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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자 일간지에 실린 대한의사협회 광고
 5일 자 일간지에 실린 대한의사협회 광고
ⓒ 대한의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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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 해도 너무한다. 이쯤 되면 '선민의식'에 중독돼 있다고 해야 할 성싶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이야기다. 물론, 우리나라의 모든 의사가 다 그렇진 않겠지만 언론이나 인터넷 포털 등에 반대 의견이 개진되지 않는 걸 보면 '초록은 동색' 같은 느낌이다. 

지난 5일 아침 여러 일간지에 의협에서 낸 광고 하나가 실렸다. 수술실에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 설치법안을 철회하라는 주장을 담았다. 우리 국민 열에 일곱여덟이 찬성한다는 그 법 말이다. 이는 여당의 유력 대통령 후보의 대표적인 공약이기도 하다.

자못 선동적인 광고인데, 내용을 뜯어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다. 우리 사회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라는 의협의 수준이 이 정도인가 싶어 혀를 차게 된다. 이 광고를 접한 뒤 의협을 두둔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 같다. 

생떼

"누가 책임질 것입니까?" 광고에서 의협이 반복한 질문이다. 법안을 발의한 여당과 정부가 책임지라는 뜻으로 읽힌다. '단 한 번의 해킹으로 한 사람의 평생이 무너진다'라며 CCTV 촬영으로 인한 수술 환자의 의료 정보 유출을 문제 삼았다. 

얼마 전 코로나 방역을 위한 체온 측정기를 통해 개인의 생체 정보가 유출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온 터다. 그걸 법안 철회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끌어들인 모양새다. 그런 논리라면, 생체 정보 유출이 우려되므로 코로나 발열 체크를 하지 말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진정 해킹의 위험이 걱정된다면, 그걸 막을 방안에 대해 정부와 머리를 맞대는 것이 먼저다. 뜬금없이 해킹 운운하며 법안에 흠집을 내려는 건 의도의 순수성을 의심케 한다. 광고를 본 지인들은 하나같이 '견강부회도 유분수'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의사들의 '방어 진료'로 '환자 사망과 필수 의료 붕괴로 이어진다'는 논리는 또 어떤가. 사실 이는 주장이라기보다 협박에 가깝다. CCTV 아래에서는 의사들이 '태업'을 하게 될 거라는 의미다. 이는 환자의 생명보다 의사 자신의 안위를 먼저 떠올릴 거라는 뜻이기도 하다. 

마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볼모로 생떼를 쓰는 꼴이다. 이는 법안 제정의 찬반을 떠나 환자를 대하는 의사의 품성과 자질의 문제다. 생뚱맞게 '방어 진료'라는 낯선 용어까지 내세워 법 제정을 막으려는 그들의 강퍅한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진료와 수술은 모든 의사의 소명이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진료와 수술 자체를 무기 삼아선 안 된다. 그런데도 수술실에 CCTV가 설치되면 의사는 '방어 진료'를 하게 되고, 그로 인해 환자가 사망하면 오롯이 정부의 책임이라고 겁박하는 의협의 뻔뻔함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마지막은 전가의 보도처럼 '글로벌 스탠다드'를 강조하고 있다. 수술실 CCTV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법을 부러 만들려는 이유에 대해 자문해보는 게 우선인데, 안타깝게도 그들에겐 성찰 능력이 없어 보인다.

의료 사고가 빈발하고 대리 수술이 횡행하며 환자 성추행 사건까지 벌어지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는 것이다. '최악의 인권 유린'이라며 발끈하는 건 흡사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모습으로 비칠 뿐이다. 끊이지 않는 의료 사고와 대리 수술, 환자 성추행이야말로 '최악의 인권 유린' 아닌가.

몽니
 
2020년 8월 1일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과 임원진이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4대악 의료정책' 철폐 촉구 및 대정부 요구사항 발표를 위한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의협은 5대 요구에 대한 개선조치가 없을 경우 제1차 전국의사총파업을 단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2020년 8월 1일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과 임원진이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4대악 의료정책" 철폐 촉구 및 대정부 요구사항 발표를 위한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의협은 5대 요구에 대한 개선조치가 없을 경우 제1차 전국의사총파업을 단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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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정책에 대한 의협의 막무가내식 '몽니'가 새삼스럽진 않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코로나가 확산일로였던 지난해에도 의대 정원의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을 추진하는 정부에 맞서 진료를 거부하고 나섰다. 전공의와 의대생까지 합세한 '의료 파업'을 주도한 단체가 의협이다.

당시 정부는 일벌백계를 외쳤으나 결국 처벌은커녕 의협과의 합의에 급급한 모습으로 흘러갔다. 감염병 위기를 핑계 삼아 '의정 합의'를 맺었지만, 이로써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계획은 사실상 물 건너가게 됐다. 진료 거부를 무기로 의협이 정부를 무릎 꿇린 모양새가 됐다. 

정부조차 무릎 꿇린 마당에 의협을 견제할 곳은 사실상 없다. 이해관계로 똘똘 뭉쳐 한 목소리를 내는 그들의 위세는 입법 기관인 국회의 권능조차 무력화시킬 태세다. 여론의 질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언론에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쏟아내는 의협의 기고만장함이 부러울 지경이다.

우리나라에서 과연 어떤 직능단체가 의협처럼 대놓고 정부와 '맞장 뜰' 수 있겠는가. 생존권 사수를 위한 농민들의 가두시위도,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집회도 불허하거나 공권력을 동원해 진압하기 바빴다. 그들의 절박한 외침을 언론은 무시했고 정부는 외면했다.

그들이 목소리를 내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다. 숱한 노동자들이 무기한 고공 농성과 단식 투쟁을 결행했다. 그렇게라도 해야만 그들의 요구가 언론에 한 줄이라도 실리기 때문이다. 온갖 탄압과 괄시 속에도 정부에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그들과 진료 거부라는 '도깨비방망이'로 정부를 길들이는 의협은 서로 다른 세상 사람들이다.

여론 조사에서도 찬성하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도 과연 이번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이들이 주위에 적지 않은 건 대체 무슨 연유일까. 국민 대다수가 바라는 법안도 의협이 막아서면 산통이 깨진다는 걸 익히 봐왔기 때문이다. 부결되거나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되기 일쑤고, 몇 해가 지나서야 비로소 통과되는 등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그나마 그때마다 의협의 요구가 대폭 반영되어 누더기가 됐다.

황당 광고 흑역사

어처구니없는 이번 광고를 보노라니, 의협의 이름을 내건 '공익 광고'들이 떠올랐다. 한 줄로 평하자면,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겠다'는 듯 몽니로 점철된 '흑역사'다. 자신의 이익을 조금이라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면, 그때마다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문구를 써서 광고를 냈다.

2012년엔 과잉 진료를 막기 위해 정부가 도입한 '포괄 수가제'에 반대하는 광고를 뿌렸다. 수익 감소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2016년엔 정부의 한의약 육성 계획에 반대한다면서 '국민의 생명은 정책 실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자극적인 문구를 내걸었다. 한방치료를 대놓고 폄훼하고 조롱한 것이다. 

같은 해, 의약분업의 폐해를 지적하기도 했다. 지난 2000년 의약분업에 관한 법이 통과될 때도 시끄러웠지만, 시행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의협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당시 의협이 낸 광고 문구는 이러했다. '의약분업, 환자는 골병이 들고 있습니다.'

2017년에도 의협의 몽니는 계속됐다. 한의사의 의과 의료기기 사용 허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자 기다렸다는 듯 광고를 냈다. 허용되면 '국민 건강이 한 방에 무너지고', '돈 앞에 안전이 무릎 꿇는 사회'로 전락하게 된다며 온갖 선동적인 주장을 쏟아냈다. 

2018년에도 한방치료에 대한 '저주'는 이어졌다. 의협은 한약 조제 시 원료 및 성분 표시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는 여론의 높은 지지를 받았으나 개운찮은 뒷맛을 남겼다. 한방치료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는 이런 광고 문구 때문이었다. '한약은 깜깜하다.' 

그해엔 의사들이 여론의 뭇매를 맞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대 목동병원에서 신생아가 사망하면서 담당 의료진이 업무상 과실 치사 혐의로 구속되는 매우 드문 일이 일어났다. 당시 사회적 이슈로 비화하며 의사에게 의료 사고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요구가 비등했다.

그때 의협은 되레 공격적으로 대응했다. 정부가 의사들을 '잠재적 살인자'로 간주하고 있다며, '의사들의 잠재적 범죄 행위를 중단하게 해달라'는 황당무계한 광고를 버젓이 냈다. 당시 의협 회장은 '의사를 구속한다면 중환자실을 떠나겠다'며 정부를 향해 대놓고 엄포를 놨다.

오늘도 의협은 멈추지 않는다. 그들은 입만 열면 '국민의 건강권'을 앞세우지만,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흰소리라는 걸 모르는 국민은 없다. 수술실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의 온전한 통과가 시금석이다.

태그:#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 #대한의사협회, #포괄 수가제, #의약분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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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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