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세종시 고용노동부 앞 피켓팅
▲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산재보험을 세종시 고용노동부 앞 피켓팅
ⓒ 민주노총

관련사진보기

 
나는 요즘 세종시 고용노동부 앞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산업재해(이하 산재)로 고통 받고 있는 노동자들과 농성 중이다. 최저임금 인상과 산재 노동자 투쟁이 분리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최저임금제도는 87년 민주화와 노동자 투쟁을 통해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싸워서 만들어낸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제도이다. 대통령선거 공약보다 더 근본적으로 생존을 위한 제도이므로 최저임금은 생활임금 수준이 되도록 강제해야 한다. 요즘 같은 코로나 위기는 불평등 구조를 심화시키고 있어서 '불평등 치료는 최저임금 백신으로' 이겨내자고 외치고 있다. 

최저임금 백신을 맞아야 할 불평등 구조의 아래를 차지하는 이들이 재난에 더 많이 희생되는 사회다. 그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33년 전 15세 문송면의 수은중독 사망과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투쟁은 현재까지도 산재사고 희생자들을 치료하고 추모하며 이어지고 있다.

삼성에 맞선 '반올림'의 10년 투쟁은 산재를 감추려는 기업의 범죄를 피해자가 증명해야 하는 잔인한 과정이었으며, '세월호 참사'는 국가에 의한 폭력을 정권 심판으로 책임을 물었다. 김용균의 죽음에 달려와 주었던 피해 가족들의 고통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고 죽음 위에 또 다른 죽음이 이어지는 것에 무서운 위기를 같이 느끼게 되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기업의 자율적 예방조치를 전제로 작동하기에 위험의 외주화를 막지도, 죽음의 행렬을 멈추지도 못하고 있다. '산재는 기업의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되고, 사회는 죽음의 대책을 근본적으로 요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경영책임자들은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대형 로펌과 계약하고, 사업의 지배 권력을 강화하던 것에서 사업장별 책임으로 분리하고 있다. 일터에 있는 노동안전보건 활동가들은 정부가 산재에 대한 근본적 대책을 방조하고 있다는 것을 일상에서 경험하고 있다. 

기다리다가 지쳐서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산재보험인가
 
세종시 고용노동부 앞 농성장 피켓팅
▲ 산재처리 지연으로 또 죽는다 세종시 고용노동부 앞 농성장 피켓팅
ⓒ 민주노총

관련사진보기

 
기업이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하고 위험이 방치되어도 노동자는 작업을 거부할 수 없다. 작업을 거부하는 순간 일자리를 내놔야 한다.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들은 더욱 그러하다. 그렇게 일하다 다치고 병든 노동자가 1년에 10만 여명이 산재를 신청하지만 산재 은폐로 신고조차 못하는 이들도 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여 재활 및 사회 복귀를 촉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산재를 신청받은 날부터 7일 이내에 결정하여 당사자에게 알려야 한다고 규정했다. 판정위원회 심의 절차는 의뢰받은 날부터 20일 이내, 부득이한 사유로 심의를 마칠 수 없으면 10일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한 차례만 연장할 수 있다는 시행규칙이 있지만 업무상 질병은 평균 172일이 걸리고 직업성 암은 처리하는 데만 334일이 소요된다. 

산재로 다치고 병들고, 산재 처리 지연으로 고통이 가중되는 현실이 14년째 방치되고 있는 것은 노동부가 행정기관으로서 법정기간조차 준수하지 않는 것을 방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혼자서 힘들어 법률가의 도움을 받고자 하면, 산재 브로커들이 산재 승인 성공사례비로 30~40%의 비용을 떼간다. 노동자 혼자서는 사회보장제도라는 산재보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신청하기도 어렵고, 처리 기간 지연으로 받는 고통을 감내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선보장 후평가' 방식으로 산재보험이 개혁되어야 한다. 

매일 산재로 죽는 노동자가 7명.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여 년 동안 매년 2400명씩 죽고 10만 명이 산재 처리 지연으로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산재가 날 때마다 죄인이 되는 심정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투쟁할 수밖에 없다. 산재 피해노동자가 혼자 고통을 감내하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용기 내라'는 말보다는 같이 싸우며 제도와 시스템을 바꿔야겠다. 개인의 용기보다 제도의 개혁이 필요한 시대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사)김용균재단 이사이자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위원회 이태의 위원장입니다.


태그:#산재보험, #산재처리지연, #고용노동부, #김용균재단
댓글

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