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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평화도서관을 여는 일을 하면서 그림책을 즐겨 봐요. 그림책을 보다 보니 아이들이 보는 짧은 이야기책도 간간이 읽죠. 제 눈높이가 아이들 눈높이와 비슷해서 그럴까요?

이번에 손에 든 책은 <충분히 존경받을 만해>이에요. 흔히 우러를 만하다고 하면 빼어난 이들을 떠올리기 쉽잖아요. 그런데 이 책 표지에 실린 낯빛들이 다 우리 둘레에 있을 만한 사람들이에요.
  
 / 임서경 글, 이은경 그림 / 단비어린이 / 값 12,000원
▲ 충분히 존경받을 만해  / 임서경 글, 이은경 그림 / 단비어린이 / 값 12,000원
ⓒ 단비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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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초등학생이라고 해도 속을 만큼 어려 보이지만 마음결이 고운 이 아이, 저 할머니를 보듬는 선생님, 재활용품 공장에서 유리병을 되살려내는 일을 하는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 마트에서 일하면서도 꿈을 잃지 않는 아줌마, 물길과 숨길을 터주는 할머니 등의 얘기가 나와요. 남다를 것이 없이 고만고만한 이들이죠. 그런데 글쓴이는 이 사람들이 존경받을 만하다고 말해요. 어째서 무엇이 그리 우러를 만하다는 말일까요?

사실 제목만 언뜻 봤을 때 빼어난 사람 이야기를 담지 않았을까 살짝 걱정했어요. 위인전은 딱 질색이라서요. 이따금 위인전을 볼 때마다 거북했어요. 날 때부터 빼어나서 저 같은 사람은 아무리 몸부림쳐도 그만큼 될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데요. 프랑스 학교 도서관에는 위인전을 꽂아두는 책꽂이가 없대요. 왕정이던 프랑스를 민주주의로 돌려세운 사람들은 빼어난 영웅이 아니라 고만고만한 여느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래요. 그런데 이 책에서도 존경받는 이들은 다 아무렇지도 않은 여느 사람들이라서 깜짝 놀랐어요.

중편 주인공 가운데 제가 깊이 다룰 사람은 바로 '재활용 박사'예요. 왜 하필 재활용 박사냐고요? 세 나라 시대 그러니까 백제, 신라, 고구려 사람들은요 오경박사 그러니까 공부를 많이 한 사람도 박사라고 부르지만, 기와를 잘 빚으면 '와 박사', 종을 잘 만들면 '주종 박사'라고 할 만큼 솜씨 좋은 이들을 떠받들었대요.

저는 초등학교만 나왔을지라도 맛있는 짜장면을 만드는 이는 '짜장 박사', 누구보다 청소를 깨끗이 잘하는 사람은 '청소 박사', 바느질 잘하는 사람은 '바느질 박사'라고 부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재활용 박사'라니 깜짝 놀랐어요.
  
/ 재활용품 공장에서 일하는 아빠와 아들
▲ 재활용 박사 / 재활용품 공장에서 일하는 아빠와 아들
ⓒ 단비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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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 박사는 사고로 다리를 다쳐서 절어요. 그 사고로 아내도 잃고 아들과 둘이 살아요. 재활용품 공장에 다니다 보니 한동네 사람들이 재활용 쓰레기를 잘 가려 내놓지 않으면 목청을 높이곤 해요. 밉상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만큼. 아들 이름이 이로운이에요.

로운이는 아빠가 다른 사람 눈총을 받으면서까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이 아빠, 아들하고 약속을 번번이 어겨요. 낮에는 재활용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대리운전하러 나가거든요. 또 쉬는 날이면 재활용품이 쌓인 곳에서 아파트 경비아저씨를 도와 재활용품을 가려놓고요. 그러는 틈틈이 동네를 돌면서 분리수거가 잘되는지 구석구석 살피곤 해요.

밤낮으로 일하느라 틈내기 어려운데 마을일 까지 나서서 하다 보니 아들하고 한 약속을 밥 먹듯이 어길 수밖에요. 로운이에게 여름방학에 워터파크랑 놀이동산에 꼭 가자고 한 소리도 흰소리가 되고 말았지 뭐예요. 개학 첫날, 로운이는 속이 무척 상했어요. 왜냐고요. 다른 아이들은 다 햇볕에 그을려서 살갗이 까무잡잡하게 빛나는데 저만 하얬거든요.

그러나 분리수거를 배우는 시간에 종이는 모두 재활용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반 아이들이 다 "네!" 하고 대답했어요. 로운이만 생각이 달랐어요. 로운이는 손으로 찢어지는 것만 분리수거해야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려야 한다고 말했어요. 종이 겹 사이에 비닐이 들어 있는 종이는 잘 찢기지 않는다면서요. 선생님은 손뼉 치면서 로운이를 재활용 박사라는 불렀어요. 로운이, 신바람 났겠지요?

아, 재활용 비법 하나 알려 드릴까요? 로운이가 알려준 건데요. 되살려 쓸 수 있는 비타민 음료병 따위를 뚜껑을 닫아서 버려야 한대요. 그래야 병 주둥이가 깨지지 않는다는군요.
  
/ 손이 닿기 힘들지?
▲ 할머니는 손을 잇는 사람이야 / 손이 닿기 힘들지?
ⓒ 변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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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 숨길' 꼭지에서는 할머니가 목욕탕에서 때를 민다는 것을 알고 낯뜨거워하는 아이한테 엄마는 등 뒤로 손을 맞잡아 보라고 해요. 애를 써도 잘 잡히지 않아 바둥대는 아이에게 엄마는 할머니는 혼자서 등을 밀 수 없는 사람에게 손을 잇는 노릇을 한다고 하면서 혼자 때를 밀 수 없는 아픈 사람들에게도 할머니 손이 필요하다고 말해 줘요.

그러고 보니 마음과 마음을 잇는 택배기사는 견우와 직녀를 만나게 하는 오작교 같은 사랑 전령사, 바느질하는 사람은 더위와 추위를 막아주는 보금자리 같은 이, 종이상자를 걷어가는 할머니는 숲을 살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책을 덮으면서 나에 'ㅁ'을 받친 '남'이라는 말을 떠올렸어요. 이 책에서는 궂은일도 마다치 않고 받쳐주고 아울러 주는 '남'들이 나를 살린다고 말하잖아요. 나 또한 누구에겐가는 살리는 '남'일 수 있을 테지요? 

충분히 존경받을 만해

임서경 (지은이), 시은경 (그림), 단비어린이(2021)


태그:#충분히 존경받을 만해, #임서경,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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