맛을 볼 때 감안한다.
4. 레몬즙을 넣어 한소끔 더 끓인다. 차가운 물에 잼을 한 방울 떨어트렸을 때 잼이 지저분한 모양으로 흩어지지 않고 뭉쳐지면 잼이 완성된 것이다. 불에서 내린다.
5. 소독한 병에 뜨거운 상태로 담고 뚜껑을 닫은 뒤 잠시 거꾸로 둔다. 한 김 식으면 냉장 보관하고 다음 날부터 먹는다.


 
살구잼과 버터&바게트
 살구잼과 버터&바게트
ⓒ 강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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