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골키퍼 잔루이지 돈나룸마의 기억력과 분석력은 놀랍게도 마지막 순간에 빛났다. 야속한 11미터 승부차기 절정의 순간, 그 골키퍼 앞에 멈춰선 선수가 하필이면 후반전에 천금의 동점골을 터뜨린 알바로 모라타였기에 더 놀라웠다. 돈나룸마는 아마도 모라타의 인사이드 킥을 분석한 다음 그 방향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이 이끌고 있는 이탈리아 남자축구대표팀이 우리 시각으로 7일 오전 4시 런던에 있는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20 유럽축구선수권대회(EURO) 스페인과의 준결승전에서 연장전까지 1-1로 비긴 뒤 이어진 승부차기를 4-2로 끝내고 결승전에 올랐다.

모라타의 인사이드 킥 간과하지 않은 돈나룸마

한치의 양보도 없는 중원 싸움으로 새벽 축구팬들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준결승전이었다. 아무리 상대 팀을 잘 안다고 해도 후반전에는 틈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축구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빅 게임이었다.

60분에 이탈리아의 멋진 역습이 선취골로 이어졌다. 골키퍼 돈나룸마가 공을 굴려주면서부터 이탈리아의 역습 빌드 업이 왼쪽 측면으로 향했다. '베라티 - 인시네 - 임모빌레'로 이어진 패스 줄기가 매끄러웠다.

여기서 스페인 수비수 라포르테가 슬라이딩 태클로 키 패스를 차단했지만 이탈리아의 페데리코 키에사는 놀라운 집중력으로 그 공을 다시 소유했다. 그리고 좁디좁은 틈을 노려 오른발 감아차기를 기막히게 꽂아넣은 것이다. 스페인 골키퍼 우나이 시몬이 몸을 날리지도 못할 정도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준결승전이 여기서 끝날 수 없다는 듯 20분 뒤에 스페인의 멋진 동점골이 축구의 성지 웸블리를 뜨겁게 만들었다. 루이스 엔리케 스페인 감독이 실점 직후 들여보낸 골잡이 알바로 모라타의 골이었으니 더 극적이었다. 다니 올모와의 2:1 패스가 압권이었다.

그래서 이 게임은 연장전까지 이어졌고 끝내 더이상의 필드 골은 나오지 않았다. 스페인은 스위스와 만난 8강에 이어 연거푸 승부차기 긴장감에 사로잡혀야 했다. 

묘하게도 두 팀의 첫 번째 키커들이 골을 넣지 못했다. 이탈리아 로카텔리의 첫 번째 오른발 인사이드 킥은 스페인 골키퍼 우나이 시몬의 선방에 막혔고, 스페인 첫 번째 키커 다니 올모의 오른발 슛은 어이없게도 크로스바를 넘어갔다.

그 다음부터 나온 선수들은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정확하게 차 넣었고 스페인의 네 번째 키커 차례에 야속한 갈림길이 만들어졌다. 11미터 지점에 공을 내려놓은 선수는 알바로 모라타였고 그의 오른발 인사이드 킥은 이탈리아 골키퍼 돈나룸마의 슈퍼 세이브에 막혔다. 

골 라인을 박차고 자기 왼쪽으로 날아오른 잔루이지 돈나룸마가 모라타의 오른발 인사이드 킥 방향을 읽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골키퍼의 경우 상대 팀 주요 선수의 킥 성향을 기억하고 거기에 맞게 대응할 수 있어야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게임 동점골(80분)이 모라타의 발끝에서 나왔을 때 돈나룸마는 그 방향으로 몸을 날리지 못했다. 다니 올모와 알바로 모라타의 2:1 패스가 날카로웠고 모라타의 왼발 인사이드 킥 타이밍까지 완벽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중요했던 바로 그 순간 돈나룸마는 모라타의 인사이드 킥 동작을 보고 모라타에게는 오른쪽이며 자기에게는 왼쪽임을 직감하고 몸을 날렸다. 필드 골 실점 순간 모라타가 인사이드 킥을 안쪽으로 꺾어서 찼다면 아마도 이 방향으로 반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골키퍼는 바로 그 게임 상대 팀 핵심 공격수의 인사이드 킥 성향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지혜롭게 대응하여 뜻을 이뤘다.

실제로 모라타의 필드 골(왼발 인사이드 킥)과 승부차기 킥(오른발 인사이드 킥)에 사용한 발이 달랐지만 같은 종류의 인사이드 킥이 방향을 틀어 때리지 않고 밀어차는 정방향으로 뻗어간다는 것을 돈나룸마가 믿었던 것이다.

스페인 골잡이 알바로 모라타는 크로아티아와 만난 16강 연장전에 왼발 발리슛 골을 넣었을 때는 발등으로 강하게 찼고, 폴란드와의 조별리그 1-1 게임에서 VAR(비디오 판독 심판) 시스템으로 득점이 인정된 필드 골의 경우는 낮게 깔린 얼리 크로스를 오른발 인사이드 킥으로 성공시켰다. 바로 그 오른발 인사이드 킥이 골문으로 빨려들어간 방향이 이번 승부차기 네 번째 키커로 찬 그 방향과 같았다.

돈나룸마의 슈퍼 세이브 직후 이탈리아의 다섯 번째 키커로 나온 미드필더 조르지뉴는 마치 직전에 분루를 삼킨 모라타에게 한 수 가르치듯 상대 골키퍼 세이브 타이밍을 빼앗는 속임 동작 이후 오른발 인사이드 킥을 비교적 느리게 굴려넣으며 4-2 점수판으로 결승행을 확인했다.

이렇게 골키퍼 돈나룸마의 활약으로 이긴 이탈리아는 8일(목) 오전 4시에 열리는 '잉글랜드 - 덴마크' 게임 승리 팀과 우승 트로피를 놓고 이번 대회 마지막 게임을 펼치게 된다.

EURO 2020 준결승 결과(7일 오전 4시, 웸블리 스타디움-런던)

이탈리아 1-1 스페인 [득점 : 페데리코 키에사(60분) / 알바로 모라타(80분,도움-다니 올모)]
- 연장전 후 승부차기 4-2로 이탈리아 결승 진출!

이탈리아 선수들
FW : 로렌조 인시네(85분↔안드레아 벨로티), 시로 임모빌레(61분↔도메니코 베라르디), 페데리코 키에사(107분↔페데리코 베르나르데스키)
MF : 마르코 베라티(74분↔마테오 페시나), 조르지뉴, 니콜로 바렐라(85분↔마누엘 로카텔리)
DF : 에메르송(74분↔라파엘 톨로이), 조르지오 키엘리니, 레오나르도 보누치, 지오반니 디 로렌조
GK : 잔루이지 돈나룸마

스페인 선수들
FW : 다니 올모, 미켈 오야르자발(70분↔제라르 모레노), 페란 토레스(62분↔알바로 모라타)
MF : 페드리, 세르히오 부스케스(106분↔티아고 알칸타라), 코케(70분↔로드리)
DF : 호르디 알바, 아이메릭 라포르테, 에릭 가르시아(109분↔파우 토레스), 세자르 아스필리쿠에타(85분↔마르코스 요렌테)
GK : 우나이 시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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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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