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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전문서점 정치발전소에서 6월부터 10월까지 여덟 차례에 걸쳐 동네정치를 고민하는 수강생들과 함께 '정치-력: 우리동네 공약만들기'를 실시합니다. 동네정치의 중요성, 동네 특징과 자치구 예산 바로보기, 민원 갈등 워크숍 등을 진행할 예정이며 필자는 행사의 모더레이터(사회·조율)로 참여합니다. 정치가 삶을 바꾼다고 믿는 또 다른 동료들을 위해, 유의미한 강연을 기사로 잘 전달해보겠습니다.[기자말]
서울 마포 합정동에 있는 정치사회 전문서점 '정치발전소'에는 파란 창틀과 대문이 있다. 정치사회 책들과 친절한 큐레이션이 있고, 각계의 전문가를 모시고 수시로 여는 강연과 북콘서트가 있다. 최근에는 인근 공터에 버려졌다가 구조돼 무럭무럭 자라는 아기고양이들도 있다. 그러나 '정치'와 '사회'가 다소 무겁게 느껴지는 탓인지, 이 근사한 공간이 손님으로 가득 차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달랐다. 손님맞이를 위해 책 판매대 위가 비워지고 의자가 놓인 지난 6월 26일, '우리동네 정치'에 관심이 많은 십여 명 청년들이 서점을 찾았다. 서울시생활속민주주의학습지원센터가 후원해, 6월 말부터 10월까지 여덟 차례에 걸쳐 열리는 '정치-력: 우리동네 공약만들기' 수강생들이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의 '더 작은, 더 다양한, 더 젊은 민주주의' 강연으로 첫 모임은 문을 열었다(거리두기 등 방역수칙 준수).

출생률 최저, 자살률은 최고... 이 숫자가 의미하는 것 
 
6월26일, 서울 합정 정치사회서점 정치발전소에서 '정치-력: 우리동네 공약만들기' 첫회가 시작됐다(총8회). 서복경 대표의 강의를 듣고 있는 수강생들 모습.
 6월26일, 서울 합정 정치사회서점 정치발전소에서 "정치-력: 우리동네 공약만들기" 첫회가 시작됐다(총8회). 서복경 대표의 강의를 듣고 있는 수강생들 모습.
ⓒ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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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출생률 0.84명으로 OECD 가입국 중에서 출생률이 가장 낮은 나라(2020년 통계청), 반대로 자살률은 높은 나라. 서 대표는 이 '0.84'라는 숫자는 "내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나라라는 공감대"를 나타내는 숫자라고 해석한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서 대표는 짧은 기간 압축적으로 달성한 경제성장, 정치사에 남을 만한 대사건이 10년 단위로 일어나는 정치변동의 역사 속에서 이유를 찾는다. 격렬한 사회변화 속에서 시민들은 실존적 불안을 느끼고, 이 존재론적 불안은 대한민국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심심찮게 터져 나오고 있다는 설명이다.

코로나19는 잦아들 줄 모르고, 지구는 시름시름 앓으며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생계위기와 돌봄 사각지대가 늘어나는 가운데 거기 사는 시민들의 '멘탈'이 멀쩡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참고할 사례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과거 한국은, 다른 선진국들 사례를 빠르게 배워서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는 전형적인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을 취했다. 그러나 전 세계가 팬데믹으로 몸살을 앓는 오늘날, 한국 사회가 필요로 하는 해법은 다른 사회에 있지 않다. 좋든 싫든, 우리가 선 이곳에서 활로를 찾아내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동네마다 정책 실험하고 검증하는 '작은 민주주의' 

서복경 대표는 지방정부에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주거기본조례와 기후위기조례에 주목한다. 중앙에서 법을 만들면 이에 따라 조례가 만들어지는 기존 방식을 뒤집은, 역발상으로 지방에서 먼저 실험이 시작된 사례들이다. 

전북 전주시에는 장애인, 고령자, 저소득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 저렴하게 장기임대주택을 빌려주는 '주거복지 지원 조례'가, 서울 구로구·도봉구 등에는 청소년에 생리대를 무료로 나눠주는 조례(여성청소년 생리용품 보편지급 조례)가 있다(관련 기사: 구로구는 생리대 준다는데, 우리동네는 왜 안돼? http://omn.kr/1trxh ). 전주시는 지난해 3월10일, 전국 최초로 '전주형 재난기본소득'을 도입해 지급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지방정부들이 발 빠르게 조례를 제정하고 집행하는 동안 중앙정부는 아직 주거기본법도,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기본법안도 마련하지 못했다. 이 격차는 시민과 보다 밀접하고 더욱 작고 유연한 지방정부 차원의 '작은 민주주의'가 필요한 이유를 명확히 보여준다.
 
전북 전주시에서 사회적 약자를 위해 시행중인 '주거복지 지원 조례' (출처: 자치정보시스템 https://www.elis.go.kr/ )
 전북 전주시에서 사회적 약자를 위해 시행중인 "주거복지 지원 조례" (출처: 자치정보시스템 https://www.elis.go.kr/ )
ⓒ 전북 전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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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구성원 모두를 포함하는 커다란 민주주의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 곳곳에서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이 시작되고, 동네마다 마을마다 담대한 정책 실험을 벌여보는 것. 그래서 좋았던 결과는 서로 나누고, 실패로부터는 신속하게 배우는 작은 민주주의가 오늘날 시급하다는 이야기에 자연스레 내 고개도 끄덕거려졌다.

세상이 빠르게 변해가니, 정치도 그 속도를 어떻게든 따라갈 수 있어야 한다. 본디 느린 의사결정체계인 민주주의의 기초 단위를 마을로 잘게 쪼갬으로써 실효성 있는 정책이 더 경쾌하게 마련될 수 있지 않을까?

더 작은 민주주의, 더 많은 민주주의자... 민주주의여, 더 작아지고 강해져라

모임을 위해 아기자기한 강연장으로 변신했던 서점은, 모임이 끝난 뒤 분주하게 움직인 손길에 힘입어 빠르게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남은 모임은 일곱 번. 이 공간은 앞으로 일곱 차례 배치를 바꿀 것이다. 각기 일상으로, 지역으로 흩어진 수강생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무엇을 바꾸고 싶어 이곳에 모였을까.

예정된 세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는 바람에, 수강생들의 포부를 들어볼 여유는 이날 없었다. 열띤 강의와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을 뿐이었다.
 
6월~10월까지 정치사회서점 정치발전소에서 '정치-력: 우리동네 공약만들기'가 진행된다. 모집 포스터.
 6월~10월까지 정치사회서점 정치발전소에서 "정치-력: 우리동네 공약만들기"가 진행된다. 모집 포스터.
ⓒ 정치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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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강연에서 자주 강조됐듯, 더 작고 더 다양하며 더 젊은 민주주의는 오늘날 절실히 필요하다. 누가, 어떻게 그 역할을 해낼 것인가.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날 참여한 10여 명의 수강생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오직 더 작고 더 다양하며 더 젊은 수많은 민주주의자만이 자신이 속한 곳에서 새로운 정치를 싹틔울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기사를 쓴 김대현씨는 정의당 인천시당 남동구 청년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공약만들기, #정치발전소, #민주주의, #기후위기, #서복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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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인 겸 청년마을활동가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말은 "그럴 수 있지"와 "오히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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