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고 끝에 악수'라는 말이 있다. 학교폭력 논란의 소용돌이 휩싸여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여자프로배구 쌍둥이자매 이다영-이재영과 흥국생명 구단을 두고 하는 말이다. 흥국생명은 쌍둥이를 다음 시즌 선수로 등록하려다가 여론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철회했다. 이다영-이재영은 피해자들에 대한 법적 소송에 이어 언론에 나서서 뒤늦게 자신들의 입장 해명에 나섰지만 오히려 입을 열수록 여론만 더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재영, 이다영은 지난 2월 학창 시절 학폭 가해자였음이 드러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소속팀이었던 흥국생명은 무기한 출전정지 징계를 내렸고, 대한민국배구협회는 국가대표 자격 박탈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두 선수는 SNS에 자필 사과문을 올리고 배구 코트에서 모습을 감추며 자숙의 시간에 들어갔다.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던 흥국생명은 쌍둥이의 공백을 절감하며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에서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그로부터 4개월 뒤, 잠잠하던 쌍둥이 자매의 행적이 다시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흥국생명이 두 선수의 선수 등록을 추진한다는 소식과 함께, 해외리그인 그리스로의 임대 이적설도 나왔다. 흥국생명은 두 사람에 대한 선수 등록을 하지 않을 경우 두 명 모두 FA(자유계약선수)로 풀리기 때문에 선수 보유권과 징계 유지 차원이라는 나름의 명분을 제시했다.

그러나 여론은 흥국생명의 행보를 선수활동 복귀와 우회적인 징계 해제를 노린 '꼼수'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고 일부 팬들은 트럭시위, 흥국생명에 대한 온라인 불매운동 등으로 행동에 나서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싸늘한 여론을 절감한 흥국생명은 결국 선수등록마감일인 지난달 30일 구단주 명의 입장문을 통해 공식 사과와 등록 철회를 밝혔다.

이로써 쌍둥이 자매는 지난 1일부로 자유계약 신분이 됐다. 명분상으로는 어느 팀으로든 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두 선수를 영입할 국내 팀이 나오기는 어려워 보인다. 흥국생명이 지난 4개월여간 쌍둥이 자매로 인하여 얼마나 큰 후폭풍에 시달렸는지는 배구계 모두가 똑똑히 목격했다. 남자프로배구에서 학폭 논란을 수습하고 코트 복귀의 길이 열린 박상하나 송명근의 사례도 있기는 하지만 이다영-이재영 자매에게 쏟아지는 주목도와 비판 여론은 이들과 차원이 다르다. 두 선수를 향한 여론에 극적인 반전이 없는 한 당분간 비난을 자초하면서 영입을 시도하는 구단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된 원인은 바로 흥국생명과 쌍둥이 자매의 자충수에 있다. 애초에 학폭 논란이 처음 터졌을 때부터 문제를 바로잡고 해결하겠다는 진정성을 보여주기보다는 어떻게든 사태를 축소하고 무마하는 데만 급급했다. 그 여파로 이제는 흥국생명과 쌍둥이 자매의 관계 역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듯한 모습이다.

이다영-이재영 자매는 최근 SBS-KBS 등과의 인터뷰를 통하여 흥국생명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쌍둥이 자매의 폭로에 따르면 애초에 자필 사과문이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흥국생명 구단의 강요로 작성됐으며, 사실관계를 바로잡고 싶어서 해명하는 것도 구단이 막았다고 주장했다. "소명하고 싶어도 구단이 괜히 시끄럽게 하지 마라. 이미지 생각해달라.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해서 구단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게 쌍둥이 자매의 입장이다. 흥국생명은 쌍둥이의 폭로에 별다른 대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쌍둥이가 저지른 학폭의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이 부분은 명백한 흥국생명의 패착이다. 이런 사건은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 쌍둥이의 학폭 가해 사실 자체는 바뀌지 않더라도 해명 여부에 따라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여론에 쫓긴 듯한 억지 사과는 오히려 그 성의와 진정성에서 의구심만 낳았고, 쌍둥이를 향해 쏟아지던 수많은 검증되지 않은 폭로와 루머까지 모두 사실로 인정해버린 듯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선수와 피해자의 입장을 진심으로 생각했기보다는 구단이 받을 타격만 모면하려던 흥국생명의 대응은, 결국 팬심과 쌍둥이 자매로부터 모두 신뢰를 잃는 결과로 이어졌다.

흥국생명은 이번 사태로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이번 사건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구단의 무능한 대처가 도마에 오르며 모기업의 이미지까지 큰 타격을 받았다. 쌍둥이가 떠났다고 해서 끝난 문제가 아니라 구단 차원의 근본적인 쇄신안이 필요해 보이는 대목이다.

또한 쌍둥이의 최근 행보를 보면, 왜 흥국생명 구단이 이들의 해명이나 입장표명을 막았는지도 어느 정도 납득은 된다. 피해자들의 폭로에 대하여 "칼은 들었지만 찌르지는 않았다" "돈은 걷었지만 뺏지는 않았다" "반성은 하지만 소송은 한다"는 쌍둥이의 해명 방식들은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어느 연예인의 어록을 연상시키며 다양한 패러디와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쌍둥이는 학폭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반성하지만,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왜곡된 부분에 대해서는 바로잡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피해자에게 직접 사과하고 싶은었지만 만나주지 않아서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쌍둥이 자매는 또다른 논란이었던 흥국생명 시절 김연경과의 불화설에 대해서는 답변을 회피했다. 물론 그녀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그런 인식들이 바로 '가해자 중심적인' 해석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게 문제다.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상대편-대중에 대한 '공감능력'이 먼저 바탕이 되어야하는데, 쌍둥이 자매의 반성은 자신들의 입장이 위주가 된 '변명'에 더 기울어져 있다. 본인들이 가해자라는 문제인식보다 오히려 이 사태로 인한 피해자로 여기는 듯한 속내가 더 강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행동이다.

초기 해명과 사실관계를 바로잡을 골든타임을 놓친 것은 소속팀 흥국생명의 잘못도 있지만, 쌍둥이 자매의 대응을 보고 있노라면 처음부터 그들이 원하는대로 했다고 상황이 크게 바뀌었을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배구계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은 더욱 멀어졌고 이미지만 더 악화되고 있다.

쌍둥이가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진심어린 속죄와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뿐이다.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 언제 용서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본인들이 감수해야만 하는 길이다. 만일 앞으로도 법이나 언론에 기대어 단기간에 이 사안을 정리하거나 해결해야 할 문제로만 접근한다면 갈수록 더 큰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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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영 이재영 흥국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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