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KB금융 한국컬링선수권대회에서 3위를 차지했던 경기도컬링경기연맹 선수들. 왼쪽부터 정영석 스킵, 박세원 선수, 이준형 선수, 김정민 선수, 서민국 선수.

2021 KB금융 한국컬링선수권대회에서 3위를 차지했던 경기도컬링경기연맹 선수들. 왼쪽부터 정영석 스킵, 박세원 선수, 이준형 선수, 김정민 선수, 서민국 선수. ⓒ 박장식

 
2021 한국컬링선수권대회에서 올림픽 시즌 남자 컬링 국가대표 자리를 탈환한 경북체육회. 경북체육회 선수들을 만난 자리에서 팀의 '최고참' 김창민 선수가 가장 먼저 꺼낸 이야기는 뜻밖이었다. '우리 팀 칭찬' 대신 맞붙었던 상대 팀의 존속을 바라는 말을 이야기했던 것.

김창민 선수는 "우리 이후, 앞으로 다음 세대들을 위한 장이 마련되었으면 한다. 경기도컬링경기연맹 같은 좋은 선수들이 실업팀을 터서, 앞으로도 좋은 경쟁을 하고 싶다"고 말해줬다.

경기도컬링경기연맹. 지난해(2020년) 11월 경북체육회를 꺾고 비실업팀의 기적을 이뤄내며 국가대표 자리에까지 오른 팀 이름이었다. 스킵 정영석, 리드 이준형, 세컨드 박세원, 서드 김정민, 그리고 핍스 서민국에 이르기까지. 다섯 선수들은 여러 사연 끝에 '비실업팀 선수'로서 세계선수권 대회에 당당히 출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한국선수권에서 선수들은 아쉬운 결과를 마주했다. 1차 대회에서 결승까지 올랐지만 경북체육회에 패배한 데 이어, 2차 대회에서도 강원도청과 순위결정전까지 간 승부 끝에 패배를 거두며 국가대표와 상비군 자리를 모두 놓치게 되었다. 소속팀 없이 똘똘 뭉쳐 함께 해온 선수들의 앞길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기적이 일어났다, 그리고 기적을 만들어냈다

컬링장 강습,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활을 유지해왔던 선수들이었다. 고등학교,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컬링을 해왔고, 주니어 국가대표로 태극마크를 달았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실업팀'과 아닌 것의 간극이 너무나도 컸다. 국가대표 선발전이나 상금이 걸린 국내대회에서는 우승은 커녕 입상을 하지 못하는 일도 적잖았다. 

그래도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선수들은 한국선수권대회에서 경북체육회를 꺾고 극적인 우승을 이뤄냈다. 생애 첫 태극마크, 다시 말해 국가대표 수당을 받으며 생애 처음으로 걱정 없이 컬링을 할 수 있었던 순간이 온 것.

선수들은 강원도청과의 계약이 만료된 서민국, 김정민 선수와 함께 세계선수권 진출을 위한 맹훈련에 돌입했다. 나이도, 거쳐온 길도 다르지만 선수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같은 지역에서 컬링을 하며 자라왔다는 것, 그리고 의정부고등학교를 함께 나와 지금까지도 컬링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2021 남자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캐나다를 꺾고 대회 최대 이변을 써냈던 경기도컬링경기연맹 선수들.

2021 남자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캐나다를 꺾고 대회 최대 이변을 써냈던 경기도컬링경기연맹 선수들. ⓒ 세계컬링연맹 제공

 
그렇게 선수들은 생애 첫 국제대회를 캐나다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로 출전했다. 쉬운 대회는 아니었다. 첫 대회에서부터 노르웨이, 스코틀랜드 등 세계적인 강호들을 상대한 선수들은 초반 5연패에 빠졌다. 하지만 네덜란드를 상대로 첫 승을 거두고, 이어 캐나다와의 경기에 일임한 선수들에게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선수들이 '컬링 최강국' 캐나다와 맞붙은 경기에서 10-9로 승리를 거둬낸 것이었다.특히 이 경기는 늦은 밤 한국을 포함한 세계에도 생중계되었던 탓에, 이들이 날린 일격은 파장이 적잖았다. 국제컬링 네트워크인 'Everything Curling'에서도 지난 시즌 최대 이변의 경기로 꼽았을 정도였다. 선수들은 생애 첫 세계무대 출전에서 어떤 순위보다도 귀중한 경험을 쌓고 돌아올 수 있었다.

1차전 2위, 하지만 2차전 4위... 아쉬움 남긴 마무리

선수들은 남은 국가대표 역임 기간동안 컬링에 매진했다. 선수들의 목표는 '단 1년이라도 편하게 컬링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그렇기 위해서는 국가대표 2연패 내지는 국가대표 상비군에 임명되는 것이 필수와도 같았다. 국가대표와 상비군은 훈련 수당이 나오기에 적어도 걱정 없이 컬링을 이어갈 수 있다.

선수들은 6월 열린 한국선수권대회 1차전에서 적잖은 힘을 쏟아부었다. 결과는 전승으로 결승까지 진출이었다. 하지만 상대 경북체육회 역시 만만치 않았다. 경험으로 무장한 선수들이 팀을 꾸리고 있었다. 선수들은 결승전에서 경북체육회에 아쉬운 석패를 당하며 2위로 1차전을 마무리했다.

1차전에서 너무 많은 힘을 쓴 탓이었을까. 선수들은 2차전에서 연패에 빠지며 기량을 회복하지 못했다. 하지만 변수가 남았다. 2차전에서 경북체육회가 우승을 거두면 국가대표 상비군에 임명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 실제로 2차전의 우승을 경북체육회가 가져가면서, 선수들에게 상비군으로의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다.

3일 열렸던 국가대표 상비군 결정전에서 선수들은 강원도청을 만나 분투했다. 하지만 결과는 강원도청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선수들은 최종 순위 3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후배 선수들이 '돈 안 받으면서 컬링하냐'고 물을 때..."
 
 2021 KB금융 한국컬링선수권대회에 출전한 경기도컬링경기연맹 선수들의 모습.

2021 KB금융 한국컬링선수권대회에 출전한 경기도컬링경기연맹 선수들의 모습. ⓒ 박장식

 
모든 대회가 끝난 후 만난 선수들은 잔잔한 분위기 속에서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팀의 막내 이준형 선수는 "마지막이 될 수 있는 무대였기에 열심히 했는데, 3위로 대회를 마감해 아쉽다. 다섯 명이 함께 1년 더 걱정 없이 컬링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너무나도 아쉽다"라고 대회 성적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팀의 맏형 서민국 선수 역시 "1차전 경기력이 너무 좋았다. 너무나도 잘했다"면서 지난 성적을 칭찬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어려울 때 특히 웃음을 끝까지 잃지 않았다. 좋지 못한 상황일 때도 서로 다독여주곤 했다. 사실, 그래서 어느 팀보다도 팀워크가 좋았다고 생각한다"며 선수들의 다른 강점도 칭찬을 했다.

정영석 선수 역시 "모든 팀원에게 감사하다. (서)민국 형과 (김)정민 형이 팀 분위기도 풀어주고, 결과가 좋지 못할 때에도 자책하기보다는 칭찬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어서 고맙다"라고 대회 소감을 전했다. 특히 지난 국가대표 기간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팀 안팎으로 추억을 많이 쌓았습니다. 많은 경험도 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제 개인으로도 단단해진 계기가 되었죠. 특히 누구도 하지 못하는 국가대표의 자리에 올라서, 컬링을 걱정 없이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선수들의 바람은 경기도 내 남자 컬링 실업팀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이유에는 개개인의 절실함도 있겠지만, 특히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컬링이 우리에게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며 말문을 뗐다.

서민국 선수는 "당장 우리가 좋다고 할 수 있겠지만, 실업팀은 후배들에게 더욱 의미가 크다. 당장 의정부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컬링부가 있는데 남자 대학팀은 커녕 실업팀도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서민국 선수가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가 대표팀 경험까지 했잖아요. 그런 형을 보고 후배들이 열심히 할 텐데, 그런데도 '컬링이 직업이 될 수 없다'라고 한다면 후배 친구들에게 어떤 인상이, 어떤 희망이 남을까요. 당장 실업팀 하나 못 겪어봤던 세원이나 준형이, 영석이 같은 선수들은 후배들에게 희망이 되어주는 선수예요.

가끔 후배 선수들이 '진짜 돈 안 받으면서 운동하는게 맞냐, 왜 그러냐'고 물어볼 때가 많아요. 그때 무어라 이야기할 방법이 없어요. 선진국들처럼 '투잡'을 뛰고 일하면서 컬링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싶어도, 직장에서 그런 것이 어렵다고, 연차 쓰는 데도 어려움이 생겨서 직장을 포기한 적도 많아요."


서민국 선수는 "그래서 선수들을 위해서라도 우리의 사례가 좋은 결과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다행히도 도 연맹 회장님께서 실업팀 창단 등에 대해 열심히 노력하면서 움직이시니만큼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희망을 표했다. 
 
 2021 KB금융 한국컬링선수권대회에 출전한 경기도컬링경기연맹 선수들의 모습.

2021 KB금융 한국컬링선수권대회에 출전한 경기도컬링경기연맹 선수들의 모습. ⓒ 박장식

 
선수들은 아직 남은 기회를 준비한다. 모든 선수에게 문호가 열린 믹스더블 국가대표 선발전이다. 2019-2020 시즌 국가대표였던 경기도청 여자 선수들과 함께 대회를 준비한다는 것이 선수들의 계획이다. 정영석 선수는 "(이)준형이는 설예은 선수와 팀을 이루고, 박세원 선수는 설예지 선수와 함께 한다"며 귀띔을 해줬다.

김정민 선수와 박세원 선수 모두 "믹스더블 출전은 처음이지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며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이다. 박세원 선수는 "믹스더블 대표 선발전 결과가 나쁘게 나온다면 그 이후가 미정"이라며, "우리도 우리의 앞길을 잘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서민국 선수는 "믹스더블 선발전이 끝나면 휴식을 취하고 싶다. 좋은 연락이 있지 않을까 기대를 걸고 있다"라며 이야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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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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