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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리비언 베이의 아침
 캐리비언 베이의 아침
ⓒ 김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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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바나로

쿠바에서 맞는 마지막 아침. 비바람이 치던 어제와 달리 창밖은 화창했다. 이 정도 날씨라면 캐리비언 해의 아름다운 에메랄드빛 바다를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쉬울 뿐이었다. 뭐, 언젠가 다시 올 날이 있겠지.

쿠바에서의 마지막 아침 식사. 종업원들은 손님들이 먹고 난 이후의 접시를 치우느라고 여전히 분주했다. 심지어 옆에서 손님이 다 먹기를 기다리는 그들. 처음에는 워낙 부지런해서 그런 줄 알았지만, 착각이었다. 회전되는 접시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했다. 빨대를 재활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광경이었다.

안타까웠다. 이렇게 1등급 호텔에서도 물자가 부족하다면야 다른 곳에서는 뻔한 것 아닌가. 그러니까 쿠바 현지인들이 관광객들에게 비누와 세제를 구걸할 수밖에. 과연 이 부족 현상은 언제 끝날까. 미국의 트럼프가 물러난 지금은 사정이 좀 나아졌을까?

짐을 모두 싼 뒤 로비에 집합했다. 하나둘씩 모이는 일행들의 얼굴에는 진한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벌써 이렇게 쿠바 여행이 끝이라니. 꿈만 같았던 보름이었다. 그 어느 여행보다 짧고 굵었던, 그리고 사람 냄새가 물씬 났던 쿠바 여행.

현지 가이드와 작별 인사를 나눈 뒤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바라데로 해변을 뒤로 한 채 점차 속력을 올리기 시작하더니, 도심을 벗어나자 신나게 달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넓은 폭에, 차도 얼마 없어 한적한 풍경이었다. 약간은 낯선 분위기의 도로.

알고 보니 그것은 아바나와 바라데로를 잇는 쿠바 유일의 유료 고속도로라 '비아 블랑카'라고 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다른 것도 아니고 무슨 통행료를 받는가 싶었지만, 워낙 많은 해외관광객들이 바라데로를 찾다보니 쿠바 정부가 내린 쏠쏠한 결정인 듯했다. 하긴. 외국인과 국내인의 화폐 단위도 달리 하는데 통행료쯤이야.
 
 쿠바 토목공학의 7대 불가사의
 쿠바 토목공학의 7대 불가사의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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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쯤 지났을까. 버스는 다리 하나를 건너더니 휴게소에 정차했다. 으레 우리와 같은 고속도로 휴게소려니 하고 내렸는데 그 풍경이 압도적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바다를 배경으로 푸른 원시림이 펼쳐져 있었으며, 깊은 협곡 사이로 거대한 다리가 놓여 있었다. 지금까지 봐왔던 쿠바의 건축물과는 차원이 달랐다.

자료를 찾아보니 그것은 1959년에 만들어진 바쿠나야과 다리로 높이 110m의, 쿠바에서도 가장 높은 다리라고 했다. 쿠바 토목공학의 7대 불가사의라고 불릴 만큼 절묘한 위치와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데, 국내에서는 <1박2일>에서 소개한 바가 있다고 했다. 어쩐지 그냥 휴게소라고 하기에는 사람도 많고 규모도 크더라니.

그러나 풍경 구경도 잠시, 나를 비롯한 일행 일부는 그곳에서 쿠바 기념품들을 사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후 곧바로 공항 도착이라고 하니 쇼핑할 기회가 없었던 탓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도심에 나갔을 때 뭣 좀 살 걸. 럼주와 시가를 살 생각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한 선물을 새까맣게 까먹고 있었다. 그래도 쿠바씩이나 다녀왔는데, 뭔가 줘야지 않겠는가.

쿠바를 다시 방문한다면

버스는 어느새 낯익은 곳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보름 전 봤었던 아바나 국제공항이었다. 밤에 도착했을 때는 주변에 아무 것도 없고 휑한 느낌이었는데, 그래도 낮에 도착하니 사람도 붐비는 것이 쿠바의 관문다웠다.

그동안 동고동락했던 버스 기사와 작별인사를 한 뒤 공항으로 들어섰다. 그제야 쿠바를 떠난다는 사실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보름 동안 열심히 먹고 마시고 보고 떠들었던 쿠바.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시점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쿠바를 여행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이지, 아내의 말대로 전생에 나라를 구했으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낯설지 않은 쿠바 국기
 낯설지 않은 쿠바 국기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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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 다시 쿠바를 방문할 일이 있을까? 만약에 기회가 된다면 이번에 방문하지 못했던 쿠바 제2의 도시이자 혁명이 시작된 산티아고 데 쿠바를 들러보고 싶다. 이제는 나름 국제도시가 되어버린 아바나와 달리 쿠바의 정서가 그대로 살아있는 그곳에서 쿠바 현지인들의 삶을 느껴보고 싶다. 아바나에서 산티아고 데 쿠바까지 종주를 하는 것도 쿠바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일 것이다.

또한 산티아고 데 쿠바로부터 멀지 않은 관타나모 만 기지 역시 가고 싶은 곳 중 하나였다. 물론 가까이 가지도 못하겠지만 멀리서라도 그 모순적인 상황을 직접 보고 싶었다. 쿠바와 사이가 가장 나쁜 미국의 해군기지가 쿠바 본토에 있는 전경이라니. 우리로 치면 판문점 같은 느낌이랄까?

관타나모 만은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이 앞마당인 캐리비안 해의 안정을 위해 1903년 독립한 지 1년 밖에 안 되는 쿠바를 상대로 영구조차(租借)한 지역이다. 당시 미국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었던 쿠바는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이는 혁명이 일어난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게다가 미군은 그곳에 수용소까지 만들어서 국내도 국외도 아니라는 핑계로 수감자를 상대로 인권유린까지 벌이고 있는 중이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수속을 밟고 있는데 옆에서 어떤 한국인 일행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귀동냥으로 사연을 들어보니 코로나19로 인해 한국행 비행기 일정이 꼬인 듯했다. 우리가 한국을 떠난 이후로 코로나19는 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고, 대부분의 해외여행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예약한 대로 쿠바에서 멕시코를 거쳐 인천까지 가는 우리는 운이 매우 좋은 편이었다.

출국장에 들어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면세점이었다. 한국에서는 구하기 힘든 아바나클럽 럼주와 시가 등을 구입했다. 함께 만나서 술 마시거나 선물할 사람들을 생각하면 태부족한 양이었지만 정해진 수량을 준수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인해 함께 술이나 마실 수 있을지조차 애매했다.
 
 쿠바의 마지막 모습
 쿠바의 마지막 모습
ⓒ 김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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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비행기 탑승.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던 기체는 금방 이륙했고 창밖으로는 낯설지 않은 쿠바의 풍경이 펼쳐졌다. 꼴랑 며칠이나 됐다고 그 풍경이 이리도 눈에 익고 아쉽던지. 그만큼 쿠바가 매력적이었다는 뜻이겠지. 아듀 쿠바! 우리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까? 가능하다면 식구들과 함께 꼭 다시 찾고 싶은 쿠바였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멕시코시티를 들렀다. 보름 전만 하더라도 어떻게든 시내를 나가고 싶어 했던 우리였지만, 귀국 길에는 아무도 공항 밖을 나가겠다고 고집하지 않았다. 밤이 되어 치안도 걱정이었지만, 그보다 모두 지쳐 있었다. 공항 라운지에서 먹고 마시며 다음 비행을 기다릴 뿐.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은 멕시코로 올 때보다 더 길었다. 물리적으로 자전과 날씨의 영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심적으로 지루했다. 보름 전만 해도 들뜬 마음으로 쿠바와 관련된 영화와 책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일상으로의 복귀라는 무거움만 가득했다. 게다가 코로나19가 확산되었다고 하니 이전과 다른 세상과의 만남이었다.
 
 쿠바의 기억
 쿠바의 기억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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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가 넘어 이윽고 비행기는 인천공항에 도착했고, 우리는 귀국 수속을 밟았다. 코로나19 때문인지 공항은 더 삼엄하고 삭막한 느낌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이른 시간이라도 사람들로 북적였을 텐데 공항은 적막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 일행은 코로나19 시대, 거의 마지막 해외여행객이었다.

헤어지기 아쉬워 어쩔 줄 모르는 일행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뒤, 직접 차를 몰고 마중 나온 아내와 조우했다. 아직도 버킷 리스트로 쿠바 여행을 손꼽는 그녀. 이젠 내가 그녀에게 쿠바 이야기를 해줄 시간이다.

아듀! 쿠바.

태그:#쿠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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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지금은 비록 회사에 몸이 묶여 있지만 언제가는 꼭 공부를 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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