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두괄식으로 주제를 말하고 있다. 사람에 비등한 지능과 형체를 갖춘 로봇은 사람과 동류인가 이류인가. 이류라면 어쩌다가 그것은 사람의 특성을 갖게 되었는가. 그럼에도 왜 그것은 이류 취급을 받는가.

애초에 인조인간이 왜 개발되었는지 이유를 찾아보자. 직관적인 답을 해보자면 사람이 좀 더 편하게 살기 위해서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을 불편하게 할 경우 존재 자체가 부정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조인간은 사실상 노예가 아닌가? 노예 제도가 존재하던 시대에 노예는 사람이면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 인조인간도 마찬가지다. 사람에 버금가는 지능과 신체를 가지고 있지만 결코 사람은 되지 못한다. 태생부터 부여된 사람의 종이라는 지위 때문에 말이다.

지정된 마음

여기서 종에게 부여된 임무는 물리적, 신체적 노동뿐 아니라 감정적 배출구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이 영화 속에서 로봇 아이가 등장하는 것도 그래서이다.
 
메카(로봇)에 고정된 나이 또는 성별을 부여하고 사람의 기대를 충족하게 설정하는 행위에는 두 가지 의미가 들어있다. 메카의 등급을 인간보다 낮게 책정함으로써 그것이 얼마나 정교한 창조물이든 상관없이 철저히 도구로 규정하는 것이 첫 번째이며 인간의 감정이란 것이 대단히 특별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조절 가능한 반응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두 번째이다.

영화 초반부에서 하비 박사는 '부모로 지정된 존재를 순수하고 영원한 마음으로 사랑해주는 로봇 아이'를 만들 것을 제안하는데 동시에 "이 메카는 뉴런이 반응하는 진짜 마음을 가질 것"이라고 말한다. 부모로 지정된 존재를 사랑하게끔 미리 설정을 해놓고 그것을 '진짜 마음'이라고 부른다면 도대체 진짜는 뭐고 가짜는 뭐란 말인가. 로봇 아이에게 사랑이란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잔인한 굴레밖에 더 되겠는가.
 
하비 박사의 설명을 듣고 있던 한 여자는 이렇게 묻는다. "로봇이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해준다면 사랑받는 사람은 그 메카에게 어떤 책임을 져야 하죠?" 한 마디로 메카가 무조건적으로 베푸는 사랑만큼 사람도 메카를 사랑할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이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메카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달성할 수 있는, 비교적 간단한 문제이다. 진짜 문제는 사람이다. 과연 사람이 메카를 사랑할 수 있을까?

 
 영화 < A.I >의 한 장면.

영화 < A.I >의 한 장면. ⓒ (주)워너 브라더스

 
 
< A.I >에 이분법적 사고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바로 진짜와 가짜이다. 여기서 진짜는 사람, 가짜는 메카 또는 장난감과 대응된다. 그렇게 짝 지어지는 이유는 판단 주체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주변 인물들은 데이빗을 규정짓는 방법을 살펴보자. 본인을 가리켜 '진짜 사람'이라고 말하는 마틴은 본인이 없을 때 부모님의 자식 역할을 대행했던 데이빗을 '슈퍼 토이'라고 부른다.

또한 마틴의 생일 파티 때 그의 친구들은 데이빗을 둘러싸고 우리는 생명이지만 너는 진짜 같은 메카일 뿐이라고 부른다. 아버지인 헨리의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아내인 모니카에게 데이빗을 두고 "그냥 장난감 로봇일 뿐"이라고 말한다. 나는 여기서 인류가 끊임없이 반복해온 차별의 역사가 여전히 반복되는 것을 발견했다.

사실 진짜와 가짜라는 가치는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메카의 입장에서 사람은 가짜 메카이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사람들이 메카를 가짜의 위치에 고정시켜놓는 이유는 그래야만 사람이라는 생명체가 의의를 가지기 때문이다. 잘 생각해보면 굉장히 익숙한 지배자들의 사고방식이다. 노예를 둠으로써 양반의 지체를 확보하고, 여성의 참정권을 제한함으로써 남성 중심적인 세계관을 유지하지 않았던가. 다시 말해서 사람이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지 않으려면 메카는 언제까지나 가짜의 범주에 속해야 했다. 그러한 사고방식이 바탕에 깔려 있기에 사람들은 메카를 다룰 때 윤리적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숲 속에 버려질 때 데이빗은 울먹이며 모니카에게 이렇게 말한다. "진짜가 아니라서 죄송해요. 기회를 주시면 진짜처럼 할게요". 그 전에 그가 매달리며 물었던 질문은 "피노키오가 진짜 사람이 됐듯이 나도 사람이 되면 집에 갈 수 있어요?"였다. 데이빗은 언젠가 모니카가 읽어주었던 동화 '피노키오'를 완전히 믿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피노키오가 사람이 되는 과정을 떠올려보면 어딘가 불편한 요소가 발견된다.

진짜와 가짜 사이

극 중에서도 드러나듯 파란 요정은 피노키오에게 '마음이 고우니까' 잘못을 용서해주겠다고 말하며 앞으로 착하게 살면 계속 행복할 거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사람이 되려면 '착하다'라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사람을 규정할 때 착한 존재라는 뜻을 떠올리던가? 현실적으로 착하든 그렇지 않든 모든 사람은 인권을 가지고 어찌 되었든 사람 취급을 받는다. 착해지면 사람이 된다는 명제 자체가 피노키오에겐 지독한 횡포인 것이다.

어쨌든 데이빗은 동화의 내용을 철석같이 믿으며 파란 요정을 찾아 헤맨다. 최첨단의 과학 기술로 탄생한 로봇이 사람조차 믿지 않는 동화를 사실로 믿는 아이러니야말로 이 영화를 관통하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비애가 아닐까 싶다.
 
< A.I >는 내레이션을 하는 화자가 따로 존재하는데 이로 인해 영화 전체가 또 다른 동화인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특히 데이빗이 파란 요정을 발견하고 그 앞에서 소원을 빌 때 등장하는 내레이션이 무척 시적이다. '파란 요정은 영원히 온화한 미소를 지었고 영원히 데이빗을 반갑게 맞이했다. (…) 얼음 속의 파란 귀신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고 언제나 미소 지으며 언제나 데이빗을 기다렸다'.

여기서 요정을 귀신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것이 실존하는 요정이 아니라 물속에 가라앉은 조각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데이빗이 요정의 마법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요정이 데이빗을 기다리는 것이라는 표현이 쓰인다. 조각상이 어떻게 소원을 이루어주겠는가. 한 자리에 꼼짝없이 붙박여 있는 처지인데. 하지만 데이빗은 바다가 얼어붙고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빈다.

그의 소원을 곱씹어보면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왜 데이빗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아니 메카가 어떻게 사람이 되겠는가. 존재론적으로 불가능한 소원인데. 차라리 엄마가 메카를 사랑하게 해주세요, 라고 비는 게 낫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소원이라면 꼭 요정의 도움이 없어도 모니카의 마음만 바뀌면 실현 가능한 소원 아닐까.

 
 영화 < A.I >의 한 장면.

영화 < A.I >의 한 장면. ⓒ (주)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영화의 종반부에서 데이빗은 그토록 원하던 모니카의 사랑을 받으며 영원의 시간 속에 잠든다. 그렇게 되기 전 중요한 변화를 짚고 넘어가야겠다. 데이빗은 자신을 살려낸 외계인으로부터 현실적인 이야기를 듣고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비는 대신 하루만이라도 엄마를 다시 살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데이빗은 엄마와 행복한 하루를 보내는데 이때 모니카는 데이빗을 메카나 사람으로 구분 짓지 않고 그저 아들로 대한다. 이런 행복한 결말에서 내 마음을 뒤흔든 건 테디였다. 그는 엄마와 함께 깊은 잠에 빠진 데이빗을 보고 털썩 주저앉아 고개를 숙인다.

이쯤에서 내가 가장 마음을 준 캐릭터는 데이빗보다 테디라는 점을 고백하고 싶다. 테디는 곰인형의 모습을 한 '한물 간 슈퍼토이'이다. 그는 데이빗처럼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지닌 로봇이 아니라 본인을 로봇이 아니라고 규정하는 로봇이었다.

테디의 남다른 등장을 돌이켜보자. 모니카가 데이빗에게 테디를 슈퍼토이라고 소개했을 때 테디는 곧바로 화를 내며 자신은 슈퍼토이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거기다 축제에서 데이빗과 떨어졌을 때 진행 요원은 테디를 분실물로 취급했는데, 테디는 보란듯이 상자에서 벗어나 스스로 데이빗을 찾아 나섰다. 그는 데이빗이 요정에게 소원을 빌 때도 쭉 곁을 지켰으며, 엄마를 되살리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고, 앞서 말했듯 데이빗의 행복하고도 슬픈 마지막을 지켜주기도 했다. 테디가 성인 목소리를 갖고 있는 것만 보아도 소년인 데이빗보다 곰인형인 그가 한층 성숙한 존재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반면 데이빗은 2000년이 지나도 여전히 동화를 믿는 소년에 머무른다. 그 책임은 모니카에게 있다. 모니카가 적어도 테디만큼만 데이빗을 대했어도 데이빗이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라는 명령어 없이도 데이빗을 사랑했던 테디만 보더라도 < A.I >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는 분명하다. 누군가 사람에게 사람이 아닌 존재가 필요한 이유를 묻는다면, 그것을 상대로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사랑이 얼마나 편협한 것인가 반성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줄 아는 우리가 돼보는 건 어떨까.
 
AI 영화 SF 리뷰 스티븐 스필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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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해지고 싶으면서도 다른 사람과 달라지는 것에 겁을 먹는 이중 심리 때문에 매일 시름 겨운 거사(居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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