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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초의 소서(小暑) 절기는 농가에서 논매기를 하고 논두렁이나 밭두렁에 무성하게 자란 풀을 베어 퇴비를 장만하던 계절이었다. 임실 성수면 삼청리의 구곡 마을과 지사면 관기리 사이에는 한치재라는 고개가 있다. 이 두 마을은 장수 팔공산에서 분기한 영대지맥 산줄기에 서로의 등을 마주 기대어 서북쪽과 동남쪽에 위치한다. 

이 두 마을을 연결하는 고개인 한치재는 폭 3m의 임도다. 소서 절기를 며칠 앞둔 7월 첫 토요일(3일), 통영별로 지름길에 있는 임실의 한치재를 걸어 보았다. 옛날의 한치재는 조선 시대에 300년 동안 삼도수군통제영이 있는 한양에서 통영까지 오가는 통영별로의 지름길에 있는 고개였다. 고개 들머리 날머리 마을의 노인들은 경상도 선비들이 과거 보러 한양으로 가거나 개성 상인들이 통영으로 오가는 빠른 지름길이었다며, '영남대로'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다.
 
구곡 마을에서 통영을 목표로 한치재를 넘는 고갯길의 들머리다. 3m 폭의 임도로 포장이 되어 있다.
▲ 한치재 들머리 구곡 마을에서 통영을 목표로 한치재를 넘는 고갯길의 들머리다. 3m 폭의 임도로 포장이 되어 있다.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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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 성수면 삼청리 구곡마을에서 한치재 고갯마루까지 1.5km의 고갯길을 걷는다. 계곡을 따라 고갯마루까지 옛날의 고갯길을 따라 임도가 나 있다. 한치재 고갯마루는 매봉에서 옥녀봉으로 이어지는 덕재산 등산로를 만난다. 한치재 고갯마루에서 지사면 안하리까지는 2km의 내리막길 임도로 이어진다. 고갯마루에서 관기리 방향으로 바로 이어졌을 옛길은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

통영별로는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길

한치재 고갯마루는 해발고도가 320m 정도다. 왼쪽에 매봉으로 향하는 등산로 나무 계단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옥녀봉과 덕재산으로 향하는 등산로가 올라가고 있다.

삼도수군통제영은 300년 동안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삼도 수군을 지휘하던 해군본부였다. 임진왜란 때 초대통제사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진영이 최초의 통제영이다. 통영의 삼도수군통제영은 선조 37년 1604년에 설치되어 1895년에 폐지되었다. 통제영이 설치되면서 한양과 통영을 잇는 통영별로 또는 통영로의 길이 열렸다.
 
산마루의 잘록한 지형의 고개를 곧바로 넘었을 옛길은 흔적이 없고, 임도가 숲속에 비스듬히 길을 이루며 나있다.
▲ 한치재 원경 산마루의 잘록한 지형의 고개를 곧바로 넘었을 옛길은 흔적이 없고, 임도가 숲속에 비스듬히 길을 이루며 나있다.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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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 매봉으로 향하는 등산로 계단이 보인다. 산맥을 마루금을 따라가는 등산로에서 고갯마루는 말안장처럼 제일 낮은 지형이기 마련이다.
▲ 한치재 고갯마루 왼쪽에 매봉으로 향하는 등산로 계단이 보인다. 산맥을 마루금을 따라가는 등산로에서 고갯마루는 말안장처럼 제일 낮은 지형이기 마련이다.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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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에서 통영에 이르는 길은 두 갈래다. 통영별로는 한양에서 수원, 천안, 공주를 거쳐 삼례역에서 전주, 남원, 함양, 진주를 지나 통영에 이르는 길로 경상우로라고도 했다. 다른 한 갈래 통영로는 한양에서 용인, 충주, 조령, 문경을 거쳐 문경시 남쪽에 있는 유곡역(幽谷驛)에서 상주, 진해, 고성을 지나 통영에 이르는 길이다.

경상우도라고도 한 통영별로의 한양에서 수원까지는 조선 22대 왕 정조의 화성 순행 구간이다. 한양에서 남원까지는 일부 구간은 고전 소설 춘향전에서 이몽룡의 암행로가 된다. 전주에서 공주에 이르는 구간은 동학농민군의 진군로다. 한양에서 남원을 거쳐 운봉까지는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로다. 역사의 숨결을 통영별로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옛날 문헌에 의하면 통영별로의 거리를 986리로 산출하였다. 천 리 길이다. 전라도와 경상도 사람들이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통영별로를 통하여 서로 소통하고 화합한 길이었다.

장인들의 예술혼이 살아있는 길

한치재를 넘어서 임도는 지사면 안하리로 이어진다. 한치재 쪽을 바라본다. 산마루가 잘록한 고개를 넘어 관기리로 이어졌을 옛길은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임도가 숲속에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안하리로 이어진다. 이 마을의 한 노인은 50년 전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함께 소를 몰고 지금의 임도가 아닌 옛날의 한치재를 넘어 몇 시간을 걸어서 임실 장으로 소를 팔러 갔었다고 한다.

한양에서 삼례와 전주를 거쳐 통영에 이르는 통영별로는 임실 오원역에서 용은치, 마치, 오수역, 남원, 백두대간 여원치, 운봉, 인월로 이어진다. 이 길이 역참을 연결하는 관로(官路)다. 그런데 임실 오원역에서 용은치, 삽재, 한치재를 넘고 산서, 번암을 거쳐 백두대간을 넘어서 아영, 인월로 이어지는 지름길이 있었다. 통영별로 지름길 구간은 통영별로의 중간 거점인 남원을 경유하지 않는 샛길이었다.

한양에서 통영까지 약 400km인 천리 길을 하루 40km인 백 리씩 꾸준하게 걸으면 열흘 걸려 도착했을 것이다. 도보로 걷던 옛길의 경로를 충분히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통영별로의 임실에서 남원을 거쳐 인월까지 구간은 매일 백 리씩 걸어 열흘의 버거운 여정을 실행하는 나그네의 일정으로 하루에 걷기는 부담되는 거리였을 것이다.

임실에서 남원을 경유하지 않고 바로 인월로 향하는 통영별로 지름길은, 남원을 경유하는 통영별로 원래 길보다 5km 이상 짧은 거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통영별로의 지름길로서 임실에서 인월까지 구간으로 한치재, 번암을 거쳐 백두대간을 넘는 이 지름길을 쉽게 선택하였을 것이다.

통영별로는 통제영에 필요한 물품을 제작하여 공급하는 통영 12공방의 장인들이 많이 왕래하는 길이었다. 통제영 12공방에서는 통제영에 필요한 물품과 왕실의 진상품을 생산했다. 영조 정조 시대에 통영 12공방이 전성기를 이루었는데, 경상도 장인은 물론이고 전라도 장인들도 통영에 들어와 정착하여 활발한 문화 교류의 장이 되었다. 한양에서 통영으로 이어지는 통영별로는 장인들의 예술혼이 살아있는 길이었다.

조선 수군의 길이며, 장인과 상인들의 길
 
지사면 안하리의 농촌체험 휴양마을에 덕재산 등산로 종합안내도가 있다. 여기에 한치재가 가볍게 표기되어 있다.
▲ 덕재산 등산로 종합안내도 지사면 안하리의 농촌체험 휴양마을에 덕재산 등산로 종합안내도가 있다. 여기에 한치재가 가볍게 표기되어 있다.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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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재를 넘어서 지사면 안하리를 거쳐 관기리의 장군바위 터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아침재가 보이고, 서북쪽으로 1.4km 거리에 한치재가 있다. 통영에서 한양까지 천 리 길을 가는 나그네들이 이곳 장군바위 터에 도착하여 날이 저물면, 이곳 객줏집에서 하룻밤을 숙박하고 길을 떠나 한치재를 넘어갔다고 한다. 이곳 장군바위 터 부근이 지금은 농토가 되어 옛날은 흔적이 없다.

통영에는 유림(儒林)이 적었다고 한다. 군사도시 통영에는 무관들이 한양에서 파견되어 임기를 채우면 이내 떠나갔다. 통영에는 통제영 관아의 아전, 장인, 중인들이 상주하는 주인이었다. 통영에는 조선 시대에 기본적인 관학 교육기관인 향교도 없었다가, 1904년에야 생겼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 신분 질서의 틀 속에서 장인들은 인정받지 못하고 신분적 차별마저 심했다. 통영에는 유림도 세력이 없고, 신분 차별도 적어 개방적이어서, 통영을 찾아가는 장인이나 상인들은 희망과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통영별로는 장인과 상인들에게 생기 넘치는 길이었다. 통영별로는 300년 동안 200명 넘은 조선 수군의 삼도수군통제사가 한양에서 통영으로 부임하고 이임하던 조선 수군의 역사적인 길이었다. 통영별로는 조선 수군과 이순신 장군의 혼불이 살아있는 길이다.

힘들게 걷는 고갯길에서 사색이 깊어지고, 계곡의 물소리와 풀벌레 소리에서도 새로운 의미를 듣게 된다. 숲길은 푸른 생명력으로 출렁인다. 푸른 숲의 향기를 호흡하며 인고와 성숙을 체험하기 좋은 고갯길이다.
 
옛날 통영별로가 중요한 역할을 할 때는 관기리 장군바위 터인 이곳에 주막과 마을이 있어서, 길손들이 쉬어가고, 하룻밤 묵어가기도 했다.
▲ 관기리 장군바위 터 옛날 통영별로가 중요한 역할을 할 때는 관기리 장군바위 터인 이곳에 주막과 마을이 있어서, 길손들이 쉬어가고, 하룻밤 묵어가기도 했다.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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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통영별로, #통영별로 지름길, #임실 한치재, #관기리 장군바위 터, #삼청리 구곡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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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입니다. 향토의 역사 문화 자연에서 사실을 확인하여 새롭게 인식하고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여행의 풍경에 이야기를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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