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생후 59일 아들과 함께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 '출산 후 첫 등원'을 해 로텐더홀을 지나고 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생후 59일 아들과 함께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 "출산 후 첫 등원"을 해 로텐더홀을 지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관련사진보기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지난 5일 생후 2개월 아이와 '동반출근'했다. 두 달 전 대표발의한 국회법 개정안(24개월 미만 자녀를 둔 국회의원은 본회의장에 함께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의 통과도 촉구했다. 그런데 나는 이 법이 "그 어떤 곳이라도 아이와 부모가 함께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릴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에 격렬하게 공감하면서도,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이었다.  

둘째 출산 후 복직 3년을 채운 나조차도 '아이가 없는 것처럼 일하기'에 익숙해서일까?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법안 자체엔 반대하지 않는다. 이 법 시행에 큰 예산이 드는 것도 아니다. 50대 이상 남성이 절대 다수인 정치가 더 젊어지고 다양한 얼굴들로 채워진다면 정치인의 임신과 출산, 육아는 훨씬 흔한 일이 될 테고, 이 법이 필요한 이들은 늘어날 것이다. 그 바람직한 미래를 준비한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이다.

노회찬과 류호정 그리고 용혜인의 차이

그럼에도 왜 섭섭할까? 며칠 동안 곰곰이 원인을 찾았다. '아이동반법이 과연 이 땅의 수많은 엄마와 아빠, 아이들의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겠느냐'는 의심이었다.

정치인의 퍼포먼스는 개인의 활동에 그치지 않는다.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2017년 감사원 국정감사장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누웠던 까닭은 서울구치소 재소자 1인당 수용면적이 얼마나 좁은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지난 6월 16일 류호정 의원이 국회 잔디밭에서 등이 깊게 파인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포즈를 취했던 이유는 타투업법의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모두 정책 사안을 알리고, 사회적 공감을 얻기 위한 '쇼'였다.

용혜인 의원의 동반출근 역시 같은 취지다. 하지만 그의 퍼포먼스는 '엄마 용혜인'이 아닌 '엄마 용혜인 의원' 이야기로 그치고 말았다. 이 법의 적용대상은 국회의원에 머문다. 본회의장에서 아기 띠를 두르고 자유발언을 하거나 표결에 참여하는 국회의원의 모습은 내가 될 수 없다. 국회에서 좋은 일이 시작됐다고 전 사회로 퍼져나가리란 희망을 갖기가 쉽지 않은 게 한국의 현실이다. 용혜인 의원과 아이의 사진을 볼 때마다 마뜩잖던 이유였다.

일하는 삶도, 아이와 동행하는 삶도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은 진작부터 '한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프리카 속담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라고 호소했다. 세상이 더디지만 꾸준히 그들에게 응답하면서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이 이뤄졌고, 방과 후 돌봄교실이 생겨났다. 모성보호를 위한 고민이 깊어지고 성평등하게 양육을 분담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넓어지면서 남성 배우자의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여건도 나아지고 있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2017년 10월 19일 오전 서올 종로구 감사원에서 열린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지난 12월에 헌법재판소가 서울구치소 내 과밀수용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는데, 당시 수용자 1인당 가용면적은 1인당 1.06㎡(약 0.3평)에 불과했다”며 국감장 바닥에 1인당 가용면적인 신문지 2장반을 깔고 드러누웠다.
▲ 국감장에 신문지깔고 드러누운 노회찬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2017년 10월 19일 오전 서올 종로구 감사원에서 열린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지난 12월에 헌법재판소가 서울구치소 내 과밀수용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는데, 당시 수용자 1인당 가용면적은 1인당 1.06㎡(약 0.3평)에 불과했다”며 국감장 바닥에 1인당 가용면적인 신문지 2장반을 깔고 드러누웠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나는 그 '진보'의 수혜자다. 구구절절한 사연이야 있지만, 어쨌든 연이어 두 아이를 임신·출산한 뒤 각각 1년 정도 휴직했고, 인사상 불이익 없이 복귀했다. 누군가에게는 부러운 이야기다. 

최근에 만난 한 남성 지인은 "승진 등을 감안하면 아직은 육아휴직을 쓰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몇 달 전, 출산을 앞둔 여성 후배는 내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는 게 가능하냐.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육아휴직을 쓴다는 이유로 해고 당하다시피했다는 얘기를 들은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사실 국회의원조차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못 쓰는 나라 아닌가.

이런 현실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근본 원인은 노동시간이다. 한국은 OECD 통계에서 늘 '일 많이 하는 나라' 상위권이다. 장시간 노동이 당연한 문화는 '아이가 없는 것처럼 일하기'를 당연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 하나 둘 노동시장에서 밀려나고, 남겨진 사람들은 다시 '아이가 없는 것처럼 일하기'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그 결과 한국 여성의 고용률 그래프는 여전히 육아부담이 큰 3040 여성들이 버티고 버티다 직장을 떠났다가 육아부담이 줄어들면 다시 구직에 나서는 'M자' 모양이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서는 양육자와 아이가 안심하고 떨어져 지낼 시간도 필요하다. 코로나19로 공적 돌봄체계가 제 기능을 못하자 일하는 여성들은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육아·가사 분야 비경제활동인구가 약 16만 7천명 늘었다. 또 남성보다 여성의 고용률 하락폭이 크고, 취업 경험이 있는 남성 실업자 수는 전년 대비 변화가 없는 반면 여성은 5만 명 넘게 증가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긴급돌봄을 이용할 수 있던 나는 그저 운이 좋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함께 할 수 있어야 함께 갈 수 있다. 일하는 양육자와 아이에게 시간이 주어진다면 공간은 자연스레 생긴다. 또 엄마와 아빠의 노동이 멈추지 않고, 가장 사랑받고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이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사회가 만들어줘야 한다. 나는 나의 일에 온전히 집중하면서도 아이와 함께 사는 삶을 존중받을 수 있는 나라, 나의 노동이 나와 아이가 공유하는 시간을 침범하지 않는 세상. 이 모든 과제들은 국회의원의 '아이 동반 출근'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용혜인 의원은 "국회에 아기가 출입하는 것은 임신과 출산, 육아의 문제가 사회의 문제임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누군가는 그가 유아차를 끌고 국회의사당 중앙홀에 선 장면 자체만으로 새로운 고민을 시작했을 테다. 하지만 두 사람의 공간은 또 다른 엄마와 아기의 공간으로 뻗어 나갈 수 있을까.

태그:#용혜인, #아이동반법, #일가정양립, #노동시간, #돌봄
댓글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